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우리 교실에 고슴도치 한 마리가 들어왔다.
예전에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선생님이 올린 페이스북의 글에서 반 아이가 키우던 고슴도치 한 쌍을 집에서 내다 버리라고 해서 교실에서 키우기로 했는데 도저히 두 마리는 감당이 안될 것같다는 하소연. 댓글로 나중에 고슴도치 아기 태어나면 한마리 분양해 주세요. 라고 했는데 .. 한마리 지금 분양 받겠냐는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지금 근무하는 학교가 아니면 교실에서 고슴도치를 키워볼 기회가 없을 것같아서 네 그럴께요.했다.
그리고 나서 한 일은 아이들과 함께 고슴도치에 대해 알아보는 일.
고슴도치의 습성, 먹이, 키우는 법, 주의할 점을 열심히 조사하고 알아보았다. 아이들이 직접 키울 고슴도치에 대한 조사였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키워드를 선택하는 법, 긴 글을 요약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아이들이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슬슬 고슴도치 박사가 되어 갈 즈음 고슴도치가 교실에 도착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활동하는 아이. 웅크리고 구석에 숨어 있는 녀석에다 가시가 무서워서 아이들은 꽤 오랫동안 녀석의 엉덩이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는 고슴도치를 지켜보며 그동안 조사했던 단편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다른 학년 아이들에게 고슴도치를 소개하는 고슴도치 설명문 작성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교실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고슴도치. 어찌보면 교실에서 키우기에 가장 적당한 동물인 것같다. 아이들이 수업하는 동안에는 찍소리도 내지 않고 잠만 잔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녀석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러다 가끔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 먹이를 먹으러 슬쩍 나와서 '아그작 아그작' 먹이를 먹는다. 그러고는 다시 들어가 잠을 잔다.
고슴도치야 놀아줘
단잠을 자는 고슴도치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하루 한 두 번 아이들에게 고슴도치가 봉사하는 시간 ^^ 2교시 후 30분동안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중 한 번씩 강제 산책행.
한달에 한 번 고슴도치 목욕하는 날은 아이들이 제일 기다리는 날이고 매일 아침 밤새 싼 고슴도치 똥을 치우는 시간은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 뿐 아니라 괴롭고 힘든 시간도 함께 해야하는 법.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아이들이 집으로 가져가 서로 돌아가며 돌보기로 했다. 그런데 두번째 해인 작년에는 우리반 아이들이 모두 고슴도치를 가져가도 된다는 부모님 허락을 받지 못했다. 방학 동안 교실에 고슴도치를 혼자 놓아둘 수도 없는 일이라 고민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방학동안만 고슴도치를 분양하기.
우리반 고슴도치를 방학동안 분양합니다.
아무에게나 고슴도치를 맡길 수 없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다모임시간의 회의를 통해 고슴도치에 대한 소개와 주의점을 안내하고 정식으로 고슴도치 분양신청서를 받기로 했다.
고슴도치 (똥치) 키우기 용품 일체 제공. 먹이와 사육상자, 탈출방지용 가림막까지....
고슴도치 분양을 위한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이고 포스터 아래에는 분양 신청서를 만들어 직접 잘 키우겠다는 서약서와 부모님 허락 사인까지 받도록 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아이들은 분양을 위한 면접까지 하고서야 고슴도치를 방학동안 다른 아이에게 넘겼다.
우리 교실에는 고슴도치가 산다.
방학동안 임시분양을 통해 교실을 떠났던 고슴도치는 3월. 새롭게 만난 소금별 열 여섯번째 아이들을 만났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라 집에 갈 때면 화장실 따뜻한 공간에서 밤을 보냈고 6학년 선배가 된 소금별 열 다섯번째 아이들은 고슴도치 키우기에 대한 훈수를 두러 가끔씩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 교실에 오기 전 2살 정도 나이를 먹었던 고슴도치니까 이제 5살이 넘었다. 고슴도치의 평균 수명은 4~6년이라고 한다. 오래 살면 10년까지도 살아간다고 하는데 여전히 아이들이 가장 많이 보는 모습은 우리 고슴도치의 웅크린 가시 투성이 엉덩이지만 오래 오래 아이들 곁에서 함께 지냈으면 .....
그나저나 올 여름방학에는 이 고슴도치 녀석을 누가 임시분양 받아갈 수 있으려나... 이래저래 안되면 우리집으로 가서 여름을 나야하는데 우리집에는 아이가 키우는 햄스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단 말이다. 우리 교실에는 고슴도치가 산다. 우리 아파트 말고 교실에서 고슴도치가 잘 살았으면 하는 게 3년째 고슴도치를 만나고 있는 선생님의 .... 숨겨진 소망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