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에 자부를 느끼면 좋겠어요.

#5 Bayonne ▶︎ Saint-Jean-Pied-de-Port

by 박고래

생장 드 피드포르로가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프랑스 지방의 풍경은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남쪽으로 근접해 갈수록 더욱 짙은 초록빛을 뿜어내는 전원 풍경이 펼쳐졌다. 특히 바욘에서 생장으로 갈 때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기차인 떼제베(TGV)가 아니라 훨씬 작고 비교적 느린 저속 열차(TER)로 갈아탔기 때문에 풍경을 더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투명한 통유리창 밖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한가한 시골 풍경, 그리고 자유롭게 풀을 뜯는 해피 카우들의 모습은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속 열차에는 나 이외에 다른 승객이 없었다. 기차에 올라탄 뒤에는 유리창으로 가득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음미했다. 내가 타야 할 기차가 정차한 플랫폼을 찾으며 진땀을 흘렸던 아침의 기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어느새 기쁨만이 마음에 가득히 채워졌다.


‘이 여정이 예정보다 길어져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차여행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기차 내부 전광판에 ‘Saint-Jean-Pied-de-Port’라는 목적지의 지명이 떠올랐다. 내릴 준비를 하며 ‘고맙다’라는 뜻의 프랑스어를 입 속에서 반복해 연습해 보았다. 그리고 기차가 완전히 멈췄을 때 느린 걸음으로 내리며 차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메르시 보꾸(Merci beaucoup)!”


어설픈 발음으로 수줍게 건넨 인사였지만 마음만은 진짜였다. 아름다운 시골길 사이로 텅 빈 열차를 몰아 나를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그가 진심으로 자부를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쨍하니 내려 쬐는 햇볕을 받아 선명함을 더하는 남프랑스의 한 마을, 생 장 피드포르에 도착했다. 기차역에 내려 간판에 적힌 지명을 바라보니, 긴 시간의 여정으로 인한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도 잠시, 나는 금세 멘붕에 빠졌다. 순례자 사무실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져온 여행 책자에도 주소가 없고, 휴대폰은 마을 초입에서 배터리가 없어 꺼져버린 상황이었다. 덕분에 뜨거운 햇볕이 내려 쬐는 휑한 마을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뒤적뒤적 충전기를 찾았다. 그리고 휴대폰이 켜질 때까지 멍하니 동네 입구를 응시하며 기다렸다. 최대한 느슨하게 여행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낯선 동네로 가면서 휴대폰 배터리 충전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니! 이런 나의 안일함이 당황스럽기도, 우습기도 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휴대폰이 켜진 뒤 지도 앱(App)으로 방향을 잡고, 언덕길로 통하는 작은 골목의 입구로 걸어갔다. 기차 안에서 기분 좋게 받아냈던 햇살이 이제는 제법 뜨겁게 내리쬐고 있어서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언덕길을 오르는 일에 지쳐갈 때쯤 55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그 유명한 55번지 공립 알베르게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순례자 등록을 위해 순례자 사무실에 들르는 일이 급선무였다. 같은 골목을 반복해 오르내렸지만, 여전히 순례자 사무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들떴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길을 물을 사람 하나 안보이는 적막한 마을 분위기에 당황스러움만 커져갔다.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달래고자 길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제야 눈 앞의 돌담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과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기운을 차린 뒤 다시 휴대폰 지도 앱으로 순례자 사무실 주소를 입력하고, 네비게이션을 가동시켰다.


도보 1분 거리


1분 거리라고 하는데, 여전히 사무실로 짐작되는 건물이나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길맹인 내가 바로 코 앞에 있는 사무실을 못 알아보고 지나친 것이었다. 언덕으로 오르는 큰 길에서 55번 알베르게에 닿기 직전 왼편으로 난 작은 골목에 순례자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작은 골목이 있으니까 못 찾지!’라고 괜히 골목 탓을 한 뒤, 느린 걸음으로 사무실로 다가갔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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