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아침 업무는 하는 둥 마는 둥 들어갈 타이밍만 보고 있다. 다행히 오늘은 업무시간에 여유가 있다는 핑계를 스스로 대 보지만 회사에는 살짝 미안하긴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피 같은 내 돈이 걸려 있는 일이다. 장 과장의 추천으로 일단 500만 원 정도를 칠성전자에 넣기로 결정하고 타이밍을 본다. 이렇게 잘 나가는 주식인 경우에는 사실 아침에 바로 들어가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시초에 마이너스로 시작해서 계속 떨어진다. 마이너스 2%에서 3%로 더 내려가다가 살짝 주춤하고 있다. 차트상으론 이 타이밍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투자 멘토인 장 과장에게도 메신저로 의견을 구하니 지금이 좋아 보인단다. 물론 최종 판단은 내가 해야 한다. 현재가에 500만 원 매수를 누른다. 심장이 마구 쿵쾅거린다. 9년 전 차를 구매할 때 이후로 가장 큰돈이다. 그만큼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1분도 안 돼서 전액 체결이 된다.
일단 오늘 매수하기로 한 주식은 샀으니 일에 집중하자. 띠링. 어제 가입한 블루칩주식클럽이다.
'안녕하세요. 블루칩입니다. 고객님을 위한 맞춤 추천 종목은 이동제약, 창조솔루션, 그린테크입니다. 이 종목들에 균등하게 나눠서 12시 이전에 매수하시고 매수 완료된 화면을 캡처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좀 더 전문적인 분석이나 전망도 기대했는데 그냥 이렇게 짧은 메시지만 달랑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런 메시지를 나만 받은 게 아닐 텐데. 그럼 몇 초라도 빨리 사는 게 좋다. 다른 사람이 먼저 사면 그만큼 오를 확률이 높으니까. 실제로 3개 종목 모두 빠르게 상승 중이다. 그래 일단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해보자. 더 늦기 전에 일단 200만 원씩 사 보기로 한다. 빨리 사야 하므로 시장가로 바로 매수 주문을 넣는다. 시장가인 만큼 모두 5초 안에 체결이 완료된다.
아침 10시가 되기 전에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쓰고 나니 - 물론 물건 사느라 써버린 돈은 아니지만 - 머리가 다 어질 해 진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주식에 전혀 문외한이던 내가 벌써 주식에 들어간 돈만 1,500만 원이 넘는다. 가슴 두근거림이 진정이 안된다.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주식 계좌 수익률이 15%를 넘어간다. 투자금액도 그동안 두배로 서서히 늘려서 4,000만 원이다. 수익금액이 500만 원을 넘어섰다. 상한가를 쳤던 우미상사는 급락해서 본전이지만 칠성전자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칠성전자는 1,000만 원으로 늘려서 투자 중이다. 블루칩클럽에서 추천한 종목들도 상승 중이다. 일주일 전에 종목들이 교체되었는데 역시 모두 상승 중이다. 전 세계 주식 시장이 호황인 탓도 있지만 전체 시장 대비해서 내가 가진 종목들의 수익률이 7% 이상 좋은 성적이다. 월급에 맞먹는 돈을 이렇게 벌고 있다고 생각하니 주식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우리 회사에 들어가 있던 200만 원도 계속 매도 타이밍을 보다가 지난 금요일에 팔았다. 15% 이익을 보고 팔았으니 후회는 없다. 이 돈은 어디에 넣을까. 장 과장은 칠성전자를 계속 외친다. 역시 칠성전자가 좋아 보인다. 여전히 차트는 우상향이고 들려오는 뉴스들도 호재다. 베트남에 전장사업을 위한 공장을 짓는다는 발표까지 나서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2달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는 계좌 수익률이 25%를 넘어섰다. 수익은 천만 원을 넘었고 전체 투자금은 5,000만 원 이상으로 불었다. 투자가 잘되니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 성격까지 쾌활하게 변한 기분이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요즘 좋아 보인다는 말을 부쩍 많이 듣는다.
지난주에는 사내 주식투자 동호회에도 참석했다. 장 과장은 동호회가 가치투자 위주라서 자신은 맞지 않는다고 한다. 가치투자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겠다. 분명히 차트 중심의 투자와 다르다는 건 알겠다. 그래도 한 번 배워둘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해서 참석했다. 특히 동호회장이 우리 회사 최고의 알짜배기 투자자로 알려진 서비스운영팀의 고진래 부장님이다. 거의 집 한 채 값을 굴린다는 소문이 있다. 같이 일도 여러 번 해봤는데 참 진국 같은 분이라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다양한 투자 방식도 공부해 두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가입했다.
처음으로 동호회 모임에 참여하니 각자 투자 중이거나 분석 중인 종목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돌아가며 발표한다. 모든 회원들이 재무제표는 물론이고 회사의 분기 사업보고서를 아주 자세하게 분석한다. 경쟁사의 실적, 해외 원재료 수급 상황, 해외 시장 상황까지 세밀하게 다룬다. 디자인 팀의 한 대리는 투자 중인 회사의 주식 담당자와 통화까지 한 내용까지 얘기한다. 나는 신입회원이라 그저 듣기만 했지만 이렇게 까지 시간을 투자해서 연구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대단한 열정들이다. 나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사실 조금 피곤해 보인다. 어차피 차트에 이 모든 변수가 반영되는데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조사하고 연구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할까 싶다.
질문시간에 신입회원답게 당돌한 질문을 한다. 그래서 가치투자의 평균 수익률이 어떻게 되냐고. 부회장인 개발팀의 이 차장이 이렇게 답한다.
"제 경우는 연평균 8% 정도 수익이에요. 잘하시는 분들은 15% 이상도 되시지만 아주 극소수고 보통은 연 10% 목표로 잡고 투자하시면 이상적이죠."
연 10%라. 내가 지금 3개월 만에 25% 수익인데 너무 적은 거 아닌가. 물론 워런 버핏 같은 사람도 있지만 역시 극소수다. 장 과장처럼 가치투자는 나한테는 안 맞을지도 모르겠다. 매번 모든 종목을 저렇게 까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투자해야 한다니 상당히 피곤하고 지루해 보인다. 아직 정식 가입은 아니고 간 보기를 위해 참석한 거니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야겠다.
7편에서 계속...
※ 이 글은 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