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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Dec 10. 2016

조화로운 문화의 향연, 카잔

정교회 사원과 이슬람 모스크의 그림 같은 공존

새로운 장소를 알아간다는 것,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러시아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카잔이라는 도시에 처음 가기 전 "어떤 곳일까?" 설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감동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모스크바에서 동으로 열차로 하루면 당도하는 카잔이라는 도시는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 감동이 이어지는 곳이다. 그 동안의 비슷비슷한 러시아에 질렸다면 톡쏘는 탄산수처럼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올 것이다.

타타르스탄의 주도 카잔(Казань). 과연 어떤 도시일까?




# 대지의 아량을 배우다


러시아는 볼가강 유역에 많은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카잔도 그 중 하나로 그 시초는 1005년 고대 불가르인들의 요새 도시에서 비롯된다.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로 가벼이 볼 곳이 절대 아니다.


카잔은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은 이후 카잔 칸국으로 성장하였고, 오랫동안 타타르인의 문화를 이어나갔다.

아름다운 카잔 크렘린 내부

 카잔 칸국은 동과 서를 잇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교역으로 먹고 살았지만, 모스크바 공국의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곳이 러시아 땅이 된 것은 이반 뇌제 통치 당시 1552년으로, 그의 무시무시한 폭군 기세를 몰아 칸 정벌에 성공하였다.


지금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테트리스" 배경의 성 바실리 사원이 바로 이반 뇌제가 카잔을 차지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세워올린 작품이라고 하니, 그만큼 카잔 정복은 대단한 업적으로 기억된다.


침략으로 심하게 파괴된 도시는 이반 뇌제에 의해 복구되기 시작했는데, 지금 카잔 크렘린의 하얀 성벽은 이 때 다시 쌓아올린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도시 재건 과정에서 기존 타타르 문화에 러시아적인 것들이 덧입혀지면서 카잔이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본래의 문화도 존중하고 거기에 러시아를 함께 담아내어, 그야말로 아름다운 화합의 작품으로 되살아났다.


크렘린이 시작되는 스파스카야 탑(Спасская башня) 야경

그 조화는 카잔 크렘린에서부터 시작된다. 크렘린 성벽 안에는 두 개의 종교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

푸른색 지붕이 상징적인 쿨-샤리프 이슬람 사원(Мечеть Кул-Шариф), 그리고 거대한 경건함을 자랑하는 성모수태고지 정교회 사원(Благовещенский собор)의 묘한 동거는 어색하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저 멀리 쿨-샤리프 이슬람 사원이 보이는 성벽 밖 풍경

다른 문화라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대지의 아량을 바로 이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 그 넓은 마음과 그림같은 작품에 힘입어, 카잔 크렘린이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 불가능은 없다


내가 러시아 카잔이라는 도시를 처음 알게 된 건 2013년 개최된 카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덕분이다.

당시 러시아 전통 스포츠인 '삼보(Самбо: 레슬링과 유도 중간 성격의 무기 없는 호신술)'의 한국선수 경기 참가 지원을 돕고 있던 나는 우연한 기회로 카잔 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삼보가 원래 유니버시아드 정식 종목은 아니었지만, 개최국 특혜로 대회가 개최된 덕분에 나도 새로운 도시 탐방을 할 수 있어 너무나 기뻤다.

2013 카잔 유니버시아드에서의 삼보 경기장

처음 들어본 이 도시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보니, 모스크바에서 꽤 가까웠다. 서부지역의 도시라 설레긴 했지만 러시아 도시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걸 알았던지라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카잔으로 인하여 러시아 다른 도시들도 모두 섭렵하겠다는 꿈이 저절로 생길 정도로, 이곳은 나에게 엄청난 감동을 선사했다.

