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색 무스탕을 입은 좀비

'좀비'로 작문하시오.

by 홍핑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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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종로3가역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던 때 일어난 일이었다. 화장실 벽을 바라본 채로 환승시간과 출근시간의 접합점과 1호선과 5호선 사이의 억겁의 거리 따위를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내 목을 팍 하고 깨물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보라색 피. 확실했다. 저번 달에 정부가 개포-바이러스, 아니 좀비 바이러스 종식을 선언하지 않았었나? 그 때 다 죽이고 묻었는데. 순간, 섬찟한 감정이 들었다. 주변을 황급히 살폈다. 화장실 칸 안으로 뛰쳐들어가 휴지를 뽑아 피를 닦았다. 구제역에 걸린 돼지들을 살처분하는 것마냥 엄청난 수의 사람, 아니 좀비 시체를 땅 속에 묻던 장면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셔츠를 목 끝까지 잠궜다.


이거 겉으로는 무증상이라 했지. ‘목의 작은 상처로만 감염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 달 전까지 재난문자와 뉴스에서 지겹도록 떠들어대던 말이었다. 이 사실은 인류에게는 재앙이었지만, 오늘의 나에겐 축복이었다. 셔츠 깃을 다시금 매만지며 은근슬쩍 추켜올렸다. 목젖을 잘못 건드려 켁켁댔다. 출근길의 관성을 따라 1호선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어제 본 유튜브 영상을 떠올렸다. ‘개포-바이러스 특징 총정리!’였나. 영상 재생을 누르는 순간, 때마침 1호선이 켁켁대며 들어왔다. 사람들이 눈깔에 잔뜩 힘을 주며 쏟아져내렸다. 어깨가 추잡하게 부딪혔다. 빈 자리에는 사람들(과 좀비 한 명)이 어거지로 들어찼다. 사람들은 비좁은 틈에서 이어폰에 귀를, 스마트폰에 눈을 꽂았다.


영상을 빠르게 1.5배속으로 넘겼다. 목을 물리게 되면 사망하거나 감염자가 된다. 감염자들은 목에 있는 특정 세포를 주기적으로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섭취 주기는 감염자마다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기계적으로 높아진 목소리가 앵앵대고 지나갔다. 대법원은 살인죄의 대상인 ‘사람’에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결정을 내놓았다. 사실상 정부의 살상 조치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족들은 위헌 소송을 제기…. 잘 죽였어. 전화 소리가 영상을 뚫고 들어왔다. 내 옆에 서 있는 남자였다. 나는 영상의 정지버튼을 눌렀다. 걔네 치료를 어떻게 해? 그냥 괴물인 거지. 그거 개포동역에서 처음 생겨가지고 지금 집값이 난리도 아냐. 빨리 잠잠해져야 집을 팔든 하는데. 나는 영상의 정지버튼을 눌렀다. 괴물이 옆에 있다는 건 알고 있나 몰라.


걔네 살려둬서 뭐 한다고. 남자는 쩌렁쩌렁 통화를 이어갔다. 나는 점점 화가 나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내가 물면 너도 똑같아질텐데. 그럴 일 없다고 생각하려나? 마침 지하철 문이 내렸고, 내리려던 찰나 옆의 남자도 내릴 준비를 했다. 나는 남자와 나란히 걸었다. 남자는 화장실로 향했고, 나는 남자를 따라갔다. 그리고 남자의 목을 물었다. 빠르게 나오려 뒤를 돌았는데, 사람이 서 있었다. 핑크색 무스탕을 입은 노숙자였다.


“나도야, 나도!”


노숙자는 기쁘다는 듯이 핑크색 무스탕의 지퍼를 내려 목의 흉터를 보여주었다. 핑크색 무스탕은 반갑다며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핑크색 무스탕의 손을 도망치듯 뿌리쳤다. 솔직히 내가 저 사람 정도는 아니지. 나와 (이제 좀비가 된) 남자는 도망치듯 화장실을 나왔다. 핑크색 무스탕은 “나도야, 나도!”라고 소리를 지르며 나를 쫓아왔다.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은 핑크색 무스탕과 나를 무심하게 피해갔다. 나는 사람들 틈에 빠르게 묻혀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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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무스탕을 입은 좀비, 김핑키


다음 업로드는 목요일 예정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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