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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래 Mar 13. 2021

서비스와 권력사이

8개월 아기아빠의 응급실 첫경험기




엉엉 울면서 전화를 걸어온 아내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오빠 큰일났어. 어떻해 어떻해. 오빠. 오빠 빨리 집으로 와봐야할거같애 어떻해. 어떻해. 빨리와 어떻해'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아내의 전화에 몸을 내던지다시피 차에 싣고 급히 집으로 내몰았다. 무슨일이 생겼는지 묻지도 않고, 아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봄이에게 무슨일이 생겼구나' 


아내가 찍어 보내준 아이의 동영상을 보았다. 1분 정도 길이의 영상인데, 2번 정도 눈을 뒤집고 입을 벌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심장이 내려 앉았다.  핸들을 잡고 앉아있는데 복부가 뒤틀려왔다. 긴장감이 심할때면 복통이 찾아오곤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통증을 느낀건 처음이다. 중간중간 나를 가로막는 신호등은 그대로 지옥이었다. 신호등의 깜빡이는 점멸이 영원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 사이사이를 위험하게 스쳐가며 운전을 했다. 내 정신이아니었다. 


아내는 구급차를 불렀고 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 있겠다고 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차는 황급히 아이와 아내를 싣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윗배가 계속 아파왔다. 


병원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서 짐을 챙겨야했다. 분유와 옷가지, 세면도구들.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현관 구석에 아내가 챙겨둔 짐꾸러미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열어보았다. 구급차가 올때까지 아내는 준비해야할 것들을 가방에 담아두었던 것이다. 황망중에 이걸 또 언제 싸두었을까.  가방을 집어들고 뒤따라 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때문에 병원의 방역이 삼엄했다. 먼저 구급차로 실려온 아이의 신분을 확인하고, 보호자 자격으로 응급실에 입장했다. 병원은 분주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누워있는 환자에 비해 의료진의 숫자가 부족해 보였다. 병원밖은 코로나 때문에 5명 이상 모이지도 못하는데, 병원 안은 마스크를 채 끼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환자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의료진은 잰걸음으로 오갔다. 황급히 지나다니는 의료진을 붙잡고 3번을 물어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아이는 괜찮아 보였고, 아내의 얼굴은 수척했다.  일단 기본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해야 했다.  


