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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Aug 08. 2024

내 아기를 볼 권리

한국 산부인과 의료진에게 말한다

임신 중기는 임신 생활의 꽃이라고 하지만 나는 임신 중기에 아기를 잃었다. 내가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깊은 슬픔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슬펐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특히, 겪어보지 않은 지인들의 위로는 고맙기보다 오히려 상처가 됐다. 어떤 친구는 "앞으로 살다 보면 이 일보다 더 큰 일도 있을 거니 이런 일로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면 깨끗하게 싹 잊을거다"고 했다.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뱃속에 5개월간 품고 있던 아기를 잃어봤냐고.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면 잊히는 슬픔인지 어떻게 아냐고. 살다가 이것보다 더 큰 슬픔이 찾아온다면 나는 이겨낼 용기가 없을 것 같은데 이 말을 위로라고 한다니. 사람들은 위로에 참 서툴다. 대신 큰 위로가 된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와 함께 울어준 친구들이었다. 침묵과 포옹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됐다. 그래서 남편 외에 그 누구와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기는 잘 크고 있냐"는 문자 메시지에 답할 힘이 없었다. "아기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문자를 쓸 때마다 애써 이겨냈던 슬픔이 다시 올라와 몇몇 문자 메시지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은 상태다. (혹시라도 내 글을 우연히 읽은 지인들이 있다면 "괜찮냐"는 안부 문자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문자에 답장할 힘도, 설명할 힘도 없습니다. 영원히 괜찮아지지 않는 슬픔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당할 수 있는 슬픔으로 바뀔테니 기다려 주세요)


중기 유산은 만삭 출산처럼 똑같이 출산과 분만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뱃속에 있는 아기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이런 사실을 아는 친구들도 몇 명 없는 듯했다. 그리고 아기를 보낸 뒤 먹일 아기는 없는데 젖이 나온다는 것도. 이런 과정 하나하나를 누구에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유도 분만 날짜가 다가오자 너무 떨리고 긴장됐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의 주치의가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는 산모와 한 병실을 써야 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걱정을 주치의에게 이야기하자 그녀는 "우리는 공립병원이어서 1인실을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의 상황을 최대한 배려해 줄 것"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주치의의 말이 맞았다. 병원에 입원하니 나의 입원실은 이 병원에서 가장 슬픈 공간이었다. 나처럼 아기를 잃은 엄마들만 입원한 방이었다. 홍콩 공립병원 의료진의 배려였다. 입원 첫날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지만, 둘째 날에는 두 명이 더 입원했다. 커튼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종종 들렸다. 그럴 때면 나와 남편도 같이 흐느꼈다. 의료진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들렸다. 임신 23주인 한 엄마는 아기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비홍콩인인 그녀는 남편이 본국에 있어 사촌 언니를 보호자 삼아 병원에 왔다. 남편도 없이 아기를 보내야 하는 그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과 몰래 울었고, 나중에 나혼자 그녀의 침대를 찾아가 같이 껴안고 울었다.


유도 분만을 하기 전 의사는 나에게 물었다. "아기를 낳으면 얼굴을 보고 싶으세요? 전적으로 당신 선택이에요. 우리 팀 선생님들이 아기에게 예쁜 천사 옷을 입혀서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게 해 줄 거예요."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선생님은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되니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때 한국 의사 친구의 조언이 떠올랐다. "아기 얼굴을 보면 트라우마가 될 테니까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보지 마."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일을 겪어보지도 않은 그 친구가 의사라고 한들 어떻게 알까. 이 말은 나뿐만 아니라 중기 유산을 경험한 다른 엄마들이 한국 병원에서 똑. 같. 이 산부인과 의료진에게 들은 말이다. 도대체 한국은 의대에서 아기 부모에게 사산아 얼굴을 보여주지 말라는 집단 교육이라도 받는 것일까. 아기 얼굴을 볼 권리는 부모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지금은 생각해 보면 그 조언은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선을 넘었다. 왜냐하면 홍콩 의료진이 "아기 얼굴을 보고 싶냐"고 여러 번 물어볼 때마다 그 친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홍콩 간호사들은 우리가 아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감정적으로 도왔다. "아기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라"며 편지지와 색연필을 줬고, "아기와 제일 어울리는 것으로 골라보라"며 수십 개의 인형도 우리 앞에 펼쳐놨다. 남편과 나는 눈을 감은 노란 별을 골랐다. 우리 아기의 태몽이 별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간호사는 아기 위에 덮어줄 작은 이불을 만들라며 천 조각과 반짇고리를 가져왔다. 슬픔에 빠져있는 우리가 생각도 못했던 일들을 홍콩 의료진이 우리 대신 챙겨줬다.


