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모탈출 Oct 22. 2023

서울 사는 40대 윤 차장의 투자 도전기 - 8편

역발상


다음 날 아침, 역발상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비상금으로 남아 있던 500만 원을 마저 물 타기 하기로 결정하고 시초가에 바로 매수한다. 매수하자마자 바로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다. 오후에 계속 오르내리다가 2% 상승으로 마감한다. 역시 과감한 결정이 옳았다. 

이후 1주일 간은 보합세가 유지된다. 생각보다 오르지 않아서 속이 탄다. 한 종목에만 거의 2천만 원이 들어가 있으니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 블루칩클럽의 추천 종목들도 덩달아 정체 중이다. 두 종목은 3, 4% 정도 이익, 하나는 아예 마이너스 5%에 머물고 있다. 장 마감 후에 블루칩클럽의 황 매니저에게 톡을 보내본다. 


- 요즘 추천 종목들 성적이 왜 이런가요?

- 네, 회원님, 저희가 최선의 종목들을 보내드리지만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저희도 노력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더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별 영양가 없는 답변이다. 퇴근하며 차트의 신 카페를 둘러보다 보니 '동남아 신종독감, 지금은 팔 타이밍'이라는 제목이 인기글로 올라와 있다. 지난주 처음 발견된 신종독감이 심상치 않아서 전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설마 괜찮겠지, 별일 아니야,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다음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작성 중인 보고서를 최종 리뷰하는 중이다. 띠링, 알람이 울린다. 

- 칠성전자 8% 대 급락! 중국 전장사업 공장 건설 전면 취소 결정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말이 그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신체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처음 알았다. 앱을 열어보니 10% 하락 중이고 더 내려갈 기세다. 금액으로는 500만 원이 넘게 손실 중이다. 지금이라도 팔아야 할 것 같다. 매도가를 입력하고 매도 버튼을 누른다. 체결이 되지 않는다.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장 과장이 외근 중이라 톡을 보냈지만 답이 없다. 15% 하락 중이다. 다시 한번 매도가를 낮춰 입력하고 매도해 보지만 여전히 체결이 안된다.


- 차장님, 아깝지만 시장가로 매도해야 할거 같아요. 더 늦으면 하한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장 과장의 톡이다. 어쩔 수 없다. 하한가를 맞기보단 손실을 줄이는 게 현명해 보인다. 바로 시장가로 전액 매도를 시도한다. 마이너스 19% 선에서 겨우 체결이 된다. 손실 800만 원 확정이다. 손이 떨리고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 지금 이 상황이 혹시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다. 


이후 이틀간은 마치 좀비처럼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기만 한다. 몸은 움직이지만 머릿속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 문득 다시 칠성전자 주가를 확인해 본다. 내가 판 금액에서 15% 급상승중이다. 뉴스를 보니 과한 매도로 인한 시장의 반발 심리가 급반등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다. 허탈하다. 매도하지 말고 그냥 버티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물 타기하고 매도한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이려는 누군가의 장난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후 며칠간은 허탈함에 식욕마저 없다. 지난 몇 개월 간의 투자를 복기해 본다. 결론은 역시 실력 부족이다. 부족한 실력으로 명확한 투자원칙도 없이 즉흥적인 대응을 했다. 특히 장 과장의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도 있다. 결과가 이렇게 되고 나니 장 과장과도 서먹해져 버렸다.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 사람을 더 이상 가까이하면 안 되겠다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듯하다.


칠성전자를 매도한 1,0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 고민이다. 역시 아직은 나 스스로를 못 믿겠으니 블루칩클럽 추천 종목이 낫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우려와 달리 블루칩의 추천 종목들의 성적이 꽤 좋다. 이 종목들에 나눠서 넣는 게 좋겠다. 300만 원씩 추가로 매수한다.  


이후 몇 주간은 별일 없이 평화롭게 지나간다. 물론 내 마음은 그리 평화롭진 않다. 아직 손실의 충격이 여전하고 계좌의 마이너스도 그대로다. 그래도 이 손실로 끝났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카페에는 수 천, 수 억 빚을 진 사람도 많다. 

 


지난번 카페에서 잠깐 읽고 애써 잊고 있던 신종독감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모든 뉴스에 신종독감이 머리기사로 실리고 있다. 투자 중인 블루칩클럽 추천 종목들이 하루 만에 7~8%씩 빠진다. 블루칩 황 매니저에게 연락해 봐도 답이 없다. 일주일간 코스피 지수 자체가 20% 넘게 하락했다. 내 계좌는 25% 넘게 빠졌다. 지난번 칠성전자 하락분까지 더해지면 거의 절반이 날아갔다. 이틀 후에 받은 황 매니저의 톡은 나를 더 분노하게 만든다.


- 지금은 저희로서도 전혀 손 쓸 수 없는 전 세계적인 자연재해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안타깝지만 자연재해 상황은 저희도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계약서 약관에도 명시되어 있고 거기에 동의해 주신 겁니다.

이성을 잃은 나는 모든 종목을 시장가로 팔아버린다. 5천만 원으로 시작했는데 계좌에 남은 돈은 2천5백 정도다. 겨우 4개월 만에 반토막이 나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잃어도 나는 최소한 잃지는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누구나 빠질 수밖에 없는 오류, 투자자 90%가 빠지는 오류에 결국 빠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평균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끼지 않을 거라 확신했지만 나도 기어이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9편에서 계속...


※ 이 글은 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픽션입니다.

이전 07화 서울 사는 40대 윤 차장의 투자 도전기 - 7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