채혈을 하기 위해 한 간호사가 아이의 팔을 묶었다. 8개월 짜리 아기의 팔은 피부가 두터워 혈관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고무줄을 더 강하게 묶고 손등에 알콜을 발랐다. 아이는 발버둥을 쳤다. 간호사는 엄마와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이의 팔다리를 강하게 잡아달라는 것이다. 온몸을 결박당한 아이는 더욱 몸부림을 치려 했다. 바늘이 아이의 손등을 뚫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렸다. 손등안으로 뚫고 들어간 바늘은 쉽게 혈관을 찾지 못했다. 피부 속에 들어간 채로 바늘은 계속 방향을 바꿔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아이의 울음은 길어졌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이의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내지르는 고통의 소리가 병원을 메웠다. 아이가 온힘을 다해 손을 잡아빼자 살을 뚫고 들어간 바늘이 다시 빠졌다. 나에게 팔을 더 강하게 잡아달라고 요구한 뒤  바늘은 다시 손등을 뚫었다. 간호사는 어려보였는데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채혈을 하는 모습이 익숙치 않아 보였다. 내가 낳은 자식이 내 손 밑에서 결박을 당하고, 저렇게 괴로워 하는데 멈출 수 없다는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는 무력감.  정신이 혼미했고,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오른쪽 손등을 뚫은 주사바늘은 결국 혈관을 찾지 못했다. 간호사는 반대편으로 다시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순간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화가 났다. 내 눈치를 알아본 아내는 나의 다리에 손을 얹으며 나를 진정시켰다. 다시 아이를 결박하고 왼쪽 손도 똑같이 고무줄을 묶고 바늘을 찔렀다. 바늘은 다시 피부속을 헤집었다. 아이는 정신을 잃을듯 울었다. 또다시 혈관을 찾지 못하고 손등을 뚫기를 3번, 겨우 피가 맺혀 나왔다. 하지만 제대로 혈관에 연결되지 않았는지 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는 나에게 아이의 손을 잡고 겨드랑이에서 손 끝 쪽으로 밀어달라고 했다. 피를 짜내야 했다. 아이는 괴로워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피로는 채혈시험관을 쉽게 채울수 없어 보였다.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한개의 채혈관을 채웠는데 간호사는 다른 채혈관 뚜껑을 열었다.  나는 이걸 몇개를 더 해야되냐고 물었고 총 5개를 채워야 한다고 했다. 다시한번 눈앞이 어지러웠다.  3번째 채혈관이 채워질 무렵, 경기를 일으켜 병원을 찾아온 아이에게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간호사의 손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고, 어렵게 꽂은 바늘이 떨어질까 노심초사 하느라, 방금 마친 채혈시험관의 뚜껑을 닿지 않고 스테인레스 쟁반에 기대어놓아 위태로웠다.  그런데 그때 간호사의 실수로 채혈해놓은 시험과 하나가 엎어졌다. 빨간 피가 쏟아져 쟁반이 물들었고. 어렵게 한방울씩 뽑은 피를 다시 뽑아야했다.  속에서 울분이 치솟았다. 눈에서 불기둥이 일었고 거친말을 쏟아내고 싶었다. 숨이 터질것 같이 가슴이 답답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바늘이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마지막 채혈관을 채우고, 링거를 연결했다. 아이는 엄살이 없는 편이어서 통증이 멈추자 울음은 그쳤지만 기진했고, 눈밑이 패여보였다. 한뼘 남짓되는 길이의 팔에 깁스가 감기고 링거가 연결된 모습을 보니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채혈 결과가 나오기까지 3~4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아이는 낮 12시에 분유를 먹고 저녁 7시가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결과가 다 나오려면 앞으로 서너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챙겨온 분유를 먹여도 되는지 물었더니 채혈결과 후 어떤 검사를 더 해야할지 모르니 먹이지 말라고 했다. 수긍하고 아이를 달래고 있는데 시트가 젖어왔다. 이상하다 싶어 팔을 보니 링거가 잘못 연결되어 수액이 새나오고 있었다.  다시 링거를 맞기 위해 손등에 구멍을 낼 생각을 하니 정말 견딜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간호사를 부르고 링거를 제거해달라고 했다. 간호사는 손등에 연결된 링거바늘을 보더니  링거를 연결한 간호사를 불렀다. 반말로 간호사를 불러 다그치는 것으로 보아 막내 간호사쯤 되는 모양이었다. 미숙한 담당자로 인해 아이의 손등에는 7개의 바늘 구멍이 뚫렸다. 작은 양손등에 벌써 피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다음은 엑스레이를 찍을 차례였는데 취소시켰다. 경기를 일으켜서 찾아온 마당에 뼈 안을 들여다보는 엑스레이는 무슨소용일까 싶었다.  그대로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채혈결과가 나올때까지 응급실에서 4시간을 기다렸다.  긴 시간이었다. 앞자리에 환자가 2번 바뀌었다. 나는 아이의 아픔도 덜어줄 수 없고, 배고픔도 달래줄 수 없는 무능한 보호자였다. 11시가 넘어서야 채혈결과가 나왔다며 간호사가 알려왔고 12시가 다되어서 찾아온 의사는 경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확인할 수 있는게 없다고 했다.  큰 병원을 가보라고 알려 주었다.  당장 이상이 없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병원의 불필요한 프로세스와 의료진의 실수들로 인해 겪게된 고통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흡사 거대한 권력에 저항하다가 온가족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오는 기분이었다. 아내도 나도, 아기도 모두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모두 기진했다. 아이를 들처안고 돌아나오는 응급실 입구에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의료진 폭행,협박,진료방해는 의료법에 의해 처벌됩니다'. 문구는 차가웠고, 의료서비스가 어떻든 토를 달지 말라는 엄포같아 보였다. 의료진을 위한 저 문구는, 환자를 향한 냉소였다.  


뇌파검사를 위해 세브란스 병원 예약을 할 예정이다. 환자는 의사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사실. 아이가 인질로 잡혀 의료진의 질 낮은 서비스에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함이 벌써부터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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