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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Jun 02. 2022

제발 나한테 전화하지 마. 카톡도 하지 마.

나의 관심과 사랑은 아빠에게 구속과 감시라고 한다.

너네 아빠 전화기 꺼져있네. 이 시간까지 어디서 뭐 하는 거야. 안 되겠다. 경찰에 신고해.

새벽 두 시가 넘는 시간. 아빠는 아침부터 나갔는데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몇 번 전화하더니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곁에 있던 나는 괜히 불똥이 튈까 봐 눈치껏 방에서 사부작 거리며 아빠를 기다렸다. 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넌 아빠가 집에 안 오는데 잠이오니? 네가 전화 좀 해봐."


신호음이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받지 않았다. 계속 걸어서 그런지 새벽 세시 무렵에는 전화가 아예 꺼져버렸다.


"엄마, 아빠 전화 꺼졌어. 진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엄마는 분노의 상태를 지나 걱정 단계의 감정상태에 있었다. 우리는 경찰에 아빠를 신고하기로 했다.


경찰에 전화하니 실종신고가 아니라서 접수가 안된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하니 소방에 전화를 해보란다. 난생처음 신고를 하는데 무서웠다. 당시만 해도 경찰이라는 존재는 어렵고 불편한 존재로 가르침을 받을 때였다.


"너 자꾸 생떼 부리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


뭐 이런 교육이 흔하던 시절이었다.


일단 소방에 신고하라는 말에 전화를 끊고 곧장 소방서에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회식한다고 나가서 연락이 두절되었는데 휴대폰은 꺼져있고 너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삼십 분쯤 흘렀을까. 마지막으로 휴대폰 시그널이 잡힌 곳이 방화동 어디 인근이라며 연락이 왔다. 인근 소방서에서  출동했고 곤드레만드레 취한 아빠는 갑자기 가게에 들이닥친 소방대원들을 맞닥뜨리고 무척 흥분상태로 전화가 왔다.


"야. 나 지금 방화동에서 기분 좋게 술 먹고 있는데 왜 이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사람 쪽팔리게 하나."


엄마는 아빠가 한심스럽다며 화를 내더니 그대로 들어가 자버렸다. 나는 방에서 자는척하며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새벽 네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엄마 눈치를 보는 아빠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아침밥 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쭈구리처럼 소파에 앉아있었다. 나는 엄마가 생난리를 치겠구나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무 일 없다는 듯 해장국을 끓였다.


그 후로도 아빠는 회식만 했다 하면 실컷 놀다 들어왔다. 약속은 또 어찌나 많은지. 차 끊기면 택시비가 아깝다며 아예 그냥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날 첫차를 타고 들어오기도 하고 24시 커피숍에서 술 깨고 새벽에 들어오기도 했다. 엄마는 아빠가 나가면 잘 놀다 오라고 했고 안 들어오면 그냥 푹잤다.


야 니네 엄마도 안 하던 짓을 왜 자꾸 하는 거야. 내가 알아서 놀고 들어오면 되지 일일이 너한테 말하고 다녀야 돼? 제발 전화 좀 하지 마.

합가 후 아빠와 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밤만 되면 아빠의 소재가 확인이 되어야 안심하는 나와 초저녁부터 왜 자꾸 전화하고 지랄이냐며 짜증 내는 아빠와의 전쟁.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며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아빠가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아빠의 놀러 나가는 횟수와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있다. 가령 오늘만 해도 점심 먹다가 내게 통보하기를,


"나 금요일 저녁에 약속 있고 일요일 등산가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제천에 2박 3일 모임 있으니까 그리 알아라."


아빠는 밖에만 나가면 연락도 없고 늦게 들어오고 하는 게 일상 다반사다. 나는 또 전화질을 하게 될 것이고 아빠는 내게 짜증을 낼 것이다. 뻔하다.


"아빠, 다른 아저씨들도 사별했어? 아니면 이혼? 그 아저씨 들은 와이프나 딸이 전화 안 한대? 집에서 안 쫓겨나고 살고 있대?"


"하루 종일 전화질 하는 건 너밖에 없어. 너 때문에 미치겠다. 이러면 너랑 같이 못살지."


어제저녁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아빠는 귀농했다는 친구네 갔다가 무려 이박삼일만에 올라왔다. 언제 오는지 어디쯤 왔는지 비도 오는데 잘 오고 있는지 연락이 없으니 초조해졌다. 나는 또 전화를 걸었다.


"왜. 나 피곤해 죽겠으니까 끊어."


신경질 적으로 전화받는 게 못마땅했지만 꾹 참고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언제 와? 저녁 먹을 거야? 언제 출발했어? 거기도 비와? 몇 시간 있으면 도착해?"


