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작해봅시다, 미래의 내가 마무리 할거예요.
끝을 달리는 연말, 12월에 나는 다시 헬스장을 등록했다.
항상 아침 달리기에 대한 갈망은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실천을 하지 못했다.
왜 나는 그토록 달리고 싶은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성취감에 중독이 된 것 같다.
불완전한 삶 속에서 하나라도 내가 계획한 것을 이루어내면 그 성취감으로 하루의 시작이 활기차게 환기되는 느낌에 매료 되다보니 계속 그 뿌듯함을 찾게 되었다.
아침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몇 가지 준비사항이 있는데 특히 추운 겨울에는 더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한다.
[아침 달리기 준비사항]
1.전날 밤 11시 전에 잠들기
2.달리기 운동복 준비해두기
3.침대에서 이불을 박차고 잘 나오기
4.운동용 반팔, 반바지, 상의 바람막이, 하의 기모레깅스 착용
5.방한용 장갑, 마스크, 모자 착용
6.좋아하는 노래 세팅하고 이어폰 준비하기
그리고 런데이 어플에 맞춰서 인터벌 달리기를 시작하면 된다. 30분 남짓 달리기를 쉬지 않고 뛰다보면 내 심장소리가 귀에 들리고 가빠진 숨소리에 걸맞게 입김이 새어나오는 걸 느낄 때쯤 걷는 타이밍이 온다. 추운 날씨에는 특히 입김이 새어나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코끝이 시려오면 진짜 겨울날씨를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변태적이지만 이 추운 날씨를 이겨낸 나 자신이 더 뿌듯하게 느껴져서 성취감도 두 배로 더 크게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달리기를 하는 순간은 단순해지는 머릿속이 좋다.
전날 자기 전까지 꽁꽁 싸매던 고민들로 복잡했던 머릿속은 오로지 목표만을 위해 달리는 내 몸과 인터벌 달리기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귀 기울이는 행위에 집중해있다.
나는 이 재부팅 하는 순간을 즐긴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빠르게 돌아가는 머릿속의 장치들을 잠깐 꺼두고 더 현명하게 잘 돌아가기 위해 숨을 고르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업무나 일상생활에서 핸드폰과 컴퓨터 화면을 번갈아 확인하면서 눈은 화면에 귀는 다른 소리를 심지어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걱정하면서 강제 멀티태스킹을 하며 살아간다. 살아가는데 점점 해내야 하는 일들은 늘어나고, 무거운 책임감에 걸맞게 결과물을 완벽하게 얻기 위해서는 쫓기는 시간에도 여러 일들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달리기에 진심인 내가, 추운 날씨를 이겨내지 못하고 문 밖에 나가기가 힘들어서 실천하는 횟수가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되었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정신이 들어 눈동자만 굴리며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죄책감이 늘어났다. 달리기를 위해 큰 맘 먹고 구입한 고가의 러닝화와 러닝복도 죄책감에 한 몫을 했을 수도 있다.
남들은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시작하지 못하면 병이 나는 사람이다.
마음 한 편에 작은 짐에 눌러져 한 달간 고민만 하고 있을 때쯤 운명적으로 집 앞에 새로 생긴 헬스장을 발견했다. '오픈 기념 할인! 회원님 헬스장은 오픈 할 때가 가장 저렴합니다! '
이 문구에 홀려 나도 모르게 그 회원이 되기 위해 상담 데스크에 앉아 회원권을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1년 권을 등록했다. 이유는 가장 저렴했고 6개월과 1년이 별반 차이 없는 놀라운 가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나는 완벽하게 시작할 수 있는 달리기 환경 세팅을 마쳤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다.
더 자라고 유혹하는 침대를 이겨내고 일어나기
따뜻한 헬스장을 가기 전에 집 문 밖을 잘 나가기만 완료하면 일단 반은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첫날 아침 6시 헬스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광광 울리는 경쾌한 음악 소리와 따뜻한 온도가 피부에 닿으니 움츠렸던 몸도 느슨해지면서 운동 욕구가 솟아오른다.
스트레칭 존에 가서 폼 롤러로 굳어 있는 온 몸을 조심스레 깨워주고 좋아하는 유투버 소미핏님의 하체 스트레칭으로 다리와 고관절 근육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20분 남짓 스트레칭을 해주며 온 몸을 이완시켜주었다.
그리고 아직 웨이트존은 거들떠 볼 여유가 없으므로 흐린 눈으로 패스하면서 재빠르게 러닝 머신 위로 올라간다. 런데이 어플을 실행하고 러닝 머신 위 티비도 적당한 채널에 맞추고 달리기 세팅을 해준다.
달리기 시작과 끝 정리 달리기 5분씩, 속도 7로 빠르게 달리기 4분, 천천히 걷기 2분을 5번을 반복하다보면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가있다.
어느새 땀이 흠뻑 젖어 빠르게 샤워를 하고 더 재빠르게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도착한다. 한 달간 주5회 목표를 가지고 실행해본 결과 80프로 남짓은 성공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항상 말도 안 되는 거창한 목표를 가진 덕분에 용두사미의 대표적인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다이어리 첫 장이 가장 화려하고 온갖 포부가 다 적혀있지만 몇 장만 지나면 어느새 기록 자체를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 것처럼, 항상 시작과 동시에 끝까지 잘해내야한다는 압박감이 지배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하루라도 실패하거나 계획에서 틀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빠르게 포기를 하며 회피를 해왔던 것 같다.
꼭 완벽하게 잘해야 할까?
꾸준하게 뭔가를 계획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시작하는 것 자체도 대단한 것 아닐까?
모순투성이의 불분명한 인생의 길을 더듬어가면서 그래도 아직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매일 달리는 것이 그 같은 성취를 조금이라도 보조해주었다고 한다면, 나는 달리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로는 나는 시작하는 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주5회로 목표를 잡았지만 하루쯤 건너뛰면 어때 내일 다시 하지 뭐, 늦게 일어났지만 일단 헬스장은 가서 조금만 운동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니 죄책감도 덜했다.
아직 내 몸에 적응하는 달리기 초보이지만, 아침 운동의 장점은 확실히 느꼈다.
매일 아침 5분만 더 자고 싶어서 침대와 한 몸이다가 지각 면하기 직전에 겨우 회사에 도착해서 하루의 시작이 다 꼬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침 운동을 하고 나니 느낀 점은 생각보다 세상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정말 많고, 무엇보다 웨이트 운동까지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서 존경심마저 들었다.
아침 운동을 하고 바로 출근을 하는 덕분에 일찍 회사에 도착해서 황금 같은 10분 커피 타임을 가지며 여유가 생겼다. 활기차게 아침을 여니 퇴근까지 그 기분이 이어져서, 온전히 내 하루가 나를 응원해주는 기분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저녁에 급하게 생기는 약속이나 회사 일, 여러 일들이 저녁에 생기는 반면에 아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로지 내 시간이기에 잘 활용할 수 있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시작을 했기에 소박한 목표를 적어본다면,
1. 지치지 않는 체력 만들기
2. 적당한 몸무게 감량 (제일 중요!)
3. 10키로 마라톤 도전
작은 목표를 세웠으니 언젠가는 꼭 이뤄 내리라 굳게 믿는다.
일단 나는 시작했으니 어떤 마무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나는 꾸준히 해낼 것이고 시작하기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성취감을 느끼며 풍부한 삶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망설이고 있다면 일단 시작을 해보자, 마무리는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