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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리스타 Aug 07. 2024

우리는 한국에서 행복을 배우지 않는다. (1부)

브라질 겉핥기 보고서 3 - 한국에게 행복을 답하다

자살률이 높다는 건 죽을 일이 자살밖에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평화롭다는 거지
- 저스디스(JUSTHIS), "Gone" 중.


한국의 래퍼 '저스디스'의 곡에 나온 가사다. 논리적으로는 조금 맞지 않지만 한국의 현실을 아주 정확하게 꼬집은 명문이라 생각한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거론되는 한국의 자살률. OECD 국가 중 자살률은 최상위권이면서 행복지수는 최하위권인 오늘의 한국. 이러한 통계가 화제가 될수록 더욱 비관에 빠지는 악순환의 구조. 대체 왜 한국은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나는 한국에서 행복을 배운 적이 없는 걸까? 우리는 행복할 자격이 없는 걸까?


(좌) KBS 뉴스, (우) 연합뉴스 "자살률 낮아지고 미세먼지 줄었지만…OECD 회원국 중에선 최고"


'죽을 일이 자살밖에 없어서 평화롭다'는 가사를 잘 생각해 보자. 세계에는 자살 외에도 죽을 위험이 많은 나라가 수없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브라질이 있다. 브라질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치안이 좋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나 안다. 브라질로 향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LAX) 국제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 행선지가 같은 브라질 사람을 만났다. 브라질에 처음 간다는 나의 여러 질문에 "브라질 위험해요. 조심하세요. 그것 빼고는 다 좋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브라질에서 공부한 선배의 '총 맞을 뻔한 경험'부터 브라질 현지인의 조심하라는 경고까지 치안에 대한 흉흉한 얘기를 수없이 접했다. 오늘도 브라질 빈민가인 파벨라(Favela)에서는 주민과 경찰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대마초를 거래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현행범을 즉각 사살한다. 물론 죄 없는 시민을 살인하고 탈취하는 빈민가 출신 일부 강도들의 행동도 큰 문제다. 브라질은 평화롭지 않다. 그러니 적어도 외부적 위협에 의해 죽을 일이 적은 한국은 평화로운 나라다.


풍요롭지만 불행한 나라, 부족하지만 행복한 나라


이런 평화로운 나라가 자살률은 높고 행복지수는 낮다. 나는 사회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자살률과 행복지수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철딱서니 없는 학생으로서, 세상의 좋은 면만 보고 싶어 하는 청년으로서 한국은 행복의 조건을 이미 갖춘 나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


브라질과 한국의 전체 GDP는 비등비등하다. 연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브라질과 한국 모두 10위권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하지만 인구 차이가 크다. 한국은 5,000만 인구가 세계 10위권의 국내총생산에 기여한다. 비슷한 수치를 브라질은 2억의 인구로 달성한다. 인구가 약 4배나 차이 나는데 총생산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1인당 GDP로 보면, 2024년 기준 약 34,000달러인 한국과 11,000달러인 브라질은 얼추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월 최저임금으로 비교하면 200만 원 정도를 받는 한국과 1,400 헤알(Real, 한화 약 33만 원)을 받는 브라질은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 아버지는 자동변속기 차량에 괜찮은 옵션을 갖춘 그랜져를 타지만, 상당수 브라질 사람들은 수동변속기 차량에 뒷좌석 창문이 수동인 옵션을 선택한다. (당연히 기능적인 옵션은 없다.) 한국의 친구들은 신형 아이폰이 출시되면 보상판매를 하고 새 핸드폰으로 갈아타지만, 브라질 친구들은 저렴한 모델인 삼성 갤럭시 A시리즈나 모토로라의 핸드폰을 더 이상 켜지지 않을 때까지 사용한다. (갤럭시 S는 브라질에서 고급 핸드폰이다. 심지어 브라질에 오기 전에는 모토로라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우리 고모는 치아 상태가 안 좋아 임플란트를 했지만, 학교 식당 앞에서 장사하는 아저씨와 친구의 사촌 형은 이빨 몇 개가 없다. 소고기와 닭고기가 저렴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과 브라질의 물가는 얼추 비슷하다. 오히려 핸드폰, 컴퓨터, 가전, 자동차, 의류 등 공장을 거치는 모든 제품은 브라질이 더 비싸다. 그러니 물질적 풍요와 삶의 조건을 따진다면 한국은 브라질보다 못난 게 없는, 아니 사실상 훨씬 살기 좋은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가 어디야? (O que é o melhor país do mundo?)"
"의심할 여지없이 브라질이지. (É o Brasil, com certeza.)"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모두가 브라질이 최고라고 대답한다. 가끔은 '도대체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친구들의 태도가 신기하기도 하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통계를 찾아보았다. 세계행복지수로 보면 브라질은 47위, 한국은 55위로 브라질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 행복지수에는 민주주의 지표, 보건, 범죄율, 경제구조 등 다양한 변수가 복합적으로 고려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브라질의 심각한 치안과 1인당 경제력, 보건 등을 모두 고려하면 이 나라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자살률은 역시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다. 아래 그림에서 색상이 붉을수록 높은 자살률을 의미한다. 대략 한국의 자살률은 브라질의 5배에 해당한다. 그러니 '한국은 풍요롭지만 불행한 나라, 브라질은 부족하지만 행복한 나라'라는 표현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세계행복지수. 출처 - the global economy.com
국가별 자살률 통계, 적색일수록 높은 자살률을 의미한다. 출처 - WORLD POPULATION REVIEW


행복의 조건


행복의 조건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한국은 이미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종종 칼부림 사건 등 치안을 걱정할 만한 사건이 발생하지만, 외출 시마다 주머니와 가방을 소매치기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어두운 길에서 총 든 강도의 위협을 느껴야 하지 않는다. 나의 가족이 아프다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어린아이가 홀로 지하철역에 나와 물건을 파는 모습을 보며 하루하루 안쓰러워하지도 않는다. 우리 삶을 타국의 삶과 비교해야 한다면 우리 스스로 자조하듯 한국은 그렇게 안 좋은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아니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국가다. 그럼에도 우리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하루하루 신명 나지 않다면, 우리가 설정한 행복의 조건을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 우리가 배운 행복에 의문을 제시해야 한다. 아니, 우리가 행복을 배우기는 했을까? 어쩌면 우리는 한국에서 행복을 배우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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