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결정은 내가
장 과장과도 계속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맥주를 마시며 주식얘기를 나눈다. 둘이지만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주식 주제만으로도 밤새도록 얘기할 수 있을 정도다. 사적인 얘기는 거의 나누지 않지만 함께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부쩍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어제 주식투자 동호회에 참석한 얘기를 꺼내면서, 가치투자가 차트투자보다 수익률이 떨어지는 게 아닌지 물었다.
"당연히 떨어져요. 차트투자는 하락하면 재빨리 손절하고 나오는 게 원칙인데, 가치투자는 시세와 상관없이 가치만 보고 투자하잖아요. 아무래도 대응력도 떨어지고 수익도 떨어지죠. 동호회 회장님인 고 부장님도 굴리는 돈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치투자를 하시는 거지, 아마 처음에는 차트투자로 시작하셨을 거예요."
"금액이 커지면 차트투자가 어려워?"
"그렇죠. 차트투자는 스피드가 생명인데 금액이 커지면 아무래도 사고파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 성질도 급하잖아요. 오르고 떨어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잃을 확률이 높아지죠."
"그런데 왜 가치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우리 동호회도 가치투자 중심이고 말이야"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이 유명하니까 그래요. 세계 최고 투자자가 가치투자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미국 시장 얘기고 우리나라는 완전히 다르죠. 최근 10년 주식 차트만 봐도 그래요. 미국은 꾸준하게 우상향이에요. 물론 중간중간 어려운 구간들이 있지만 연평균 10%가 넘어요. 우리나라는 2%도 안돼요. 물가 상승률이나 이자 수익률에도 못 미치는 거죠. 가치투자는 우리나라에선 안 통해요"
워낙 자신감 있고 시원시원하게 말하니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음 한편엔 살짝 의구심이 생긴다. 고진래 부장님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돈도 많이 모으셨고 이 바닥에서 유명하신 분인데 나쁜 전략을 쓰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 동호회에 좀 더 나가보면서 가치투자도 좀 더 제대로 공부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상 알람이 울린다. 어제 맥주를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눈이 떠지질 않는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린다. 뭘 잘 못 먹은 건가? 일단 씻고 비몽사몽 출근 준비를 한다.
가까스로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팀회의다.
팀 미팅이 한창인 9시 40분. 삼영증권 알람이 뜬다. 살짝 보니 칠성전자가 급락 중이란다. 재빨리 창을 열어보니 15% 하락 중이다. 출근 전만 해도 100만 원 이상 이익이었는데 순식간에 5% 손실이다. 50만 원 이상 바로 마이너스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온다. 미팅 중이라 차마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순 없다. 갑자기 아랫배가 살살 아파온다. 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간다.
앱을 열어 뉴스를 보니 중국에서 전장 사업을 위해 짓기로 한 공장 건설이 무기한 연기되었단다. 이 호재로 그동안 오른 주가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중이다. 5 분여만에 2%가 더 빠져나간다.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 장 과장에게 재빨리 톡을 보낸다.
- 장 과장, 칠성전자 뉴스 봤지?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지 않을까? 장 과장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 회사 자체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니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차트 상으로 봐도 아직 60일 이평선은 지키고 있으니 기다려 보시죠. 물론 최종 결정은 차장님이 하셔야 합니다.
그래, 회사의 사업 자체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차분하게 좀 더 지켜보자. 업무 하는 내내 '최종 결정은 내가...', 장 과장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런 말은 이제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누가 그걸 모르나. 이젠 아예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주식창을 작게 띄워놓고 시세 추이를 지켜본다. 다행히 더 이상 떨어지진 않고 있다. 60일간의 시세를 선으로 연결한 60일 이평선은 지키고 있다.
이후로 4일간 연속 하락해서 마이너스 15% 손실이다. 고점에서 30%나 빠졌다. 매일 아침 시작은 상승으로 시작하지만 오후에는 하락 반전하는 패턴이 계속된다. 60일 이평선은 진작에 벗어나서 완전히 하락하는 패턴으로 돌아섰다. 그나마 오늘은 보합세로 마감했다. 그런데 매도를 할 수가 없다. 200만 원 가까이 까먹었는데 이대로 팔아버리면 손실을 확정하는 셈이다.
장 과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퇴근 후 매번 가던 호프집으로 향한다.
"장 과장, 우리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까운데 더 버텨봐야죠. 여전히 회사에는 문제가 전혀 없거든요. 차장님은 여유 있으시면 오히려 더 사시는 건 어떠세요?"
"지금 이 분위기에 더 산다고?"
"오늘은 보합세로 끝났잖아요. 이제 하락은 마무리된 거 같아요. 여유 있으면 물 타기 하기 좋은 차트예요"
"물타기?"
"네, 딱 물타기 타이밍이에요. 내부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외부 요인이니까요. 이제 다 떨어졌으니 앞으로 오를 일만 남았어요. 저는 여유 자금이 없어서 물타기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예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이다. 언제 팔아야 할지만 고민했는데, 고수는 오히려 살 타이밍을 본다. 역발상 사고가 때로는 잘 통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이거야 말로 역발상이다. 다음 날 아침에도 상승 하락이 반복되며 보합으로 이어진다. 장 과장 말대로 더 이상 떨어지진 않을 듯하다. 그럼 정말 오를 가능성이 더 높은 거 아닌가. 과감하게 남아 있던 자금 500만 원을 더 넣기로 한다. 500만 원 매수 완료. 투자 금액이 늘었으니 주가가 상승하면 회복속도도 더 빨라진다. 때로는 물타기가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후 3일 간, 1% 정도씩 아주 작은 폭이지만 실제로 주가가 조금씩 오른다. 물타기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그래도 아직 손실을 만회하려면 멀었다.
"차장님, 지금 타이밍 너무 좋네요. 더 과감하게 물타기 해보세요!"
장 과장의 부추김이 달콤하게 들린다.
8편에서 계속...
※ 이 글은 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