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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의 달달한 향이 감도는 아주 이른 아침이다. 이 시간에 깨어있는 집사를 보니 고양이들이 신이 났다. 지들끼리 뒹굴거리며 거실과 부엌을 놀이터 삼아 우다다를 한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온 세상에 내려앉았다. 건너편 아파트 창에 하나둘 불이 켜진다.
일주일에 2번 출근하는데 지난주는 주말까지 꼬박 출근을 했다. 제안서 마감이 코 앞으로 다가온 탓이다. 실은 그 핑계로 가족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새벽녘에 홀로 일어나 첫 차를 타고 회사가 있는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50분가량 2호선 반바퀴를 돌면서 릴스를 보다가 브런치스토리 글도 보다가 창밖에 색이 바뀌는 풍경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다 눈을 뜨면 늘 아현역쯤 된다. 마음의 모드가 자연스럽게 바뀐다.
일을 시작할 때는 회사가 먼 게 부담이었는데 지하철을 타는 동안 천천히 지난한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로서 모드가 바뀌는 과정을 어느새 즐기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지금은 길고 긴 출퇴근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이렇게 쓰고 다시 읽어보니 지난한 일상은 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랬겠지.
추석 이후로 아이들과 남편 사이가 나빠졌다. 발단은 아이들이 더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대서 시작되었다. 남편은 그래도 가자고 애원하다시피 요청을 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입을 닫았다. 예전 같으면 중간에서 어떻게든 풀어보려 애를 썼을 테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급하게 봉합시켜 놓은 곳은 또다시 말썽이 되고 만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들어보고 '그럴 수 있어'라고 인정을 받으면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서서히 녹을 텐데… 그러나 자신의 부모와 얽힌 이야기라면 인정이 쉽게 되지는 않을 터. 아이들과 남편의 마음이 그렇게 대치되고 있었다. 제대로 아물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간섭 없이 서로를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잠자코 식당 아줌마가 되기로 했다.
식사시간이 되면 각자의 방으로 밥을 넣어주고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고양이 두 마리와 놀다 잠이 들었다. 화목하지 않은 가족을 벗어나는 일이 곧 출근이 된 셈이다.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에 연연할 나이도 아니고 인간관계가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큰 회사도 아니었기에 그저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모처럼 무해하고 무익한 일을 하고 있다.
기억을 거슬러 보면 나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새벽에 홀로 일어나는 걸 때때로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일요일이 되면 4시쯤 눈이 떠졌다. 옷을 갈아입고 버스로 서너 정거장쯤 되는 거리를 걸어가면 놀이터가 나타난다. 30분 정도 그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아무도 모르게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 그네가 특별했냐고. 아니 우리 동네에도 있었고 대구에 살던 동네에도 있었던 흔하디 흔한 그런 그네다.
어느 날은 같이 자던 동생이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일어나 있었다. 나는 10살, 동생은 7살. 동생의 손을 잡고 걷고 걸어서 그네에 도착했다. 동생은 언니가 일요일마다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불평 없이 나란히 그네를 탔다. 그 후로도 동생은 무해하지만 무익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나를 종종 따라나섰다.
나도 갈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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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시간에 끄적이는 것 또한 무해하고 무익한 일의 연장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땐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도망을 간 게 아닐까 싶다. 한 주간 이리저리 치였던 마음을 잊어버리러…
추슬러야 하는 마음, 불편한 마음, 불안한 마음을 그렇게 모아 보내고 나면 다음 주는 살랑살랑 보낼 수 있겠지. 날이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