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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Sep 11. 2024

러시아인 영혼의 인도자, 이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생애와 장소들을 담다


러시아 정교 성당에는 성상도 없고, 의자도 없고, 악기도 없다.

대신 그 공간을 가득 채워주는, 신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이콘(성화)일 것 같다.


러시아 회화의 시작은 이콘에서 비롯된다. 중세 러시아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은 이콘 화가뿐이었다. 이후 서양 회화의 도입과 발전으로 러시아는 독자적이고도 뛰어난 자기만의 미술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러시아 미술의 시초가 되는 '이콘(икона)'의 발전과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 고대 인물이 있다.

바로 안드레이 루블료프(Андрей Рублёв)이다! 비잔틴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콘 미술학교를 만든 최초 러시아 예술가이자, 이콘 화가인 그는 누구인지 간단히 알아보려 한다.




영적 성화를 남긴 수도승 안드레이 루블료프


성인으로 추대된 안드레이 루블료프(출처: vk.com)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모스크바 공국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연도는 1360년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일자는 알려지 않다. 14세기 인물이라 명확한 정보가 잘 남아있지 않아, 후대에 고서와 자료들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그의 이름 '안드레이'도 수도원에서 쓰는 이름이고 세속에서 쓰는 진짜 이름은 알 수 없. 성 '루블료프'에서 그가 가죽 장인 집안 출신이라는 정도만 알 수 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비잔틴, 불가리아거장들과 그림을 공부했다. 수도승이 되 수도원 생활을 한 그의 이름은 고서에서 1405년 처음 언급다. 당시 바실리 드미트리예비치 대공의 명으로 모스크바 크렘린 블라고베셴스키 성당 그림 작업에 참여하는 그룹에 수도승 안드레이 루블료프 이름이 다. 공국의 중심 주요 성당의 성화를 그릴 만큼 그는 15세기 초부터 숙련된 이콘 화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고서에 1408년 한번 더 등장한다.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고도시 블라디미르에 있는 우스펜스키(성모 승천) 성당 프레스코화를 그의 동료이자 친구 다닐 초르니와 함께 그렸다. 1420년 기록에도 이 두 사람은 함께 작업한 것으로 나오는데, 다닐 초르니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스승이자 예술적 멘토로서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데 서로에게 더없이 필요한 존재였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성 삼위일체> 이콘(출처: ru.wikipedia.org)


무엇보다 그를 가장 잘 기억하게 한 대작은 아마도 <성 삼위일체> 이콘일 것이다. 해당 작품은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15세기 초 작업에 착수했다. '삼위일체' 이야기는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세 천사의 형상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아들(이삭)의 출생을 예고한 사건과 관련된다. 전통적으로 이콘 화가는 사건과 풍경을 그대로 묘사해왔는데,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이 작품을 다르게 접근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극진하게 천사들을 모시는 세부적 요소는 제거하고 삼위일체의 출현에 초첨을 맞춰 이콘을 그린 것이다. 천사들 뒤 배경으로는 상징(교회, 산, 나무)들을 그렸으며, 천사들은 원의 모양을 이루고 앉아 있다. 그가 그린 <성 삼위일체>는 그의 영적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구현해낸 아이디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콘은 삼위일체-세르기예프 수도원에 있었고, 1904년 발견되어 복원된 이후 1929년부터 모스크바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에 전시된 바 있다. 오랜 시간 전시된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원작 <성 삼위일체>는 국가의 결정에 따라 미술관에서 정교회로 돌아갔다. 이콘은 2023년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 1년 간 전시된 후 2024년 6월 세르기예프 포사드에 있는 삼위일체-세르기예프 수도원, 이콘이 원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갔다.


여전히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에 있는 이콘들 외에도 현재까지 남아있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작품으로는 블라디미르 우스펜스키 사원의 프레스코화, 모스크바 크렘린 블라고베셴스 성당의 <성모수태고지>, <그리스도의 탄생> 이콘 등이 있다.


블라디미르 우스펜스키 사원의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그린 프레스코화(출처: culture.ru)
크렘린 블라고베셴스키 성당의 <성모수태고지>, <그리스도의 탄생> (출처: kremlin.edusite.ru)


시대가 인정한 이콘 화가는 전염병으로 인해 1430년 1월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에서 사망했다. 그는 사망한 수도원에 묻혔으나, 안타깝게도 18세기 후반 매장 장소가 유실되고 말았다. 비록 지금은 그의 묘지를 찾아 추모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안드레이가 마지막 생을 보낸 장소에 가서 그의 혼을 느껴볼 수는 있겠다.