우리 딸은 효녀였다. 의사는 출산까지 최대 48시간까지 걸릴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 딸은 약 10시간 만에 태어났다. 아기를 낳자마자 간호사는 또 물었다. "아기 얼굴 지금 보여줄까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생각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자 갑자기 우리 딸이 너무 보고 싶었다. 딸을 꼭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에게 물었더니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부인가 보다. 출산 다음날 병원에서 연결한 임상 심리사가 나를 찾아왔다. 내 마음은 어떤지, 아기는 봤는지, 슬픈 마음을 어떻게 추스르고 있는지 물었다. 그녀에게 내 걱정을 이야기했다. 우리 아기를 보고 싶은데 너무 슬플까 봐 무섭다고. 그러자 그녀는 "현재 아기의 모습이 어떤지 의료진에게 물은 뒤 마음의 준비를 하면 아기를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임상 심리사의 조언대로 나는 간호사에게 우리 아기의 생김새를 물었다. 간호사는 우리 아기와 비슷한 주수의 아기들의 외형을 토대로 침착하게 설명했다. 나는 또 물었다. "우리 아기 얼굴 이제 보고 싶어요. 그런데 약간 겁나기도 해요. 너무 슬플까 봐..." 간호사는 따뜻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기 얼굴을 보면 애도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아기를 하늘나라로 보낸 많은 엄마들이 여기서는 아기 얼굴을 봐요. 충분한 시간을 줄 테니 원하는 만큼 아기와 시간을 보내고, 사진도 찍고, 안아도 보고. 하고 싶은 것 다하셔도 돼요." 간호사의 따뜻한 한 마디에 남편과 나는 손을 꼭 붙잡고 우리 딸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우리 딸은 분만실 한가운데 작은 라탄 침대에서 천사 옷을 입고 우리가 만든 이불을 덮고 잠자고 있었다. 아기 침대에는 우리 부부가 고른 잠자는 별 인형과 편지가 같이 들어 있었다. 분만실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우리 딸 코는 나를 닮았고, 얇은 입술은 남편을 닮았다. 이 작은 얼굴에 우리 부부의 얼굴이 있다니. 아주 작은 손가락, 발가락에는 손톱, 발톱까지 나 있었다. 우리 아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슬퍼졌다. 이렇게 귀여운 우리 딸을 내가 안 보려고 했다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을 보자 죄책감이 밀려왔다. 우리 딸은 엄마 아빠가 올 때까지 혼자였겠구나.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 이 예쁜 얼굴을 엄마가 안 보려고 했다니. 우리는 차례로 아기를 가슴에 안았다. 낳을 때는 따뜻했는데, 하루가 지난 우리 아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남편과 나는 1시간 넘게 딸 옆에 있었다. 딸과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 평생 후회할 시간이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우리 딸 얼굴을 보고 작별 인사를 한 것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하게 중기 유산을 경험한 한국에 사는 엄마들은 아기 얼굴을 본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했다. 아기 얼굴이 보고 싶어 의료진에게 사정하면 하나 같이 돌아오는 답변은 "아기 얼굴을 보면 트라우마가 되니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란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유산 자체가 트라우마라고. 당신들이 뭔데 우리 아기 얼굴 볼 선택권을 박탈하냐고. 죽은 아기의 얼굴을 볼 권리도, 안 볼 권리도 우리 부모에게 있는데 한국 산부인과 의료진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가장 연약한 상황에서 자기네들 마음대로 아기 얼굴 볼 권리를 박탈한다.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내가 겪었을 일이고, 나의 동지들이 이미 겪은 일이다.


아기 얼굴도 못 보고, 장례식도 하지 못하고 아기를 잃은 엄마들은 얼굴도 모르는 아기를 지금도 그리워한다. 한 엄마는 아기를 낳은 뒤 분만실 밖에서 우리 아기 얼굴 보고 싶다고 여러 번 의료진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무너졌다고 했다. 내가 낳은 내 새끼인데 왜 우리가 아기 얼굴을 보기 위해서 구걸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간곡히 부탁해도 당신들은 뭔데 우리 아기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나는 한국 의사 친구가 말한, 그리고 한국의 산부인과 의료진들이 아기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근거로 말하는 그 '트라우마'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이제는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우리 딸 얼굴을 생각할 때마다 슬프지만 동시에 넘치도록 행복하기 때문이다. 형체 없는 트라우마 때문에 우리 부모들에게 내 새끼 얼굴 볼 권리를 앗아간 대한민국의 산부인과 의료진들이 무척이나 원망스럽다.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 찬 한국 의사들이 "우리가 연약한 환자들을 위해 대신 결정하겠다"며 만든 문화인가, 아니면 한국 의대에서 죽은 아기의 얼굴은 아무리 부모라도 보여주지 말라고 교육받는 것인가.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아기 얼굴을 볼 선택권을 당신들에게 양도한 적이 없다. 혹시라도 내 글을 읽는 산부인과 의료진이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사산아를 보고 싶다고 하는 부모들을 마주한다면 제발 트라우마 운운하지 말고 우리에게 선택할 기회를 줬으면 한다. 숨을 쉬든, 숨을 쉬지 않든 내 아기의 얼굴을 안 보여줄 권리는 당신들에게 없다.


우리 딸과 잘 어울리는 베이비 해바리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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