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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조카가 유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첫 조카는 여동생의 딸이다. 우리 딸과 반년차이로 태어나 한국 나이로는 우리 딸보다 한 학년 아래지만 미국 학년으로는 동갑이다. 이 말은 둘 다 올해 대학입시를 치른다는 뜻이다.
한 달 전 예약된 유방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가기 위해 서둘러 가족들 점심준비를 하던 중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지뢰를 피하듯 조심스럽게 문장을 골라 동생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다. 이쁜 조카는 유펜뿐만 아니라 피츠버그대를 비롯한 여러 유수의 대학에도 붙었다고 한다. 학과는 뇌신경을 다루는 물리학 분야라며 언젠가 여동생 내외가 조카를 의대에 보내고 싶어 했는데 잘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부는 학원이나 과외를 다 시켰으면 했지만 동생이 직접 수학과 과학을 가르쳐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동생이 참 대단하다는 칭찬을 했단다.
"이서방 따라 미국 보내놓고 참 많은 날을 맘 졸이며 걱정했었는데... 애들 교육에 허투루 돈 쓰지 않고 중심을 잘 잡고 살아 주어서 얼마나 대견한 지 모르겠어! 게다가 이서방이 있는 학교에 들어가서 학비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야! 작은 애도 대학들어간 거보다 등록금 걱정을 덜어서 더 기쁘다고 하더라.. 혹여 네 마음이 힘들더라도 네가 언니니까 먼저 축하한다고 연락해 줘라."
"엄마아~ 그만 눈치 봐! 나 괜찮아. 내가 바로 축하인사할게."
전화를 끊자마자 육개장을 데우고 잘라놓은 새송이버섯을 볶았다. 냥이들 모자를 떠준다고 한창 뜨개질에 열중하고 있는 딸의 방문이 열려 있어 엄마와 약속한 대로 바로 동생한테 연락하지 않았다. 간소한 점심 상을 치우고 서둘러 몸단장을 했다. 남편이 태워다 주겠다는 걸 마다하고 문을 나섰다. 이상할 정도로 따듯한 겨울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위를 걷다 핸드폰의 시계앱을 열었다. 필라델피아 오전 12시 10분. '이 시간이면 잠잘 시간이지!' 나는 동생을 배려하는 언니니까 연락하는 일을 조금 더 미루기로 했다.
간호사 말대로 두 팔을 위로 올리고 반쯤 비스듬히 누웠다. 뜨뜻미지근한 젤이 가슴에 닿자 눈을 꼭 감았다. 몇 번의 롤링이 있다 잠시 멈추고 딸깍, 또 두어 번 롤링 후 딸각. 한쪽 가슴만 대여섯 번 이상 딸각 소리를 들었다. 눈을 떠 모니터를 보니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초음파 상에 타원형 음영이 보이면 딸각 사진을 찍고 그 크기를 재었다. 어떤 건 2cm, 또 어떤 건 3cm, 또 어떤 건 6cm... 요즘 살이 쪄도 그렇지. 저렇게 큰 뭔가가 자리 잡을 만큼 큰 가슴은 아닌데... 의문과 불안이 동시에 엄습했다. 난생처음 건강검진을 했던 작년, 가슴에 비대칭 음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올해도 역시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비대칭음영은 말 그대로 X-ray 상 양쪽 가슴의 내부 모양이 다르다, 즉 음영이 생긴 쪽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란다. 어쩌면 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당장 병원을 가라고 쓰여있었다.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어 병원을 찾았고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검사를 해야 정확한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고모가 유방암이랬지. 아빠도 위암이고. 이러다 양쪽 다 없어지는 거 아냐? 맘모톰 시술도 엄청 아프다던데 저 딸각 수만큼 하려면 와~ 이런저런 생각에 눈앞이 흐려졌다. 마침내 검사가 끝나고 결과를 듣기 위해 대기실에 앉았다. 몇 분 후 예상치 못한 선고를 듣고 나면 동생에게 전할 말도 못 하게 될까 서둘러 동생에게 톡을 남기기로 했다. 정말, 엄청, 너무, 많이,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그렇게 부사가 많아지면 오히려 내 마음이 가짜 같아 보일까 봐 간단히 '축하한다'는 톡을 보냈다.
