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의 시간

by 루씨

어머님은 올해 84세, 아버님은 86세다. 지난 7월에 한 달간 입원하시고 퇴원하셨다가 허리 골절로 8월에 다시 입원하셨다. 꼬박 한 달을 채우고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했을 때 아직 접합이 되지 않아 혼자 앉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앗는 요양원으로 옮겼다가 엿새만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첫 번째 입원기간에는 간호간병 서비스가 되는 통합병동이어서 상주보호자가 필요 없었지만, 두 번째 입원은 일반병동이어서 아버님이 계속 간병하고 계신다.


요양원에 들어간 지 일주일도 안돼 급하게 병원을 찾은 아유는 어머님이 그곳에서 식사를 거의 못하는 것 같다는 아버님의 염려 때문이었다.

수액을 맞지 않는 상태에서 식사가 부실하면 금세 신장기능이 악화된다는 의사의 경고 때문에 더욱 산경이 쓰였던 터였다.

병원에서 다시 검사한 결과 신우염 때문에 다시 입원을 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영양상태와 각종 수치는 괜찮은 편이었다. 게다가 번져가던 욕창도 많이 호전된 걸로 보아 요양원에서 꽤 신경 써서 보살펴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족들의 잦은 면회를 제한하는 요양원의 방침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였다. 요양원도 엄연한 공동체라 그곳의 구성원들과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잦은 면회가 방해된다는 설명이었다. 그 방침은 지금껏 간병을 해온 보호자에게 숨 돌릴 틈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을 낯선 곳에 맡겨두고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는 묘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면회 때 뵌 어머니는 짧게 손질한 머리에 목욕까지 하셔서 훨씬 깔끔해졌지만, 표정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가 없어서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 어머님을 두고 돌아서 나올 때 아버님은 믈론 나도 착잡함을 떨칠 수 없었다.


세간에 떠도는 좋지 않은 풍문 때문에 요양원 자체를 의심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만

입원 기간 동안 몇 차례 어머님이 식사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면서 그런 소문 역시 다 믿을 것은 못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한 끼 식사를 하시는데 거의 40분에서 1시간가량 걸렸다. 계속되는 항생제 투여로 입맛이 떨어진 데다 석 달째 운동이라고는 거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대 옆에 한 시간가량 서서 링거줄을 달고 있는 환자 식사 시중을 들고나면, 입이 바짝 마르고 온몸이 축 처진다. 내가 요양원에서 환자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는 보호사라면 어땠을까. 어찌 되었든 환자는 음식을 섭취해야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요양사가 챙겨야 할 환자가 너덧명 쯤 된다면 가족이 챙겨주는 식사 수준 못 미친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노인환자들이 대부분인 병동의 5인실에서 두 달 넘게 어머님이 입원해 계시는 동안 지켜본 바로는, 입원환자의 80~90프로는 전일제 간병인들과 함께 지냈고, 가족들이 면회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약간의 운과 경제력에 따라 조금 더 좋은 시설의 요양원에 있거나, 조금 더 친절한 간병인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의 어떤 구간은 오로지 자신과 대면하며 건널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는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버님과 딱히 대화를 하지도 않으시면서 아버님이 서너 시간 자리를 비우면 '할아버지는 어디 갔냐'라고 물으신다. 그건 애정이라기보다 애착처럼 보인다. 어머니에게, 버님은 곧 자신이기도 한 것 같다. 나와 너의 경계가 흐릿해진 이들 조차, 몸의 고통만은 나눌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관계가 되었든 나의 늙음과 고통을 마지막까지 함께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삶이 주는 마지막 선물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