2013 카잔 유니버시아드 공식 후원차량 현대자동차

우선, 도시 자체가 매우 깨끗하게 정비되었고 시내 건물 하나하나가 참으로 예뻤다. 거기에 고국의 정취까지 더해져서 기억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파격적인 협찬으로 카잔의 도로에선 선수단과 취재진을 태운 현대차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도시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당시 우리를 태웠던 택시 기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가 이렇게 좋진 않았다"고 했다. 유니버시아드를 치르려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도로를 깔고 도시 외관을 정비했다고 한다. 카잔이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의 2014년 고속성장 관광도시 랭킹에 오를 정도였으니 알만하다. 내 눈 앞의 이 깔끔한 도시 경관은 역시 위로부터(!) 온 메시지의 힘으로 뚝딱 만들어진거였구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이미 푸틴 마법을 봤잖아?!


그래, 역시 러시아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불가능은 없다. 그래서 내가 너를 더욱 사랑한다.

Невозможное возможно(불가능한 것의 가능)!  


그리고 나는 맡은 바를 수행하기 위해 유니버시아드 선수촌(деревня универсиады: 지금은 카잔 연방대학교 기숙사로 활용되고 있다)이라는 곳에 처음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선수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모든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대회를 앞둔 대학생 선수들의 유쾌한 기운과 함께 각나라 음식도 무제한으로 맛볼 수 있는데다, 저녁이면 음악과 노래가 이어졌다.

                                                         <카잔 유니버시아드 선수촌 이모저모>

오 필승 코리아!

러시아가 유니버시아드 선수촌을 이정도까지로 잘 만들어 놓다니 솔직히 좀 놀랐다. 당연히 국제대회라 더 신경을 썼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동안 스스로 쌓아온 러시아에 대한 불신의 감정들이 조금씩 무너져감을 느꼈다.


그 이후로도 카잔은 잘 닦아둔 실적 덕분에 지속적으로 국제대회를 여럿 개최하게 되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경기가 이곳에서도 열린다 하니, 마법같은 카잔의 인기는 앞으로 한층 더 상승하겠지?

2018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카잔 아레나(출처: kzn.media)


# 즐거운 체험


러시아 2층 열차(출처: visual.rzd.ru)

요즘 카잔 방문에서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면 모스크바-카잔 구간을 2층 열차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모스크바-카잔 2층 열차는 저녁에 출발해 아침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짧게 다녀오기 좋다.


사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본 것만으로도 엄청난 모험담인데, 따끈따끈한 러시아 2층 열차 탑승은 깨끗한 시설에 대접받는 기분, 마냥 좋은 분위기까지 합세하여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카잔 기차역의 멋스러운 건물은 기차를 타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지도 모른다.

고풍스러운 카잔 기차역 건물

나에게는 카잔의 바우마나 거리(ул. Баумана)가 특이한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도 생각난다.


크렘린을 시작점으로 뻗어있는 번화가인 이 거리에는 예쁜 카페, 신기한 동상, 거대한 종탑, 거리 공연 등 볼거리가 참 많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로 기억하는건 아니다. 구경을 잘 다니다 갑자기 만난 소나기 때문이다. 소나기가 원래 급작스레 쏟아지긴 하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듯 앞이 보이지 않게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때 나는 다행히 가까운 쇼핑몰에 몸을 피해 있었다.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숙소로 돌아갈 일이 걱정됐다.


폭우 이후 목격된 풍경

오랜 소나기가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듯 해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내 한가운데 도로는 폭우로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차가 다니는 도로는 배수가 안되어 빗물이 철렁거리며 차올랐고, 행인들도 물 웅덩이를 피해서 다녀야 할 정도였다. 해외에 나와서 수해 현장을 목격하다니 별일이다 싶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원래 카잔에서는 여름에 종종 이와 같은 폭우성 소나기가 내린다고 했다.


그렇게 맞은 폭우조차도 내겐 즐거운 경험이었다.

카잔이어서 그랬나보다.




새로운 곳에 대한 좋은 기억, 그리고 그곳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을 때 기쁨은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나에게만 적용되는 러시아 법칙에 따르면, 아무튼 '카잔'이라는 도시는 참 좋다고 밖엔 더 보탤 말이 없다.

조화가 주는 아름다움. 천 년의 도시를 2층 열차로 여행하는 행운. 또 즐거운 추억!


...그리고 다음의 새로운 도시로 힘차게 발을 내딪는 용기.

그걸로 충분하다.

2013년의 바우마나 거리, 안녕!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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