검사 결과를 전하는 의사 선생님은 좀 지쳐 보였다. 내가 앉기도 전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확인하더니 크게 염려할 건 없다며 1년 후에 다시 오란다. 진료실에 들어간 지 1분도 안되어 도로 나왔다. 내가 본 건 뭐였을까? 물어보려다 그냥 잊기로 했다. 그새 동생에게서 고맙다는 톡이 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 눈치를 보며 '그래도 네가 언니니까 먼저 인사하라'는 엄마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동생과의 통화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동생과 서로의 상황을 주고받다 보면 수능을 보긴 했지만 대학진학이 어려운 우리 딸의 소식을 전하게 될 테고, 그러면 동생이 괜스레 미안해할까 봐 그 간단한 톡을 보내는 것조차 선뜻 내키지 않았다. 좋은 소식엔 좋은 소식으로 화답해야 축하에 담긴 서로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축하한다고 하면 할수록 괜찮다고 하면 할수록 더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상황은 참 곤욕스럽다. 그렇더라도 나는 늘 동생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인사를 했었는데 왜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아직도… 어쩌면 여전히 내가 동생들보다 못한 언니고 누이라는 생각이, 그래서 아픈 손가락처럼 엄마 마음에 음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걸까?
객관적 지표로 따진다면 어릴 땐 학벌이, 나이 들어서는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동생들보다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은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며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잘 짊어지고 하루하루 소중히 살아내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삶을 제대로 사는 거라고 몸소 보여주신 분이 바로 엄마였다. 그런데도 삼 남매의 삶이 객관적 지표에 견주었을 때 격차가 난다 여겨지면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드는 건 선비 같은 엄마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 걸까?
그치만 엄마가 모르는 게 있다. 어릴 적 여동생에게 인형의 집을 만들어 준 사람도 때때마다 예쁜 엽서를 끼워 필통을 만들어 준 사람도 나였다. 동생이 대학 들어갔을 때 맨 처음 이대 앞 옷가게에서 옷을 사준 것도 나였다. 나와 다섯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과학고 결과를 기다릴 때 엄마도 아빠도 합격자 확인 전화를 못하겠다는 걸 대신한 사람도 나였고, 대학교 면접을 보러 갈 때 같이 가준 사람도 나였다. 그리고 엄마아빠가 시골집으로 내려가신 후 남동생이 박사과정을 끝내고 프린스턴으로 가기 전 7년 동안 남동생을 데리고 살았던 사람도 나와 남편이다. 요는 언제나 나는 동생들을 돌보고 응원하는 쪽에 가까웠지 찌질하게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격지심으로 동생들을 바라보는 그런 언니나 누이가 아니란 말이다.
꼬리를 물다 격해진 생각이 끝날 때쯤 내려야 할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5m 앞에 익숙한 두 모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주춤했다.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 반대편 계단으로 올라갔다. 딸친구 엄마다. 나를 엄청 좋아해 난 줄 알면 저 멀리서도 달려와 팔짱을 끼고 우리 딸은 뭐 하고 있냐고 물어볼 딸친구 엄마이자 동네 언니다. 언니의 딸은 민사고를 다녔으니 내가 예상하는 이상의 학교에 합격했을 것이다. 나는 엄청 많이 진심으로 축하한다 말하고 우리 딸도 나도 괜찮다고 말하게 되겠지. 언니의 표정을 살피다 어떻게 괜찮을 수 있는지 또 설명하려고 드는 내 행동을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분명 후회하게 될 테니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빙~ 돌아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헛웃음이 났다. 왠지 오늘 같은 날은 ‘비대칭 음영'의 메타포인가 싶어서.
오타가 있어 다시 수정을 하는 중에 나 역시 딸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쩔 수 없는 엄마'가 되기 싫어 당당히 딸에게 사촌동생의 기쁜 소식을 알렸다. 딸은 곧바로 사촌동생의 인스타로 들어가 축하인사를 보냈다. 여러 차례 톡이 오고 가더니 내년 여름방학쯤 동생네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우리 딸도 조카도 나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