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 자체로 모순 덩어리다. 상처받은 사람은 있어도 상처를 준 사람은 없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있어도 사랑받은 사람은 없을 수도 있다. 또 사랑이란 원수로 갚아지기도 하고 조롱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낙담이 벚꽃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지는 날, 내겐 요가가 필요하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멈추고 돌돌 말린 요가매트를 푼다. 이미 뱉어냈거나 미처 뱉어내지 못한 말들을 떠올리며 곱씹기를 멈추고, 합장한 손을 천장으로 뻗어 '수리야 나마스카라(태양 경배자세)' 동작을 따라 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으며 이마를 정강이에 붙였다가 다시 떼고 온몸을 바닥 가까이 낮추었다 일으킨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정강이와 직각을 유지한 채 두 팔을 수평으로 펼쳐 '전사(warrior) 자세'를 취한다. 쉴 틈 없이 동작을 이어가다 보면 머릿속을 꽉 채웠던 말들이 거친 숨으로 새어 나오고 이마와 등에는 땀이 배어 나온다. 40여분 간에 걸쳐 온몸의 근육과 감각기관을 조이고 푸는 동작이 마무리되면 마지막으로 매트 바닥에 눕는 '사바아사나(시체 동작)'에 이른다. 나는 요가를 하는 동안 태양을 경배하는 '요기(yoggie)'가 되었다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을 쓰러뜨리는 전사(warrior)가 되기도 하고, 마침내 매트 위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시체'에 이르곤 한다. 온몸의 긴장이 풀린 후 찾아오는 이 마지막 자세야말로 요가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끝까지 버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
집에서 유튜브를 보고 혼자 따라 할 뿐이지만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챙기다 보니 나름 체력의 하방지지선이 생겼다. 잘 버티는 힘은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기술이다.
삼 년 전쯤, 이만하면 자식들도 다 컸으니 드디어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 때가 왔다고 기대했었다. 나를 위해 지갑을 열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훌쩍 떠나 몇 달이라도 머물다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든이 되실 때까지 누구보다 독립적으로 살아오신 시부모님이 삼 년 간의 팬데믹을 지나면서 급격히 쇠약해지신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가던 해 여름, 입맛을 잃고 자리에 누우신 시어머님은 지금 이 년째 와병 중이시다. 어머니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일어났던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계신 어머님이 기다리시는 건 '집에 돌아가는 날'과 '내가 낳은 자식들의 얼굴을 보는 것' 뿐이었다. 어머님이 헤쳐온 수많은 고통과 오랜 사랑을 생각하면 이 소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소박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매일 통화하고 평생 의지하며 살아온 그분의 친구들 역시 각자의 침대에서 각자의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는 중이었다. 마지막 고통과 외로움은 그 누구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몸과 마음을 내 의지대로 쓸 수 있을 때 무엇이든 미루지 말고 해야 한다는 건 명백히 옳다. 그리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켜켜이 쌓아가는 하루하루가 곧 인생이라는 것도 틀림없다. 이 모든 건 잘 살기 위해 우리가 하는 노력들이다.
하지만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는 그런 노력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산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어머님 곁에서 보게 되었다.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채워야 할지 오리무중이지만 내 인생에 닥쳐올 '사바아사나(시체 동작)'의 시간을 위해, 오늘도 낙담을 미루고 요가매트를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