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안 Jan 21. 2022

나침반

"선생님~ 나침반이  계속 흔들려요.

고장 났나 봐요." 

눈물이  쏟아질랑  말랑 했다.


아홉 살 때  일이다.

수업시간  준비물로  처음  나침반을  샀다.

그것은  자그맣고  파란 종이  상자에  담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방구에서  바로  뜯지 않고  주머니에  살살  넣었다. 얼른  교실에  들어가  차분한  마음으로  나만의  나침반을  보고 싶었다. 교실 문 앞  다다라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저  와 계신  선생님께  인사도  대충 했다.  가방은  거의 팽개치듯 던져두었다. 내 신경은 온통  주머니 속  나침반에  있었다.


6남매  막내인  나는  새 물건을 사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물리고 물려  헌 것이   되어  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웬일로  집에  나침반이  없어  새것으로  살 기회가  생겼으니  어찌  기쁘지  않았겠는가. 내겐   물림 할 동생도 없으니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나만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상자를  열어  책상 위에  조심히  놓았건만   바늘이  줏대 없이  간질거리며  흔들렸다. 몇 번을  다시 놓아도  상태는 똑같았다. 교실로  뛰어올  때  너무 흔들려서  그런가  싶어  잠깐  시간 여유를  주었음에도  바늘의  떨림은  멈추지 았았다.  안 되겠다 싶어  좀 전까지  관심 밖이던  담임 선생님께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어서  이  사태를  알리고  도움을 받는 것이  낫지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유모를 설움 같은 게  치밀어 올라  자꾸  눈물이  고였던 것이다.



"아니야, 나침반 바늘 계속   흔들리는 게  정상이야.  흔들려도  가리키는 방향과   중심이  정확하면  전혀  문제없어.

 자, 보렴. 북쪽을  여전히  향하잖아.  고장 난 게  아니니까  걱정 마"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나침반을  다시 보았다.  그랬다. 쉼 없이  흔들리면서도  방향은  정확했고  오차범위를  거스르지  않았다. 뚫어져라  바늘을  보았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각인된 것은  따로  있었으니, 나침반을  챙겨 자리로 돌아가려던  나에게  건네신  선생님의  한마디였다.


"사람도  살다 보면  흔들리는 거야.  그런데  중심과 방향만 정확하면  되는 거야.  너도 그런 사람이  되거라."


선생님은  아셨을까.  그 말이  아홉 살 제자의  가슴판에  스며  불도장처럼  새겨 지리란 걸. 나침반  바늘의 모습과  선생님의  말씀이 뒤엉켜 나의 의식을  강하게  잡아챘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선생님의  말투와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내겐  참  고마운 일이다.


살아보니  크고 작은  일들로  몸과 마음이 휘청일 때가  많다. 그것이  세상사는  자연스러운  굴곡인걸  알면서도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럴 때

선생님 말씀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  중심을  잘 잡으면  수없는  떨림에도  불구하고  문제없는 거다'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이혼을 하고 홀로  딸을 키우고 계셨는데  그 시절에  흔치않은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단한 분이셨다. 어쩌면  그날  나에게  하신 말씀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생각했다.  그때  샀던  나침반은  몇 년 뒤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다. 선생님과도  타 지역으로  전학 가면서  헤어졌다.  하지만  말씀은  여전히  내 안에  잘  있다.  중심을  딱  잡고서 말이다. *

작가의 이전글 어서 와, 책방에선 처음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