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을 둥글게 모은 다음 얕은 숨을 여러 번 내뱉었다. 미리 적어둔 질문지가 테이블이나 무릎 사이로 떨어지면 그중 하나를 집어 모두가 들을 수 있게끔 소리 내어 읽는 일. 때때로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단어가 툭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상대를 할퀴기 위한 무례한 질문은 없었다. 삶의 터전으로부터 반 뼘쯤 멀어진 이들의 질문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했다. 그날 집어 든 와인 잔은 입구가 달항아리처럼 좁은 대신 그 몸의 곡선만큼은 멀리서도 선명했다. 이 정도 크기라면 각자 적은 질문을 다 넣어도 될 만큼 충분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순 없었다. 유리로 된 잔 안에 뭉툭한 손가락을 억지로 밀어 넣으면 깨질 게 분명했으므로. 우리는 각자 적은 질문을 차곡차곡 쌓았다. 때때로 오래 붙잡고 싶은 귀한 물음 앞에서는 돌아가면서 답을 달기도 했다. 우리의 일상에서 좋은 질문과 말간 얼굴은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래서일까, 여행 내내 내 몸을 칭칭 감아 묶어두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날 밤 내가 뽑은 질문은 자꾸만 나를 멈춰 세웠다. '아이슬란드에 무형으로 된 것 중 어떤 걸 남기고 싶은가?' 눈앞에 있는 마음도 제대로 붙잡지 못하는 내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걸 남길 힘이 남아 있긴 한 걸까. 한글 자모 'ㅇ'의 모양을 보자마자 질문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래된 애인처럼 굴었던 사람. 이응과 미음을 비슷한 크기로 적고 마음과 마을을 자꾸만 혼동하는 그를 대할 적마다 무해한 나의 존재가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의 질문을 이해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말을 만들어냈다. 다시 사랑, 지금 이 마음이 단단해지면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찾을 것이고, 영영 보지 못하는 사이가 된다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거라 말했다. 전부 거짓이었다. 여전히 타인이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기 바빴고 여행은 늘 좋은 구실이 되어주었다.
문득, 사랑이 주는 안락함보다 그 이후의 그리움을 더 아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늘 그랬듯이 손에 닿지 않는 마음을, 만질 수 없는 대상을 그리워했다. 단 한 번도 살아있는 화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베르나르 뷔페가 그린 그림보다 그가 더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좋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작품이 없을 거란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나의 비겁함엔 언제나 쉼표가 없었다. 그저 내 거짓을 재빨리 숨기기 위한 마침표만이 필요했다.
뷔페의 <유언장 정물화(1963)>에는 '이것은 나의 유언장이다. 나는 모든 것을 나의 부인 아나벨 뷔페에게 남긴다.'라는 내용이 씌어 있다. 20대에 백만장자가 된 화가가 자신의 아내를 위해 유언장을 직접 그린 것이다. 그는 이 작품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곳곳에 자신의 지장을 찍어두기까지 했다. 말년에 파킨슨병에 걸린 뷔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 넘어져 손을 다치고 만다. 그는 21세기에는 그림을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의 두려움을 읽은 아나벨이 집에 있는 뾰족한 물건은 죄다 치웠지만 결국 뷔페는 1999년 10월 5일, 71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하나같이 깡마른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뾰족한 턱과 불룩 튀어나온 뱃가죽에 시선이 가지만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마음이 가는 건 툭 튀어나온 눈썹 뼈 아래 허공을 응시하는 눈동자였다. 두꺼운 쌍꺼풀 아래 갈 곳을 잃은 눈동자는 삼백안이었다. 눈동자의 흰자위가 넓을수록 더 쓸쓸해 보이는 이들은 자신의 시선을 감지하지 못한 채 더 깊숙이 외로워지길 바라고 있었다. 뷔페는 그들의 눈동자 안에 쉼표를 그려 넣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려주고 있었다. 내가 아이슬란드에 사랑을 찾으러 다시 올 거라고 말했을 때, 식구들은 약속한 것처럼 오래된 애인 이야기를 꺼냈다. 헤어진 애인과 맞춘 반지를 끼고 온 별을 시작으로 애인이 있는 애인을 그 애인보다 사랑한 별까지. 그 밤, 각자가 남긴 사랑의 유언장에는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었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다 잃을 것처럼 사랑했고 정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한동안 문장 안에 쉼표를 넣지 않았다. 그런 문장은, 자기가 쓰는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증거라 여겼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해 중언부언하는 일은 글을 쓰면서 피하려 했던 일이기도 했다. 다른 이의 글을 살필 때도 쉼표가 많거나 단어가 반복되면 연필로 밑줄을 긋곤 했다. 모든 건 타인의 마음에서 쓸모를 찾으려 한 나의 오만이었다. 특히 쉼표는 내가 아닌 타인의 호흡을 위함일 때가 많았다. 당신이 여기 잠시 머물러주길 바라는 마음이자 원하는 만큼 머물다 언제든지 떠나도 괜찮다는 안부였다. 그 마음을 살피게 된 이후로 쉼표를 잘 쓰는 이를 동경하게 되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 언어의 기본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올바른 문장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사랑의 실천이었다. 애초에 완벽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타인에게 가닿기 위해 고친 문장을 다시 들여다볼 뿐이었다. 마치 사랑처럼.
이런 내게도 사랑의 그리움이 깃들길 바랐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외롭고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독하게 이기적인 내게는 외로움이라는 감정도,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도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밤마다 와인 잔이 깨지는 상상을 했지만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신 날에도 유리로 된 얇은 막은 우리의 이야기를 막아 주었다. 그곳의 거센 태풍으로부터, 나의 오래된 애인들로부터, 끝끝내 찾아오지 않을 그리움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