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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Nov 18. 2021

아, 다행이다!

저녁 무렵 중년 신사분이 상기된 얼굴로 불쑥 들어왔다. 그는 책방 안을 잠시 둘러보더니 내가  건넨 인사에  가벼운 목례로 답했다.


" 여기 책방이 있군요. 아이를 이곳에 두고 싶은데요. 어떻게 운영이 되는 건가요?'


신사분 뒤로 하얀색 털 점퍼를 입은 앳된 여학생이 서 있었다. 짧은 단발, 귀엽게 생긴 얼굴이지만 표정은 밝지 않았다.

딸아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부녀 사이였다.  이사를 왔는데 아이가 밖에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지나가다 책방을 보고 멈춘 거란다. 분위기를 보니 대충 감이 왔다. 아이가 이사를 반기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따님 걱정은 마시고 얼른 댁으로 가시라는 나의 말에 신사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눈빛은 많은 이야기가 담긴 듯했다.


아빠가  떠나고 아이는 책방을 사뿐사뿐 거닐었다. 나도 조용히 뒤를 따랐다.


"동네책방 와 본 적 있니? "


"아니요. 처음 와봤어요. 신기해요. 작은데 예뻐요 "


조금 전 표정과는 다르게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가지런히 놓인 독립출판 책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게 뭐냐고 물었다. 나는 책들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일반 출판사가 아닌 개인이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거라고 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놀라워했다.   동네책방을 독립서점이라고 부르고  개인이 스스로 출간한  책은 독립출판이라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라 했다. 멋진 것 같다며.


우리는 책과 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아이는 책을 좋아했다. 작가들에 대한 사소한 수다를 떨며  금세 친해졌다. 나는 이때다 싶어 어깨를 두드리면서 책방 있는 동네에 온 걸 환영한다고 했다. 순간, 아이가 잠시 머뭇하더니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저는 이사 오기 싫었어요. 낯선 게 싫어서요. 모르는 사람들뿐이고.. "


15살, 한창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할 나이니  어쩌면 당연했다. 어른들에게도 이사는 간단한 변화가 아닌 것을.. 하물며  사춘기 소녀라면  더욱  큰 스트레스가 되었을 것이다. 본인 의견과 상관없이 결정되었을 것이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했을 테니  속상하지 않은 것이  이상한 것이다.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고민해결 방식이었다. 그리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보내도록 책방 안쪽에 있는  커다란 소파에 앉게 하고 커튼으로 가려주었다. 아빠가 부탁하고 간 따끈한 초코 라테도 함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빠와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책방에 온 지 두 시간 가까이 되었을 즘이다.  언뜻  듣기로  목소리는 다정했다.  통화가 끝나고 십여분 정도 지났을 때 책방 앞으로 차가 도착했다. 신사분이 차에서 내려 서둘러 책방 문을 열었다. 집안을 정리하면서도  딸 생각을  하셨구나 싶었다.  문을 나서는 아이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우리  곧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아이는 꾸벅 인사를 하며 알겠다고 했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신사분이 다가와  내게 인사를 한다.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눈빛으로.

그렇게 부녀는 사이좋게 그들의 새로운 집으로 돌아갔다.  어둠을 가르며 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추웠지만 왠지 모를 온기로 가슴은 오래 말랑했다.


아이가 떠나고 테이블을 정리하러 가보니 노트에 예쁜 속마음이 덩그마니 남겨져 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 와서 적응도 안되고 속상했는데 이런 곳을 찾으니까 너무 좋아요!!

  이사오길 잘했어요!!^^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아,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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