아빠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알아서 갈 테니 전화 좀 그만하라고 꾹꾹 눌러 말했다. 아니 그러면 자주 좀 연락을 해주던가. 집에 있는 사람 걱정하는 줄도 모르고.


"내년에 전세 만료되면 집 내놓을 거야. 너는 말을 몇 번이나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본때를 보여줘야 돼."


아빠는 밤 아홉 시가 넘어 귀가해서는 대뜸 나랑 못살겠다고 씩씩거렸다. 잘 놀고 와서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또 시작이네. 열 받은 나도 도대체 또 뭐가 문제냐고 마구 따져 물었다.


"너 내가 카톡 하지 말라고 했지. 전화도 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니 애새끼도 아니고 왜 자꾸 연락을 해서 스트레스받게 하는 거냐. 구속하지 말라니까. 감시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아주 나쁘다고. 몇 번을 말해."


"아빠가 어디 가면 장소 이동할 때라도 어디 간다 한 번만 보내주면 내가 안심을 할 거 아니야. 집에서 아빠가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건 왜 생각을 안 해? 그리고 내가 아빠 보호 잔데 이틀이나 집에 안 들어오는데 궁금한 게 정상 아니야?"


"보호자 좋아하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일일이 간섭 좀 하지 말라고. 내가 이제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으니까 아 됐고, 너한테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묻지 마. 내가 왜 너 때문에 불행해야 돼. 난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왜 말을 못 알아들어."


"아빠는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어떻게 같이 사는데 관심을 안 가져? 그리고 아빠는 내가 밖에 나가면 궁금하지도 않아? 왜 관심 안 가져줘? 나는 아빠랑 따로 살 마음 없고 아빠가 눈앞에 안 보이면 더 전화 많이 해야 하니까 그리 알고 잘 생각해."


아빠는 입을 닫아버렸다.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빠 눈치를 살 살보며 밥 안 먹냐고 묻기도 하고 커피 타 줄까 하며 말을 시키기도 했다. 아빠는 여전히 열이 받은 상태였는지 내 말을 들은 체도 안 하다가 내가 몇 번씩 답을 재촉하면 간신히 끄덕거리거나 가로젓거나 하며 최소한의 의사표현만을 했다. 오전 중에 냉전의 시간을 보내다 오후 무렵부터 방에서 나와서는 또다시 나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내가 이틀 동안 어디 있다 뭐 하고 있다 한두 번 말했냐? 하루 종일 카톡 하고 전화하고 뭘 할 수가 있어야지. 하루 종일 내가 너하고 지지고 볶고 하는 게 정상이냐? 다른 집 자식은 아무도 안 그래. 너만 유별나. 넌 병적이야. 정신과 가서 약을 먹던지 어쩌던지 불안한 건 니 사정이고 내가 당장 너 때문에 돌아버리겠는데 이래서야 되겠어? 설명해봐."


아빠의 분노가 가라앉기까지는 일주일쯤 걸렸다. 나는 전화 안 한다고 약속을 했고 아빠는 귀가 시간을 알려주기로 했다. 각자의 말을 잘 지킬 것인가 의심 가득한 채 종전은 했으나 여전히 나는 아빠가 집 밖에 나갈 때마다 심기가 불편하다.


미혼 때 같이 살면서는 부딪히지 않던 부분이 심각한 스트레스 유발인자가 된다. 같이 살기 위한 규칙도 하나둘 늘어난다. 그런데도 나는 아빠랑 같이 살아야 하겠으니 결국은 아빠가 원하는 대로 맞춰 줄 수밖에 없다.


불안하니까. 아빠도 엄마처럼 갑자기 죽을까 봐. 그래서 내가 자꾸만 아빠를 집에 내 눈에 보이는데 가둬두고 싶어 하는데 그게 정말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친구들도 내가 밥 먹다 말고 아빠한테 전화해서 몇 번씩 어디냐고 묻는 걸 보며 이상하게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이상한 거 안다. 아는데 불안한 건 어찌할 수가 없다. 세상살이에 의심이 많아진 건 내 탓이 아니다. 나도 힘들다고. 엄마가 죽어서 슬픈 거 이제 좀 지나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받아들였다. 그리움으로 채울 시간에 남은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투지로 가득 차 전화기 붙들고 종일 카톡 보내고 전화하는 나는 불쌍하지 않은가?


결국 나는 정신과에 가서 불안증 약을 증량했다. 상담센터도 다음 주중에 예약할 계획이다. 가족 모두가 나의 집착으로 인해 무척이나 피로하다고 하니 내가 변할 수밖에. 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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