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여름
30살이 되던 때였나 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직장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자리에 있었고, 친구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바쁨에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간이었다. 한 부서를 책임지는 사람이었고, 사랑함과 겸손함으로 동료들을 아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오사카 행은 그런 동료들을 위한 전우애로 시작되었고, 일의 연장이기도 했다. 오래 일을 하면서 직장이라는 곳이 너무 공적인 공간이기만 한 것이 내게는 너무 큰 부족함으로 느껴졌고,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던 나는 즐거운 업무를 위해 미리부터 이 여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이 즐거운 여행이 동료들에게는 사적인 공간을 침해하는 일은 아니었을까 이제야 깨닫는다.
고민스러웠다. 늘 직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보면서 왜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없을까. 고민했었고, 업무와 개인의 삶을 구분하면 반대의 감정이 소모되는 것을 보면서 괴리감을 느꼈다. 개인의 삶이 즐거울 때처럼 취미생활이 즐거운 것처럼 업무도 즐겁기를 바랐다. 그래서 기쁨 자체가 목적인 아무 목적 없는 여행을 준비했다. 큰 도전이었다. 여행이니 업무의 연장이 아니었는데, 업무를 즐겁게 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니 이건 여행이었을까, 업무였을까.
워낙 이상적인 사람이라 머릿속으로 꿈꾼 것들이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항상 믿었다. 모두가 행복하게 일할수 있으면 좋겠다. 이것이 여행의 이유였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던 것을 이제는 안다. 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다음날 출근을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너무 빠르게 우리는 달려가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목적과 비전에 빠져서 달려가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비전이 뭔가 그냥 오늘을 살자 하면서 달려가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과거에 붙잡혀 벗어나지 못한 채 달려가는 기차 안에 몸을 실은 사람도 있었다. 나의 전우들이 기뻐하기를 바라면서 그때 그 계절은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우리는 모두 꿈꾸는 사람이었다. 뒷일은 생각지 않고, 추석 연휴에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것에 급급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하면 사람이 모였고, 성과가 났다. 나는 그렇게 팀을 이끌고 있었다. 잘하고 있다고 믿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잘 듣지 않았다. 그게 바로 나였던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걸까
사랑함이 모든 것의 근원이 다를 여행의 테마로 정했고, 나는 그 여행이 사랑함을 동기로 일어난 좋은 결과라고 믿었다.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고, 팀을 이끄는 탁월함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열심히 준비해 모두 행복한 여행이 되기를 바랐다. 실제로 우리의 여행은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나는 일중독자였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서도 혼자 나의 일을 하고 있었다. 모두 쉬라고 하면서 혼자 일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준다는 것을 핑계로 나는 리더로서 또 나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설렜다. 그게 여행의 묘미지, 시작하기 전이 더 설레는 것이 여행이다. 우리의 시끄럽고 복잡한 마음을 설렘으로 환기하며 공항버스를 타고 오사카 시내로 향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무언가 환기되어야 할 것이 분명 있다. 현재 내 삶의 복잡한 상황과 환경에 대한 걱정과 염려, 부담 모두 버리고 지금 현재의 설렘을 선택해야 한다.
함께 가는 여행은 충분히 우리를 환기시켜 주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큰 비전을 마음을 함께 품고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어떤 것보다도 나와 우리의 동력이 되었으니. 미숙한 팀의 리더와 함께 동행한 우리는 적어도 출발까지는 함께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출발이 설레었으면 된 거다.
일본은 교통수단이 비싼 편이라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 지하철과 버스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항상 지하철이다. 버스는 지하철보다 느리다. 30KM의 속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안전을 위해서이다. 일본의 도로는 경적소리가 없다. 느리게 간다고 뒤에서 쌍라이트를 켜지도 않는다. 내가 일본을 좋아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천천히 가도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그들만의 속도로 가는 것이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느리게. 한국에서 온 우리는 우리만의 빠른 속도로 지하철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에겐 이것도 천천히 가는 거다.
나는 빠른 사람이다. 일도 빠르게 성과도 빠르게 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실수도 많다. 여러 번을 고쳐야 완성이 되는 사람이다. 이 나라가 사고가 많지 않은 이유는 천천히 정확하게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에게 끌리는데 내게 이 나라에 끌리는 이유가 그런 걸까
천천히 가는 것을 못 견디는 나는 이곳에서 천천히 내 삶을 정돈하기 시작한다. 빠른 사람은 정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것을 빠른 시간 안에 하려면 정리할 시간이 없다. 정리하고자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기 시작하면 다시 팀을 이끄는 탁월한 리더가 되어야 하는 것이 여행의 가장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팀원들이 원하는 것을 다 했다. 놀이동산도 가고, 맛집도 가고 혼자만의 시간도 줬다. 우리는 함께 웃었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오사카의 여름은 나에게 천히 가는 법을 알려줬다.
나는 그저 조금 천천히 걷기로 한다. 운전할 때 도로에게 경적을 많이 울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느리다는 말로 경쟁하지 않기로 한다. 느리다는 말은 안전하고 정확하다는 말로 나에게 해석하기로 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다른 말로 해석하기로 한다..
이때 결정한 것은 지금까지도 나의 삶을 이끌어가는 좋은 태도이다. 반대로 생각하고, 해석하지만 평가하지 않는 것, 나에게 중요한 삶의 원칙이 되어 버렸다.
나의 오사카는 아직도 내게 말한다. 천천히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