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험소녀 Sep 29. 2018

오늘, 지금의 블라디보스토크(2)

의미 있는 여행을 위한 한걸음

많은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예정자들은 묻는다,

이미 본인 스스로 마음에 정답은 있지만 그냥 확인차.


블라디보스토크 가면
뭘 꼭 해보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내가 바다 수영을 해보라 하겠는가, 멀리 곰 사냥을 가라고 하겠는가.

가장 보편적인 답은 '바다 산책도 하고 킹크랩처럼 맛난 해산물도 먹어 보시라', 그 정도 수준일 거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배는 채우되 이 도시의 배경도 이해하며 머리까지 채워가는,

'개념 있는 여행을 하면 좋겠다'고 답해주고 싶다.




# 본래의 정체성 찾아가는 '한국 거리'


원래 이 도시는 17세기 중반까지도 중국 땅이었다. 그러나 1860년 베이징 조약 체결 이후,

해삼이 많이 나던 중국 땅 '해삼위' 블라디보스토크가 속해있는 연해주는 러시아로 넘어가게 되었다.


도시에는 여전히 많은 중국인이 살았는데, 그 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이들의 거주지를 '백만'이란 의미의 ‘밀리언카(Миллионка)'라 불렀다. 놀랍게도 현재 옛 건물 가득한 아르바트 근방에 위치했었다. 지금 우리가 예스럽고 예쁘다 하는 관광지가 옛날 중국인 본거지였던 것!


밀리언카의 모습(왼쪽), 국경 거리의 현재 vs 과거(오른쪽)


이쪽 동네는 우리와도 인연이 깊은 장소다.

밀리언카와 인접한 지금의 '국경 거리(ул. Пограничная)' 즉, 아르바트와 해양공원 사이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 거리에는 사연이 있다.


무심코 온 한국 관광객 중 국경 거리가 본래 ‘한국 거리(ул. Корейская)’였단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거리에는 한인들이 모여 살던 개척리(구한촌, 신한촌 이전의 마을)가 있었고, 1864년부터 1941년까지 원래 명칭도 ‘한국 거리’였다. 국경 거리에 한쪽에 세워진 한인이주 150주년 기념비를 보면 러시아어로 그 내용이 담겨있다.


2014년 세워진 한인의 러시아 이주 150주년 기념비. 국경 거리가 한국 거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수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산책하며 킹크랩과 샤슬릭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150여년 전 실제로 한인들이 살던 곳이라니! 원래 우리 선조들이 살던 이 장소를 여행객들도 본능적으로 내지는 운명적으로 발걸음하고 있는 걸 보면, 이 거리는 뒤늦게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경 거리 한 켠에 있는 호랑이 벽화


먹고 쉬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아르바트와 해양공원을 드나들 때만큼은 우리가 역사의 한 페이지,

‘옛날의 한인촌’이 있던 그곳을 필연적으로 오게 되었다는 나름의 의미를 되새기는 건 어떨까.


# 킹크랩 먹으러 왔는데, 솔드아웃?


이제 그럼 본격적인 먹방에 들어가볼까?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언제부턴가 해마다 킹크랩 수확철에 맞춰 축제가 열리고 있다. 킹크랩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올해도 당초 9월 17일부터 27일까지 지정된 레스토랑에서 킹크랩을 반값에 파는 <킹크랩을 잡아라(Держи краба)> 축제가 열린다고 했었다.


하지만, 킹크랩이 없다?!


동방경제포럼 기간 중에 방문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곰새우와 킹크랩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킹크랩 먹으러 온 관광객이 레스토랑의 '솔드아웃' 한마디에 아쉬워하며 꿩대신 닭, 털게나 새우로 배를 채워가는 걸 봤다. 해양공원이나 주말시장에도 아쉽게도 곰새우 대신 대하만 가득했다.(물론 시간상 물량이 빠진 후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말 시장에 곰새우가 없다?!


그럼 도대체 왜 없는 건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상황을 종합하여 추측해보건대,

최근 뒤엎고 지나간 태풍 솔릭과 제비 때문에 게를 잡을 수 없었던데다,

동방경제포럼 손님 맞이용 물량을 우선적으로 미리 다 빼놓았고,

매일 한국인 관광객들이 킹크랩을 인당 한 마리씩 먹어치워 기존 물량조차 넉넉치 못했기 때문.

이러저러한 정황들을 복합적으로 생각해보니 킹크랩 없는 현상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곰새우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



아무튼 킹크랩이 시중에 충분하지 못하단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킹크랩 축제 기간을 거의 한 달 이상 미뤄 10월 25일부터 11월 5일까지로 변경했다.

