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by 일기떨기







 여자는 이미 연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관광객의 호기로 고집을 부리기엔 명확하고도 분명한 이유였다. 면세점에서 와인을 고르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걸까. 차를 렌트하자마자 곧장 할그림스키르캬 교회에 갔음에도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매주 목요일 열두 시에만 들을 수 있었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우리의 여정은 아이슬란드 링로드를 따라 크게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고, 레이캬비크에 다시 돌아오려면 최소 보름은 지나야 했다. 설령 다시 온다고 해도 제시간에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여자의 소매 끝을 잡고 말했다. "저기 안에 식구들이 있어요.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났어요." 내내 난처한 얼굴이었던 여자가 자신의 코에 검지를 살짝 갖다 대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주었다.


 교회 안은 더없이 고요했고 오르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게으른 여행자의 방문에 파이프를 죄다 숨긴 건 아닐까. 그때, 등 뒤로 맑고 단단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 소리가 서서히 교회 안을 감싸자 사람들이 하나둘 눈을 감았다. 이 악기의 건반은 사람이 연주하지만 거대한 파이프 관을 통해 소리를 내는 건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바람이 다음 날 찾아올 태풍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건 하얀 세상이 낯설기만 한 여행자를 다독이는 일이기도 했다. 마침내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설렘보단 걱정이 엄습했다. 문득, 여행이 끝날 때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짧았던 연주가 끝나고 뒤를 돌아보자 백발의 연주자가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는 밤색 셔츠 위에 하늘색 아가일 스웨터를 걸친 채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올려다보았다. 잔뜩 경직된 뒷목만 보면 지금 막 연주를 끝낸 사람의 후련함이라든지 감동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쩌면 아직 연주가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미처 교회를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이 그를 뒤에서 꼭 껴안았다. 바람은 대신 악보를 읽어준 연주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늘 말없이 찾아오는 태풍을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남자가 천천히 건반 의자를 밀고 일어나 단상 위에서 내려오자, 은빛 머리칼의 여인이 다가와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지금껏 무표정이었던 연주자가 자신의 왼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제야 모든 연주가 끝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전생을 반쪽씩 나눠 가진 연인처럼 애틋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연주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의 곁을 묵묵히 지켜온 두 사람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상대의 손가락 마디가 가장 떨리는 순간부터 매일 저녁 반복해서 연습했던 구간 그리고 건반의 페달을 가장 세게 밟는 지점까지. 하지만 그들은 연주가 끝날 때까지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이치에 맞는 사랑은 언제나 기다림과 함께 하고, 그런 사랑은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이기에.


 이국의 교회에서 백발의 부부를 보자 그리스로마신화 속,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자꾸만 떠올랐다. 음유 시인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승으로 내려간다. 그의 슬픈 리라 연주는 지옥문을 지키는 개, 머리가 세 개이고 그 누구에게도 관용을 베풀지 않았던 케르베로스를 울리고 뱃사공 카론마저 감복시킨다. 이 모든 걸 지켜본 저승의 신 하데스는 지금 당장 아내와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한다. 단 이승에 도착하기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선 안 된다는 금기와 함께. 오르페우스는 지하동굴을 빠져나오는 내내 자신의 뒤에서 따라오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그리워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사랑을 저승에서도 증명했단 생각에 그 마음을 자신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사랑하는 아내를 영원히 잃는다.


 오랜 시간 나의 작은 연인이 우리를 돌아보지 않기를 바랐다. 그 마음을 염려하거나 넘겨짚느라 밤잠을 설치지 않기를 바랐다. 꼭 술래만이 남은 숨바꼭질 같았다. 아무도 숨지 않았는데 자꾸만 서로가 길을 헤매었고, 그럴 때마다 아주 깊이 외로웠다. 교회의 파이프 5,700개를 바로 등 뒤에 두고도 찾지 못한 것처럼, 나는 그가 눈앞에 있음에도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자꾸만 멀리 가지 못한 채 나를 돌아보던 사람이 생각나 어지럽다가도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단 생각에 마음이 가뿐해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