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커트를 한 어머니

by 루씨

오늘은 큰 딸 H와 함께 시댁에 다녀왔다. 어머님이 거동을 못하신 지 벌써 몇 달 째인데 8월 말에 출국을 앞두고 H가 할머니를 뵙고 싶어 했다. 손녀들과 어머니는 아주 오랜 세월 각별한 사이지만, 어머니 곁에는 손녀들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형제와 올케들, 조카와 그들의 아들딸까지 빠지지 않고 명절 인사를 온다.


어제는 남편의 외숙모가 병문안을 오셨다 가시는 길에 남편과 잠깐 통화하셨다고 했다.


"조카, 내가 조카한테 이런 얘기 전하기 좀 그렇지만 꿈이 너무 이상해서 와봤어. 꿈에 형님이 짐을 막 싸시면서 빨리 이사 가야 한다고 하시는 거야. 근데 오늘 와보니까, 세상에 세상에. 우리 형님이 어째 이렇게 되셨대. 아이고."


한 달에 두어 번 씩 뵙는 우리 눈에도 갈 때마다 어머니가 땅으로 꺼져가듯이 줄어들고 기운이 빠지시는 게 보이는데, 아마 몇 달 만에 보는 사람들이라면 흠칫할 만큼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남편 눈이 발개졌고 옆에서 그 통화를 듣고 있던 H가 내일 할머니댁에 함께 가겠다고 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끓여둔 육개장과 과일을 차에 싣고 시댁에 도착했다. 이번엔 나도 어머님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다. 어머니가 커트를 한 건 결혼 이후 처음 보았다. 어제 방문하신 외숙모가 어머니의 웃자란 파마머리를 보시고 함께 동네 미용실에 가 손질했다고 했다. 여름을 나기에는 커트만 한 게 없겠지만 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늘 단단한 웨이브 파마를 하시고 그 컬만큼이나 탄력 있는 말로 기운 나게 해 주셨던 어머니가 두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커트머리를 하고 아무 말씀 없이 앉아만 계시니, H와 나는 얼떨떨해졌다.

아무 말씀이 없으신 채 앉아계시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우리도 가만히 그 앞에서 앉아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이렇게 조용히 시간을 보낸 적은 별로 없었다. 그 침묵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말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느끼게 해 주었다.


화장실에서 천천히 벽을 짚으며 나오는 어머님의 모습은 마치 TV에서 본 요양원의 할머니들과 비슷했다. 어머님의 쇼트커트는 어쩌면 어머님도 요양원에 가게 될 수 있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켰고, 그 상상은 뒤숭숭한 두려움을 가져왔다.


평소의 어머니는 상황을 잘 파악하시고 언제나 그에 맞게 조리 있게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감싸야할 사람은 감싸고 꼬집어야 할 것은 정확하게 집어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의 말에는 사람을 반짝이게 해 주었던 빛도 잘못된 것을 도려내는 날카로운 날도 다 빠져버린 것 같았다.

어머니는 렇게 기력이 없으신 와중에도 H를 보고 아주 반가워하셨다. 귀가 많이 어두워지셔서 손녀의 말을 절반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하셨지만 작은 목소리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혼잣말처럼 시며 H의 손을 쓰다듬어 주셨다.


오후엔 지난주에 진행한 검사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담당의사는 CT촬영과 혈액검사결과 담낭 쪽 암이 의심된다며 진료의뢰서를 써주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H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왔다. 큰 딸은 할머니를 보고 나니 엄마아빠가 나중에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된다고 했다. 자식을 걱정시키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마지막엔 예외 없이 혼자가 되고, 혼자가 되면 누군가의 돌봄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H에게 나중에 엄마아빠가 아파도 너흰 멀리 나가있어서 얼굴 보기도 힘들 거라고 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당겨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었지만 그 말은 나에게도 딸에게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몇십 년 뒤 내가 늙고 병들었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친구든 지인이든 한 공간에서 함께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요양원에 들어가지읺아도 서로 의지하며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밤새 뒤척이다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