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기
세상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어느 날, 잠시도 쉴 수 없어서 걸어가면서 생각해야 할 때가 있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다니고 있을까. 잠시 고민이 스쳐갔는데 하루, 이틀이 가도 뇌리에 박혀 떠나가지 않았다. 그 시기 나는 따야 하는 자격도 많았고, 자격을 따고 나면 어떤 상담사가 되어야 하는지도 고민하고 있었다. 상담가가 되고 나면 최종적으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있을까. 궁극적인 목적까지 확고했다.
나는 굉장히 거시적인 사람이다. 큰 그림이 있어야 과정을 지나갈 수 있다. 확실한 목적이 있기에 가는 길을 잘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날은 길고 험난한 과정에 지쳐서 한번 정도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었다고 믿는다. 우체국 가는 길에, 나는 그냥 아무것도 되지 않기로 했다.
좋은 상담사가 되려면 좋은 직장에 가야 하고, 좋은 직장에 가려면 어려운 자격증을 많이 따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1,2년에 끝나는 과정이 아니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믿었고, 3년이 넘게 이 과정을 이어왔다. 쉬이 끝나지 않는 과정에 지친 건 육체뿐만이 아니었다. 영혼도 마음도 모두 지쳐있었다.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 어떨까. 불현듯 찾아온 생각에 순간 마음의 지침이 잠시 동안 사라졌다. 하지만 이내 불안이 찾아왔다. 불안은 내게 말했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게 좋아?'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 나은 것, 더 좋아하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고 있었으니깐. 되고 싶은 것을 생각하니 한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반대로 이미 한 것을 생각하니 한없이 쉬고 싶었다.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기로 했다.
직장을 2번 정도 바꿨는데, 꼭 한 명씩 나를 무언가가 되도록 만드는 상사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무언가가 되어야 했다. 늘 바빴고, 잘하기 위해 애썼다. 무언가 성취해도 그다음을 제시하지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잘했다 수고했다 그 말을 못 하더라.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일하면서 내가 늘 바쁘고 지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게 잘했다 수고했다 하기로 한다.
이력서를 내러 우체국을 가는 길이었다. 지원서를 보내고 나니 이미 지친 내 삶이 보였다. 더 이상 나은 곳으로 가지 않기로 한다. 내 인생이 내 발자국이 가는 대로 그저 발을 내딛기로 한다. 이미 30년이 넘게 수고한 내 삶에 더 이상 목표를 던지지 않도록 한다. 목표를 이루는 것이 목표가 되지 않도록 나는 멈추기로 했다. 언젠가 어떤 예능에서 누군가 그러더라. 훌륭한 사람 뭐하러 되니.. 아무것도 안돼도 돼.. 오래전 그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이 사랑스러우면 된다.
나는 내 인생을 사랑하기로 한다. 인정하기로 한다.
지금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나는 그냥 나인 거다. 이 책은 무언가가 된 나 말고 아무것도 아닌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 빈 듯한 느낌, 무언가 알 수 없는 고독,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은 다른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잘 모르는 것이 이유일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여정으로 나는 여행을 택했다.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가장 많이 발견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잠시 떠나 있는 것은 나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를 향해하는 말, 나의 역할 안에서 꼭 해야 할 일 이것을 제거해버리면 그곳에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
나는 질문할 것이다. 내 인생의 수많은 의문들이 이 책에 쓰여 있을 것이며, 답은 독자들에게 맡길 것이다. 내가 찾은 답은 그저 수많은 해답의 하나일 뿐이다. 정해진 답이 아닌 수많은 해답을 가지고 모여 존재하는 나에 대해 자랑하고자 한다. 혹시나 글을 읽다가 이 부분은 존재하는 나가 아니지 하고 깨닫는 부분이 있다면 혹독하게 나를 꾸짖어 주기 원한다.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갔다는 것이니.
나는 많은 것을 곁가지고 가지고 왔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결국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귀한 것이고, 변화무쌍한 카멜레온과도 같아서 소중하게 다루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St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