대부분 우리가 먹는 킹크랩이 캄차트카 산인데, 캄차트카 수확 일정엔 차질이 없나 모르겠다.


킹크랩 축제가 10월말~11월초로 연기된 이유? 킹크랩이 없어서!!!


한국인들이 킹크랩을 비롯한 갑각류를 이곳에서 정말 많이 먹고 가기는 하나보다.

블라디보스토크라고 해산물이 늘 풍족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먹으러 가는 오늘이 운수좋은 날이길.


혹시라도 한국인이 이미 휩쓸고 간 식당에 뒤늦은 발걸음을 한다면 어느 정도 '킹크랩 솔드아웃'의 구호를 받을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가는 것도 안전하겠다.


에휴, 킹크랩, 곰새우가 뭐라고....


# 팁 문화


최근 러시아 여행객 사이에 오르내리는 질문.


"러시아에 과연 팁 문화가 있는가?"


사실 러시아는 예부터 집에서 식구들 또는 친구들과 함께 둘러 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익숙했던지라, 외식 문화랄 것이 특별히 없었다.

옛날에는 맛집이라고 부를만한 레스토랑도 그냥 거기서 거기, 서비스도 특별한 맛도 기대할 게 없어 팁을 남기지 않고 간 일이 다반사였다. ‘난 이곳에선 외국인이니까’란 생각으로 또 그걸 당연시했던 것 같기도 하다.(이건 다 옛날 이야기)


손님을 살피는 종업원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비스 정신도 좀 생겼고, 담당 서빙이 붙는 레스토랑에서는 가격의 10% 가량을 팁으로 주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앞서 발전한 서부지역(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언제부턴가 그렇게 해오고 있고, 블라디보스토크라고 이제 예외는 아니다.


우리를 서빙해주는 고급 레스토랑 종업원의 급여 수준은 알고 보면 굉장히 열악하다고 한다. 영어도 하는 나름 고인력인데, 불과 30-40만원밖에 안 되는 월급으로 생활하기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팁으로 부족한 월급을 채워가는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계산서에 팁에 대해 명시되어 있다. If you like our food and service you can leave a tips!

예전엔 몰랐지만 그 사실을 안 이상 이젠 그들이 안쓰러워서라도 팁은 챙겨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관광객의 레스토랑 팁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좀 분분하다. 팁이 꼭 법적 의무는 아니더라도, 지금은 현지인들도 당연스레 지불하고 있고 암묵적으로 사회적으로 주는 분위기인 건 맞는 것 같다.


'Tip is always welcome!'

요즘엔 그래서 계산서 말미에 이런 유사한 문맥의 문구들이 들어있다. 음식이 맛있었고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면 팁은 '내키는대로' 달라는 것이다.


참고로, 혼잡스런 레스토랑에서는 몇십분이 걸릴지 모르니 계산서를 미리 요청해 놓는 것이 좋다.

종업원이 서비스 정신을 가졌다 해도 러시아인들에게 멀티 태스크란 불가능하다. 급한 일부터 처리하다 보면 깜빡할 수 있으니, 몇 번 얘기해도 돌아오는 계산서가 없으면 계속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그래도 계산서 안 갖다주고 서비스도 별로라면 팁은 조금만 주면 그만이다.


아무튼 한국인의 활기로 고급 레스토랑이 많아진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이제는

집에서 모여 도란도란 식사하던 문화에서

우리처럼 밖에 나가 사먹는 외식 문화로 조금씩 옮겨가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물론 아직까지 가난한 서민에게는 생일처럼 특별한 날, 어느 정도 여유자금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시류에 따라 우리도 기꺼이 팁을 남겨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


고급 레스토랑, 맘에 들었다면 팁은 내가 주고 싶은 만큼!




우리 주변에 벌어지는 대부분의 현상들은 겉으로만 봤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 속내를 알고 나면 안타까움마저 느껴지는 진실과 마주할 때도 종종 있다. 그래서 뭐든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것.


우리 여행객들도 블라디보스토크가 주는 즐거움, 미식도 좋지만 그 이면의 모습까지 포착해낼 수 있는,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개념 있는 여행을 한다면 좋겠다.


매력 만점 블라디보스토크!


머지않아 북한과 철도가 연결되면 가장 먼저 도달하게 될 러시아의 항구 도시이자 옛날 한인들의 마을이 있던,

바로 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만큼은 우리가 의미 있는 여행을 할 수 있기를!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이전 16화 오늘, 지금의 블라디보스토크(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