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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May 20. 2024

하찮은 생각

2405201003

아주 조그만 어항을 샀어. 가로 30cm, 세로와 높이는 20cm.  그 안엔 1cm도 안 되는 물고기 11마리가 들어있어. 물고기는 두 종류야. 종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작은 아이가 이름을 지어주었어. 토리, 모리라고. 가느다랗고 배에 파란 네온빛 줄이 있는 물고기 6마리는 토리, 배가 통통한 멸치같이 생긴 물고기 5마리는 모리.


우울증에 취약한 냥이들을 위해 벼르고 벼르다 샀지. 고양이는 키우기가 쉬워. 정해진 시간에 밥을 챙겨주고 화장실만 잘 치워주면 되거든. 강아지처럼 매일 산책을 시키거나 목욕을 해주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지만 장난감으로 놀아주는 사냥놀이 시간이 부족하거나 집사를 기다리다 너무 심심해지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대. 그러면 잠만 자거나 털이 뽑힐 때까지 심하게 그루밍을 한다네. 유튜브에 나오는 수의사 윤샘이 그러셨어. 온종일 집사를 기다리는 심심한 냥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살아있는 물고기가 있는 어항이라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우울증이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어. 고양이마저 우울증에 걸린다면... 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


토리모리로 인해 우리 냥이들이 좀 더 흥미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단편적인 생각만으로 거금 7만 원을 투자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고기들이 너무 작아서인지 냥이들이 그다지 흥미를 갖지 않더라고. 아주 가끔씩 어항물을 할짝할짝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대. 아니 가끔씩 책장 밑이나 베란다에서 기어 다니는 3mm짜리 벌레에는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보더만... 이번에도 냥이들 관심을 끄는데 실패한 것 같아.


냥이들의 관심이 하루도 채 안되어 사라지자 나도 점점 토리모리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었어. 삼일 후 아차 싶어 어항을 들여다보니 통통한 모리는 그대로인데 6마리의 토리는 3마리밖에 없었어. 또 며칠 후 들여다보니 토리는 1마리, 모리는 4마리만 뿌연 어항 속을 유영하고 있더군. 토리모리를 뜰채로 건져 비닐봉지에 담아주던 마트 수족관 담당 여직원의 말이 생각났어.


“곧 죽을 거예요. 환경이 수족관 하곤 많이 다르니까. 너무 빨리 죽었다고 속상해하지 마세요!”


항의하러 오지 말라는 뜻인 줄 단박에 알아챘지만 그렇다고 이리 쉽게 빨리 죽을 줄은 몰랐어. 생명에 대한 책임감 없이 토리모리를 데려온 게 너무 미안했어. 고백하자면 너무 작아서 또 마리당 천 원이어서 ‘생명’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것 같아.


그 길로 다이소에 가서 수돗물 중화제와 수족관 오물분해제를 사 왔어. 보기보다 무거운 어항을 깨끗이 청소한 후 수돗물 중화제를 넣고 한 시간을 기다리다 오물분해제도 넣었어. 그리고 5마리의 토리모리를 어항에 풀어주었더니 너무 신나 하는 게 보였어. 그 앞에 엎드려서 토리모리가 왔다 갔다 하는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더라.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어.


'너네한텐 내가 전지전능한 존재일 텐데... 어쩌지 나는 이리도 어리석어서...'


또 한참을 바라보는데 마음에 조금씩 슬픔이 번지더라.


'나도 전지전능한 존재에게 하찮은 존재였을까? 그러니 이리 내버려 두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다섯 마리의 토리모리는 살아남았습니다. 아마도 원래 튼튼한 개체라 그랬겠지요. 저도 생명력은 하나는 강하니 이 녀석들처럼 어떻게든 살아남겠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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