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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나 May 29. 2024

인공호흡

물고기와 열대 새우 

설레기도 하고 돈 나갈 일이 많아 걱정도 되는 5월이 다가왔다.

하나 밖에 없는 미운 5살 조카의 생일은 4월 16일과 더불어 5월 5일 어린이날 선물과, 5월 8일 어버이날까지 숨 돌릴 틈 없이 챙겨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번 조카의 선물은 오랜 고민 끝에 나의 재능을 살려 좋아하는 애착인형과 함께 찍은 사진을 참고해서 그림을 그려서 분홍색 배경이 담긴 액자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좋아하는 분홍색 쿠로미가 있는 커다란 헤어핀과 조그만 집게핀, 분홍색 루피가 그려져 있는 비누 방울까지 세트로 맞춰서 정성스럽게 준비를 했다. 게다가 선물 포장까지 분홍색 스티커와 리본까지 준비를 했으니 어디하나 빈틈이 없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드디어 만나기로 한 어린이날, 조카가 달려와 나에게 안기는데, 한 달 정도 보지 못한 오랜만의 반가움이 전해졌다. 


그리고 대망의 선물 오픈식 시간, 엄마가 갑자기 커다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우리 지우, 물고기 키우고 싶다 했지? 할머니가 어항 사놨어. 이따가 물고기 사러 가자"     


조용하던 조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미소를 지으며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걸 보는 내 마음도 같이 설레고 뿌듯했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선물을 열어 보는데 금방 할머니가 준비한 어항 만큼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내 선물을 먼저 열었어야 했는데...찰나의 순간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생겼다. 


내가 그린 그림을 유심히 보는 지우는 옆에 같이 그린 애착 고양이 인형과 너무 똑같다고 신기해했다.     


"이모가 그린거야? " 눈이 동그라지면서 천천히 그림을 살펴보며,     


"냐옹이가 그림이랑 똑같아“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이것도 똑같다"     


냐옹이 인형이 너무 낡아서 대일 밴드가 인형 온몸에 덕지덕지 붙여져 있는데 그 부분까지 신경 써서 그렸다. 그 부분을 살짝 인정 받은 것 같아서, 내심 기뻤다.     


빨간 공휴일에 폭우까지 쏟아져 실내공간에 밥 먹으러 가서도 차를 마시러 가서도, 수많은 웨이팅과 사람들로 기가 다 빨려 갔다. 나는 속으로 이 행사를 얼른 마치고, 언제 집에 갈 수 있을지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드디어 지우를 위한 물고기를 사러 간 마지막 일정이 다가왔다. 수많은 차들로 주차공간이 없어서 긴 기다림 끝에 겨우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물고기 담당 직원이 와서 같이 살아도 되는 물고기 종류들을 설명해주고, 암수 한 쌍으로 같이 키우면 교배하여 새끼도 낳을 수 있다고 팁을 줬다. 한참을 구경을 하는데 모래 바닥 사이에 아주 작은 생물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물어보니 열대어 새우였고, 어항의 이끼들, 불순물들을 모두 먹어치우는 청소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심지어 우리가 볼 때는 같은 종족인 죽은 새우 사체를 여러 새우들이 같이 뜯어 먹고 있었다. 순수한 지우를 위해서 잔인한 모습을 피해 억지로 시선을 돌려 다른 물고기들의 예쁜 모습들만 보여주려고 애썼다.     


우리는 고민 끝에 노란색 몸통이 예쁜 옐로 골드, 미키마우스가 엉덩이에 그려진 미키마우스 플래티, 열대어들과 열대어 새우까지 구입했다. 모래,수초,여과기,물고기 먹이까지 야무지게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카트를 끌고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지우는 내 귀에다 대고 물고기들 놀라니깐 천천히 카트를 밀라며 당부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뒷좌석 차에 타고 내 무릎 위에 탄 지우가 물었다.     


"새우가 빨리 죽으면 어쩌지? 한 마리 밖에 없어" 하며 시무룩해 했다.     


"새우가 어항의 이끼들,불순물들을 먹으면서 청소해주니깐 오래 살거야 걱정 마"     


언니가 대뜸 생각 없이 


"아까 새우가 같은 종족 뜯어먹던데 물고기들까지 먹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지우가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다 속삭였다.


"아까 새우는 살리려고 인공 호흡하는 중 이었던 거 아닐까?"     


그 순간 차에 타고 있던 모든 어른들이 숨 죽이며 아무 말을 잇지 못했다.     


"와, 우리 지우 너무 예쁘게 말 한다. 맞아, 아까 우리는 인공 호흡하고 있는 새우를 본 거야"     


왜 나는 오늘 내내 사람 많고 기다리는 상황에 짜증내며 나의 휴식만 생각했을까.      


잠깐 부정적인 생각들을 했던 내 모습, 어른의 탈을 쓰고 하루를 가식적으로 보낸 건 아닐까 후회가 되었다.    하루 종일,혹은 오늘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기대하고 설레어하고, 손바닥만한 가방에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준비해오며 할머니,할아버지,이모에게 자랑하며 이쁨 받고자 하는 그 소중한 마음을 내가 너무 가볍게 여긴 건 아닌지 미안했다.      


"지우야 이모가 물고기 잘 크는지 꼭 보러 갈께, 지우가 이름 지어서 잘 키우고 있어야 해"     


"응"      


말수도 적고 표현도 많이 안 하는 내성적인 조카지만, 조그만 턱으로 강하게 움직이는 단호함과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순간, 꼭 와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피곤함과 보이지 않는 서투른 표현에 지쳐 있던 퍽퍽한 마음에 인공호흡 해주는 순간을 기억하며, 아끼지 않고 솔직하게 내 사랑을 흠뻑 표현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지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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