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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고래 Aug 01. 2022

손가락이 이렇게 말했다

손가락이 부러지니 알게 되는 것들

서핑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쳤다. 처음에는 오른쪽 네 번째 손톱 사이로 피가 좀 나고, 손가락의 첫째 마디가 부어올랐는데 서핑을 한참 하던 중이라 간단히 지혈을 하고 계속 서핑을 했다.


이후 서핑을 마치고 다시 손을 보니 손톱에 멍이 들고, 붓기가 빠지지 않아 손가락 윗 마디가 통통했다. 나는 붓기 정도는 당연히 가라앉을 테니 별일 아니겠지 생각하고 뒀다가 일주일이 지나도 붓기와 통증에 나아짐이 없어 정형외과에 갔다.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오는 동네 정형외과의 대기실에 앉아서 속으로 “아무 일 아닐 텐데…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할까? “ 싶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차도가 없으니 엑스레이를 찍어 아무 문제없음을 확인하자-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기다렸다.


그러다 드디어 선생님을 만나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알고 보니 손가락 첫 번째 마디 윗부분이 부러졌다고 하셨다. 아니 ‘금도 아니고 부러졌다고?! -_-;;)


선생님은 그대로 두면 뼈가 알아서 붙으나 모양을 잡아야 하니 한 달 정도 깁스를 하자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대수롭잖다는 듯이 “네~ 해야 하면 깁스하면 되죠!”하고 말했는데ㅠ 깁스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후회막심이다.


네 번째 손가락이 자꾸만 이렇게 말하는 거다.


이제 알겠지? 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컴퓨터 타이핑을 치는데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을 못쓰니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게 되었고ㅠ


비가 오면 우산 손잡이 부분을 네 손가락으로 거머쥐지 못해서 다른 세 손가락에 더 힘이 들어가 손의 피로도도 높아졌다.

네 번째 손가락이 깁스 덕분에 전혀 구부러지지 않으니, 덩달아 그 주변의 새끼손가락이나 중지도 시원하게 구부러 지지를 않는다. 이 손가락들의 움직임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이번에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았다.


젓가락질을 할 때도 젓가락의 옆면, 즉 ‘대’ 부분을 네 번째 손가락이 받쳐줘야 하는데 제 구실을 못하니, 젓가락을 움켜쥐는데도 손 근육에 스트레스가 생긴다.

손가락의 쓰임을 넘어, 깁스 때문에 오른쪽 손은 물에 닿아서도 안된다. 때문에 샤워할 때나, 세수할 때도 무척 곤란하고 당근 라페를 위해 당근을 갈고 싶은데ㅠ 채칼을 고정시키고 당근을 잡아 채를 내기에는 손의 움직임이 너무 부자연스럽다.


더구나 지금은 여름인데, 씻을 때마다 랩을 감아서 방수 처리를 해야 하고, 수영장도 당분간 금지되었다.


사실 이 모든 불편을 겪기 전까지 손가락 하나하나의 쓰임에 대해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손가락은 당연히 10개고, 그 자리에서 조화롭게 움직이며 ‘손’이 하는 역할을 하는 부속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네 번째 손가락 부상으로 모든 손가락 하나하나가 다 쓰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가락부터 발가락 하나하나까지도 다 제 각각의 쓰임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하나 ‘당연시하지 말자.’이다.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니 몰랐지만, 사실 수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잠시 그 역할을 못하게 되자 수많은 불편을 야기한 넷째 손가락처럼, 인체의 수많은 부분, 그리고 이 생각은 주변에 당연한 듯 존재하는 물건과 사람들까지로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든 내게 쓰임이 있되(몸과 마음적으로 모두!), 늘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있다면 한 번 상세히 들여다보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또 사라지지 않도록 잘 돌봐야 할 것 같다.


덧.

웃기는 이야기인데, 손가락이 다쳐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지자 ‘아 이걸 브런치에 써야겠네!’하고 생각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중국 공항에서 퇴짜 맞고 한국으로 귀국한 일화를 쓸 때 그 추방의 경험이 처음 겪은 것이니 언젠가 글로 쓸 것이라는 걸 알았다는 작가의 말이 있는데-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후루룩하고 쓰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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