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언 Jul 29. 2020

아이 영어학원 선택 표류기

아이의 선택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오래된 동네에 살았다. 자연스럽게 아이 동네 친구 엄마 소개로 안정적이고 아이와 잘 맞는 영어학원을 만났다. 덕분에 아이는 싫어하던 영어도 좋아하게 되었고 장래희망이 영어 성우로 바뀌기까지 했다.


그 영어학원 선택은 아주 심플했다. 바쁜 엄마는 오래전에 소개받은 학원에 갑자기 가보자, 고 꼬신 뒤 샘플 수업을 하고 재미있어하는 아이에게 오늘부터 1일을 외치고 학원에 아이를 맡기고 나왔었다. 아마 아이가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나왔겠지만.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달려들어 영어 공부하지도 않는 부모이기에 영어를 알아듣고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한 아이를 보며 학원 만족도가 높아졌다. 작년에 이사를 준비하며 아이가 울면서 이사 가기 싫은 이유를 꼽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영어학원이었다.


이사오고 나서 처음 든 걱정은 아이 영어학원이었다. 인맥도 없거니와 안면 튼 학부모도 없었던 나는 바빠도 학교 행사마다 월차를 내고 얼굴을 비췄다. 어렵게 안면을 트면 바로 영어학원이 어디가 좋은지 물었다. 많은 영어학원을 소개받았지만 마음이 안 움직였다. 덕분에 아이는 학원 없이 한 학기를 마쳤다.


영어유치원을 나와 국제중 특목고를 준비하는 코스에 전혀 관심조차 없는 나의 처음 꿈은 어차피 오래 배워야 하는 거 즐겁게 해 보자는 소박한 것이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도 어려워하지 않고 학교 영어 말하기 대회에 스스로 나가더니 상을 타오는 기염을 토하고는 다음에는 최우수상이 목표라는 엄마 어깨에 힘이 실리는 말을 해대는 아이를 보며 내심 기대가 생겼던 것 같다. 그럼에도 학원을 선택하지 못하고 코로나로 시간이 자꾸 흐르자 나도 아이도 마음이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안 되겠어서 동네 학원가에 아이 손을 잡고 문을 두드렸다. 크지 않은 동네 학원가에 영어학원이 5개나 있다니 놀라웠다. 5곳을 모두 가서 레벨테스트를 하고 샘플 수업을 듣는 것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분명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좌충우돌 육아에서 내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학원은 아이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원할 때 선택하고 한 번 시작한 것을 6개월 이상 시도해보는 것이다. 학원을 전혀 안 보내고 모든 것을 스스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부모라면 몰라도 부족한 나는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못하는 부분이 명확히 있기에 그때는 내가 정한 기준을 지키도록 노력해왔다.


그래서 나는 쉽게 영어학원을 선택할 수 없었고 귀찮고 번거롭지만 그리고 선택하지 않을 학원에 미안하지만 나는 아이와 함께 5곳을 다녀왔다. 다행인지 5곳 중 한 곳은 중학생 이상의 학생만 다닐 수 있는 곳이었고, 다른 한 곳은 우리가 무슨 무리한 부탁을 한 듯 샘플 테스트를 거부했다. 그래서 아이는 3곳의 레벨테스트를 했고 한 시간 정도의 샘플 수업도 모두 마쳤다. 


학원 투어를 한다니 이제 고학년이 된 아이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던가보다. 레벨테스트를 처음 해보면서도 소극적이지만 다 마쳤고 묵묵히 샘플 수업을 하며 선생님과 학원의 스타일을 파악해냈다. 그리곤 어디가 본인과 맞는 스타일인지, 전에 했던 실수를 하지 않을 곳이 어디인지 인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공부 스타일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회사에 다니느라 아이가 매일 가던 영어학원의 체크 숙제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는데 이만큼 큰 것이 너무 기특했다. 


Photo by Jessica Lewis on Unsplash

모든 수업을 듣고 나서 나와 이야기 나눈 후에 아이가 선택한 곳은 레벨테스트도 가장 어려웠고 수업도 아마 가장 어려울 것이지만 그럼에도 자신과 가장 잘 맞는 곳 같다며, 친구를 좋아하는 본인에게 친구가 없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는 이야기로 선택의 의사를 밝혔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한마디, "미래를 위해 지금은 여기서 공부를 좀 할게요."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듣다가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사건들로 인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힘들게 살지는 말자고 지금 행복한 것이 어쩌면 아이들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조금 부족하더라고 행복한 육아를 선택했던 사람들인지라 어떻게 아이가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도통 모를 일이다. 


많은 부모들이 학원을 선택할 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학원도 보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을 수도 있고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찾아 많은 학원에 보내볼 수도 있으며 나처럼 불안감 혹은 두려움 때문에 어느 정도 절충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고작 영어학원 하나 보내면서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건, 그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 다르고 또 매 순간 다르며 부모와도 다르다. 아이들에게 학원은 어쩌면 학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곳이기에 선택에 있어 최소한 주체적 결정은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좋아서 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한 곳이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노력을 할 것이고 포기 또한 자신의 선택임을 인지할 수 있을 테니까.


밤 10시 대치동 학원가에 아이 픽업을 가는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어쩌면 아직 아이가 어려서 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동네에서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찾아 고민하는 나 같은 부모라면 영어학원 선택을 두고 며칠을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던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아이에게 배워왔다.

이번 영어학원 선택을 두고도 나는 또 아이에게 한 수 배웠다. 결국 공부는 네가 할 건데 엄마의 말 몇 마디가 뭐 가 중요했겠어. 그저 바란다면 이왕 시작한 거 잘해보자는 거, 이번엔 나도 잘 따라가 보겠다는 거지.


'엄마는 앞으로도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기다려볼게. 무척 어렵고 고단한 일이겠지만.'

오늘도 나는 이렇게 다짐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감정의 백만장자, 지금을 기록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