20세기 그에게도 특별한 날이 왔다.

1988년 6월 17일, 러시아가 정교를 받아들인지 1천 되는 기념일에

러시아 정교회는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존경하는 성인으로 시성한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러시아인이 그의 그림을 신성하게 여기며 그 앞에서 기도하는데는 다 그 이유가 있다.

그는 진정한 러시아인 영혼의 인도자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이콘 미술이 있는 수도원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출처: culture.ru)


모스크바에 안드레이 루블료프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루블료프가 생마지막을 보낸 안드로니코프 수도원 미하일 대천사 교회 건물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식 명칭은 '안드레이 루블료프 고대 러시아 문화예술 박물관'이다.


수도원 안에 있는 안드레이 루블료프 박물관(출처: 저자 제공)


안드레이 루블료프 박물관은 그의 탄생 600주년 즈음인 1960년 개관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작품을 모아놓은 곳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아니고, 정식 명칭 의미대로 러시아 이콘 미술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 국내의 철거 교회에서 발견됐거나 복구한 고대 이콘, 프레스코화, 교회 작품 등 다양한 종교적 예술 작품 수천 점으로 인해 분위기가 절로 엄숙진다. 1~2층에는 8~17세기 이콘이 있으며, 3층에는 교회 예술 조각품, 4층에는 12~18세기 프레스코화 등 층별 볼거리도 다채롭다. 이곳에 1970년부터 박물관 이콘 복구 작업소가 운영되고 있어 당대 유명 복원사들이 탄생했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이 복원 및 전시될 수 있었다. 복원 과정이나 관련 설명도 직접 볼 수 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 박물관 전시품 및 성화벽(출처: 저자 제공)
안드레이 루블료프 박물관 다양한 전시 공간(출처: 저자 제공)
이콘화 그리는 과정(출처: 저자 제공)
< 안드레이 루블료프 박물관 >
- 주소 : Андроньевская пл., 10(안드로니옙스카야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10호선 Римская(림스카야), 8호선 Площадь Ильича(플로쉬치 일리차)역에서 도보 10분
석조로 지어진 스파스키 성당(출처: 저자 제공)


박물관 앞에는 고풍스러운 석조 스파스키 성당이 있다.

이곳에서 루블료프가 프레스코를 그렸, 그중 단편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들어가 보았는데 아주 작은 교회로 최소한의 공간이지만 고풍스럽고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스파스키 성당 내부(출처: 저자 제공)


한편, 안드로코프 수도원 가는 길목의 공원에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동상이 있다.

하필이면 내가 방문하러 간 날 폭우와 강풍이 아주 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거기서 참담한(?) 풍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안드레이 루블료프 동상 앞으로 나무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었던 것! 그 옆에 두건을 쓴 두 아주머니가 벤치에 앉아 그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신성한 장소로 가는 길에 왠지 불안이 업습해왔지만, 다행히 박물관을 방문한 날부터 남은 여행기간 내내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비온 뒤 안드레이 루블료프 동상 앞 쓰러진 나무(출처: 저자 제공)


모스크바 동부의 고즈넉한 수도원,

나중에 날씨가 좋을 때 다시 한번 찾아가고 싶다.





1966년 소련유명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예술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발표했다.

중세 러시아의 삶과 영적인 구조를 역사적, 철학적, 시각적으로 이야기한 영화인데 평가는 확연히 갈렸다. 당시 국내에서는 작품의 우울함과 잔혹성으로 혹평을 받았으나, 서방에서는 타르콥스키 감독의 용기와 예술적 성취를 찬사했다. 예술영화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어쨌든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작품성 덕분에 감독 타르콥스키는 영화 분야에서 크게 인정 받게 되었고, 그의 영향력은 후대까지 이어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출처: www.kinopoisk.ru, m.imdb.com)


아무래도 루블료프는 시간이 지나도 러시아인 영혼의 지도자로서 새로운 영감을 주고, 복으로 안내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갈 때는 나도 제대로 그의 작품들을 따라가보리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소실된 이콘화 조각(출처: 저자 제공)



※ 원문 관련 영상 [삼위일체 이콘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 이야기]

https://youtu.be/MG4-q_S_RWY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 커버 사진 출처:  dzen.ru(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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