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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Feb 02. 2017

아름다운 기억, 니즈니 노브고로드

기대 없이 갔다가 한 눈에 반하고 온 곳

엥? 디즈니도 아니고, 니즈니?


러시아어로 니즈니(Нижний)는 '아래의'라는 형용사이다.

즉, 니즈니 노브고로드(Нижний Новгород)는 아래에 있는 노브고로드라는 뜻.

노브고로드는 '새로운 도시'라는 의미이니 그럼 여긴 아래에 위치한 신도시?!


참 러시아어는 재미있다. 명칭에서 많은 정보가 노출될 만큼 참으로 정직한 언어니까. 진짜 노브고로드(벨리끼 노브고로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아랫동네인 건 확실하다.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매력은 저 문을 넘어가야 알 수 있다


아무튼 도시 이름이 기억하기도 너무 길어서 거들떠도 안보았던 곳.

원래 이곳은 내가 카잔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데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할 수 없이 하루만 머무르기로 했던지라 전혀 기대를 안했건만.


잠시 들른 그곳에서 보이는 오카강과 볼가강, 그리고 크렘린을 거닐다 나는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다.




# 생각보다 대단한 아랫동네


내가 먼저 간곳은 니즈니 노브고로드 시내였다.

하루면 전반적으로 훑어볼 수 있어 작은 도시인 줄 알았다. 그냥 즉흥적으로 보는 도시의 느낌을 중시하다보니 사전조사도 없이 숙소만 잡았었는데.


알고 보니 러시아에서 인구 규모로는 5위나 되는 대도시였던 것이다.... 지하철도 있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중공업 도시라고!? 구도심만 노닐다 왔으니 그런 사실을 알 리 만무.


이곳의 볼가강 수력발전에서 생산된 전력은 모스크바 등 서부지역까지 공급된다고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볼가 강변을 거닐다가 건너편으로 거대 공업지역같은 모습이 멀찌감치 보였던 것 같다.

이런 예쁜 도시가 산업 엔진까지 갖추고 있다니, 너도 나처럼 반전 매력을 가졌구나?!


여기가 중공업 도시라고?


게다가 이곳은 러시아의 문학가 막심 고리키의 출생 도시다.

그래서 1932-1990년에는 도시 이름이 고리키(Горький)로 불렸다고 한다. 참 정직한 이름!

번화가를 하염없이 걷다가 만난 거대한 고리키 아저씨, 어쩐지 반갑더라니.



# 아름다운 크렘린과 볼가강


카잔에서 밤기차로 처음 니즈니 노브고로드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큰 기대가 없었다.

'러시아는 그동네가 그동네지!'하면서 역에서 나와선 마치 현지인인 것처럼 능숙하게 버스를 타고, 일부러 성곽 가까이로 잡은 시내 호스텔까지 갔다. 오카강을 건너 숙소로 향하는 순간부터 그냥 그 도시가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원래 물을 보면 사람이 그렇게 되는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건 아니었나보다.

싼 가격으로 구했던 호스텔마저 좋았다. 위치도 좋은데 시설도 깨끗했고 직원도 친절했다.

아마 도시에 대한 느낌이 한 몫 했을 터.


크렘린 속 알록이와 달록이


그렇게 기분좋게 나와 발걸음한 곳이 바로 크렘린, 그곳의 성곽이었다. 거기에 발을 들이자, 떠나기 싫어졌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 공원같은 곳을 걷다보니, 설마 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천지를 창조하신 오호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절로 터져나왔을거다. 내 눈 앞에 펼쳐진 볼가강과 예쁜 하늘색, 그리고 구름색....!

가슴 뻥 뚫리는 그 파노라마는 사진에 다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진이 실물보다 못한게 안타깝다


성곽 높은 지대에서 볼가강과 성벽 아랫마을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저 바라만 보며 한참을 서있었다.

아마 그 때의 나는 참 많이도 갑갑했던 것 같다. 눈 앞의 경치에 시원스럽게 위로를 받았으니까.


꽃밭, 성당과 동상


그 광경에 반해서 성곽을 계속 둘러보게 되었다. 알록달록 꽃밭, 그리고 성당과 동상.

그리고 이곳에서 정말 해보길 잘했다, 하는 것은 성곽 위에 올라가 걷기! 성벽을 따라 걸어가며 볼가강과 도시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오래된 성곽의 벽돌을 밟으며 가면 뭔가 탐험하는 기분도 들고.


<성벽 위 통로, 그리고 그곳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


그리고 성곽의 다른 문으로 나오면 볼가 강변까지 내려올 수 있다. 그곳의 경치도 말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아서 더 좋았는지 모른다.


이렇게 좋은 강변에 사람이 없다니! 나 혼자 누벼야지
낡은 서랍 속에서 나온 것만 같은 니즈니 노브고로드 크렘린 성벽
언덕을 올라 그 곳에 닿을 수만 있다면


성곽 바깥을 따라서 열심히 산책을 하다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성바실리 사원 바로 앞에 있는 미닌과 빠좌르스끼 동상같이 생겼는데, 그게 왜 여기있지? 포즈도 똑같다.


이 동상만 보고 모스크바에 온 걸로 착각할 뻔했다


알고 보니 그 동상이 맞다.

모스크바에 있는 동상 복제품으로 2005년 세워졌는데 이것이 조금 더 작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17세기초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영웅이 된 미닌이 니즈니 노브고로드 출신이니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 이곳 광장에서 그는 민중들에게 폴란드로부터의 해방을 외쳤으리라. 당시 전쟁에서 러시아를 승리로 이끌고 1613년 로마노프 왕조가 탄생했다고 하니, 나름대로의 의미가 큰 곳.


참 많은 보물을 간직한 크렘린이다.


# 번화가 산책

러시아의 번화가는 대부분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희한하지?


러시아에서는 어느 도시든 번화한 보행자 거리를 보통 모스크바처럼 '아르바트'라고 일컫는다.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의 아르바트는 바로 발사야 빠끄롭스까야 거리(ул. Большач Покровская)이다.  


<거리의 동상들>


행복이 뭐 별건가요

이곳은 그냥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있다.


걷다 보면 재미있는 동상들고 있고, 예쁜 건물도 있고, 맘에 드는 가게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서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독서도 할 수 있고 무선인터넷으로 인터넷도 즐길 수도 있다. 그냥 그런 소소한 재미.


다리가 부러질 지경에 이를 때까지 걷다보면 커다란 광장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고리키광장이다.


고리키가 이곳 출신인줄 모르고 갔을 때는 '이 유명한 아저씨가 여기 왜 계시지?' 했는데, 태어나 힘들게 생업을 이어갔던 곳도 바로 이곳.


아이고,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고리키의 젊은 시절인가 보다. 옷차림이 흡사 슈퍼맨 같다


원래 사람이든 도시든 너무 큰 기대와 욕심을 부리며 관계를 시작하면 실망이 큰 법인데,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좋은 모습과 느낌만 담아왔던지라 더 기억에 남고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이다. 물론 겨울보다 여름에 가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겨울에는 그 성곽 언덕이 온통 눈길일텐데 어떻게 다닌담...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모스크바까지는 고속열차로 불과 4시간이면 갈 수 있으니 멀지도 않다.

고뇌가 많았던 고리끼의 도시, 니즈니 노브고로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경기도 개최될 도시니 곧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매력을 알게 되겠지?


러시아의 낮은 구름을 사랑한다


러시아는,

알면 알수록 참 신비하고, 가면 갈수록 더 가고 싶어지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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