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 받기도 했어요."
상훈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와 같은 중소도시에 살고, 여행 내내 입에 술을 대지 않은 채 묵묵히 운전만 했던 사람.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듯, 그의 문장은 한 번에 이어지는 법이 없고 자꾸만 멈춰 섰다. 레이캬비크에서의 첫날밤, 우리는 진실게임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이 낸 문제의 정답을 맞히기 위한 스무 개의 질문을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평소에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던 그가, 자꾸만 사람들에게 정답이 아닌 진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태풍 예보와 함께 도착한 아이슬란드. 그날 밤 우리가 열고 싶었던 단 하나의 창문은 오로지 상훈이었다. 그러나 태풍의 눈을 저벅저벅 걸어온 그의 손금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취하지 않은 이에게 문제의 정답과는 무관한 고백을 털어놓고 싶었다.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이미 정해진 질문의 개수를 훌쩍 넘겼음에도 누구도 이 게임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묶어버린 그에게 친구들의 놀림에 속상하거나 우울했던 적이 있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그는 느리지만 정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경기도 군포시의 한 장례식장이었다. 상훈은 나의 첫 번째 조문객이었다. 긴 여행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장례를 치렀다. 지난밤, 그녀는 심폐소생술을 다섯 번이나 해야 했고, 얇은 살가죽 위로 고스란히 드러난 갈비뼈는 산산이 으스러졌다. 일주일째 똑같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막내 삼촌이 숨을 꼴각꼴각 삼키면서 연명치료 중단 동의서에 서명했다. 불현듯, 이 죽음만큼은 아무런 서사도 남기지 않기를 바랐다.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할머니의 납작한 가슴을 더욱 세게 짓누르고 있었다. 엉킨 실타래의 마디를 다 풀어내기 위해서는 자식 모두가 다시 태어나야만 했다.
장례식은 더없이 고요했다. 칠 남매 장녀로 태어나 오 남매를 홀로 키워온 여인의 마지막이라고 하기엔 모든 게 단출했다. 뜨문뜨문 찾아오는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밥을 먹지 못 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럼 식구들은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해서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코로나가 내게 일깨워준 건 우리의 사랑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막연히 완벽한 형태일 거라 여겼던 사랑이 애초에 불안한 상태였다는 것. 그걸 알게 되자 내 마음은 밤새 쌓인 눈처럼 단단해졌다.
하지만 상훈, 어쩌면 나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아이슬란드의 바람과 함께 흘려보냈던 고백을 털어놓았다. 그는 대답 대신 장례식장에 오면 꼭 밥을 먹어야 한다며 맨밥 한 숟가락을 입 안 가득 넣었다. 조문객을 문자메시지로 더 자주 맞아야 했던 식구들은 가뜩이나 입이 짧은 상훈에게 자꾸만 먹을 걸 권했다. 말라비틀어진 코다리조림과 차갑다 못해 딱딱하게 굳은 편육,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둥글고 기름진 꿀떡까지. 아무런 저항 없이 음식을 먹어 치우던 그는, 다른 건 몰라도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꼭 지키라는 당부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손주 중에서는 유일하게 나만이 수의 입은 할머니를 보았다. 이제는 '만났다'라는 말보다 '보았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선한 얼굴로 잠든 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만 보면 잠시 헤어져야 하는 가족이라기보단 언제든지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그림처럼 느껴졌다. 도톰한 눈두덩 위로 옅게 번진 아이라인 문신이 꼭 고등어의 푸른 등처럼 오묘하게 반짝였다. 핏기 없이 하얗고 말간 얼굴과 한 올씩 빚어낸 은빛 머리칼, 평소 할머니라면 바르지 않았을 분홍색 립스틱까지. 손목과 발목이 칭칭 묶인 할머니를 보자 때때로 예고 없이 찾아오게 될 그리움에 아득했다. 언제나 나보다 자신의 딸을 훨씬 더 아꼈던 사람. 난 그런 할머니가 미운 적은 있었지만 싫었던 날은 없었다. 그저 내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봐 두려웠을뿐. 긴 여행이 끝날 때마다 이별이 무심한 얼굴로 찾아왔다. 내 마음을 빈곤하게 만드는 건 늘 가깝다고 여겼던 이들이었다. 모두가 서로의 이방인이 된다면 지금의 원망도, 미움도, 납작한 자존심도 다 무용하게 느껴질 텐데. 우리는 매번 서로를 잘 안다는 착각에 휩싸여 상대를 잃곤 한다.
엄마는 물론 할머니 자신조차 그를 남자 친구 혹은 애인이라 부르길 꺼렸다. 무릎 안에 삶은 달걀만 한 혹을 달고 아슬아슬하게 걷는 할머니와 평생을 쉬지 않고 달린 것처럼 비쩍 마른 남자. 그는 보청기를 끼고도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목소리가 크고 무슨 말을 해도 화를 내는 것 같은 할머니에게 딱 어울리는 애인이다 싶었다. 몇 년 전, 그를 할머니 집 앞 슈퍼에서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예의를 갖춰 인사할 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난 그 할아버지의 얼굴은 하나도 기억나질 않고 복숭아 한 상자를 번쩍번쩍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던 뒷모습만 생각난다. 그때 사랑은 사랑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은 복숭아도 되고, 보청기도 되는 것인데 어른들이 유난이다 싶었다.
할머니의 사랑에는 복숭아도 있고, 보청기도 있고, 그 모든 걸 사랑하려 애썼던 나도 있었다. 그날의 나는 모든 게 어색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죽음, 빈 장례식장의 풍경, 그럼에도 다시 한번 봄이 찾아오는 감각까지. 그런데 내 앞에서 밥을 먹는 상훈만큼은, 그 익숙함만큼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이주 동안 매일 삼시세끼를 함께 나누어 먹었고, 그 때문인지 밥을 먹는 것이야 말로 서로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 중 하나였다.
그날 밤, 상훈이 낸 마지막 문제를 맞힌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친구들이 아무리 놀려도 부끄럽거나 속상하지 않고, 그 시기가 대중없고 속도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 그건 '동정'이었다. 누군가를 가엾거나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아직 성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 여행지에서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상훈이 낸 문제의 정답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동정'을 생각하면 한겨울 바닷가에서도 천천히 바람이 불고 발목 깊숙이 파고드는 눈송이마저 따뜻하게 느껴졌다. 주로 '잃다' 혹은 '지키다'와 같은 동사와 함께 쓰이는 낯설고도 가까운 명사. 누군가 내게 그 단어의 보다 명확한 쓰임새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동정이 지나가다' 아무도 맞추지 못했던 문제의 정답을 떠올리자 지금 이 죽음 역시 우리를 지나가는 수많은 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할머니의 존재가 낯설게 느껴졌다. 평생을 알았던 여인이 멀게 느껴지자 사랑하는 데 있어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결국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을, 장소를, 상황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매일 밤 조금씩 동정을 지나가는 사람이구나. 여행이 끝나고 유순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이방인으로 여기가 되었다. 그곳의 바람은 말한다. 인생은 채우는 게 아니라 조금씩 잃는 것이라고. 무언가 주워 담고 싶을 때면 한겨울 아이슬란드의 태풍을 떠올리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