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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Dec 14. 2021

등교 거부자와의  대화

커피를 내려 막 마시려던 참이었다.

책방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스윽 열렸다. 그 틈을 비집 찬바람이 함께  밀려들었다,

이른 시간에 문 여는 책방인걸 아는 분들이 이따금 모닝커피를 마시러 오곤 한다.

큰 눈에 검은 코트, 초록색 목도리를 두른  손님은 역시나  낯익은 분이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그녀도 목례를 하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커피를 드시겠냐는 말에 고개는 끄덕이는데  마주친 눈빛은 그보다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평소 말수가 많지 않은 그녀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의 손에 금방 내린 향긋한 커피를 쥐어주자  고맙다는 인사 뒤로  잠깐 이야기할 수 있는지 묻는다.

나는 그러마 하고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저, 부탁을 한 가지 드리려고요. 아이가 오늘 아침 등교거부를 했어요. 처음 있는 일이어서 좀 당황도 되고 일단  알겠다고 했네요. 뭐 그럴 수  있지 싶긴 해요.  그건 괜찮은데 이유를 분명하게  말을 안 해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불안하기도 하고.. 아이가 대표님을 잘 따르니  물어봐주시면 어떨까요? "


그녀에게는 딸이 한 명 있다. 이제 열네 살, 조용하지만 도전적이고  노인과 바다를 진지하게 읽으며 책을 통해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는 영특한 아이다. 책방을 좋아하여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오며 가며 눈도장을 찍는 아이다. 학교 생활도 성실히 하는 아이였기에 좀 의외이긴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아이를 책방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녀는 코끝을 찡그리며 죄송하다는 말과 감사인사를 반복하고는 왔을 때처럼 조용히 문을 열고 총총히 사라졌다.


얼마 후 그 등교 거부자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들어왔다. 나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침 일손이 부족했는데 잘 왔다고 했다. 도와주겠냐 물으니 아이는 좋다면서 점퍼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우리는 행사에 사용할 물건들을 만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bts 근황부터 코로나 팬데믹 현상에 대한 걱정까지 나눌  이야기는 넘쳐났다.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에  불쑥


"저 오늘 학교 안 갔잖아요. 부모님은 걱정하시지만 심각한 건 아니에요. 그저 한 가지 커다란 의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던 아이는 스스로 말문을 열었다. 마침 창가로 겨울 햇살이 막 들어차고 있었다. 모차르트  피아노곡이 무심히 흘렀다. 아이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손톱을 매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돼요. 지루하다고요.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학교 가고 공부하고 학원 가고 집에 오고 잠자고.. 다들 이렇게 살잖아요. 미래에  제 자식도 그렇게 살겠지요.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깨어 그 생각을 하면서 천장을 바라보는데  학교에 가기 싫은 거예요. 이런 말을 하면 유별나다는 말만 듣겠죠. 모두 그러고 산다. 그러실 테고요 "


나는 종이를 접다 말고 웃음이 터졌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딱히 문제가 없는 거구나 싶었다. 오히려 요정도 생각조차 안 하고 사는 아이들이 더 많다는 게 가슴 아플 지경이니까.


" 어른이 돼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  지루한 오늘이 모여 인생이 되는구나. 지루한 게 아니라 별일 없이 사는 거구나 하구... 뭔가 흥분되는 일 생기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마구 뛰잖아. 너 매일 그렇다고 생각해보렴. 얼마 못 가서 심장마비 걸려.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그 반복들이 오히려 차분해지도록 안정감을 주는 거란다.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기대해봐. 내 인생에는 앞으로 어떤 일, 어떤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bts 오빠들 공연을 바로 앞에서 직관하는 그날을 상상하면서  오늘을 잘 살아내고 미래로 가는 거야!"


아이는 나의 말에 손바닥을 치며 까르르 웃는다.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어른의 말을 잔소리로 치부하지 않는 (내가 느끼기에) 맑은 소리였다. 초롱한 눈망울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머리를 마음담아 쓰다듬어 주었다.  아마도 등교거부 사태는 이쯤에서 짧은 일탈로 끝날 듯  싶다.


책방에서 다양한 청소년들을 만났다. 학교에 재학 중인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교 밖 아이들도 제법 만났다.  대화를 해보면 요즘 아이들이 우리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영민하고 분명하다는 생각은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직은 더 이해받고 공감받아야 하는,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인 것이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형식처럼 할 것이 아니라 삶에서 직접 느끼도록 대해줘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인생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들이 주변을 채우고 내일로  걸어 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것.  나는 그런 어른, 그런 책방지기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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