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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Sep 17. 2024

가족여행

매일이 여행인 나에겐

올해 초부터 가족 여행을 따라다니지 않는다.

1박 2일 어디 갈래?

이 소리가  세상 제일 무섭다.

하루 200km를 왕복으로 달리는 나에게, 기차, 버스, 택시, 도보, 지하철. 비행기 빼고 모든 교통수단을 하루에 다 이용하는 나에게, 어디 가자 소리가 제일 무섭다.

다 같이 가서 노는 것이 이렇게 부담되기 시작한 것은 체력이 뚝, 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회사에서도 점심식사 대신 잠을 택하는 때가 꽤 많아졌다.

아침에 비몽 사몽 간 회사 앞 스타벅스 매상을 꾸준히 올려주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스커피를 마시면 체하기 시작했고, 몸에서 불안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너 지금 힘들구나. 너 지금 너를 돌봐야 하는구나."


그러나, 아무리 세대주가 아니고 가장이 아니더라도 집안의 경제 일부를 책임지기로 한 이상, 대책 없이 함부로 놓을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나, 가족들의 원성은 자자하다.

어디 가자고 하면 찌그러지는 얼굴. 결국 딸들과 남편만 외출하고 여행가고가 반복되고 있다.

너는 아이들이 경험을 쌓는 일에 심이 없다며 가족들이 여행을  갈 때마다 시끄러운 우리 집을 보며,

나는 제안한 적 없는 여행에 왜 이렇게 혼나야 하나.

이런 상황은 복직하기 전, 나만 예상한 건가 싶어 내 모습이 초라해진다.


여행이라.

나는 매일 여행을 한다. 매일 기차를 타고, 도시를 지나 논밭을 지나, 다시 도시를 지나 논밭을 지나, 도농복합도시인 오송을 오간다.

기차에서 2년 즈음 만나다 보니 왠지 이름이라도 물어봐야 하나 싶은 사람도 생기고,

출장 가는 사람, 통근하는 사람이 구분될 정도로 이제는 기차라는 공간에  익숙해지고 여행이 곧 일상인 이불 밖은 항상 위험했던 나에게 너무도 행동반경이 넓어진 신기한 일상을 살고 있다.

이 와중에 가족 여행까지... 참으로 버거운데, 나도 살자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항상 외면한다.

나는 언제까지 일하느라 여행을 해야 하고 언제까지 가족들에게 비난을 받아가며 여행 소리만 나와도 떨어야 할까?


살면서 이렇게 억울한 나날이 계속되어도, 아직은 기차를 타는 삶을 정리못하는 게 서글플 따름이다.

언제쯤 기차를 안 타겠다는 결심이 설까.

그 결심을 세우는 데는 무엇이 필요한 걸까? 기차를 탄다고 얻어지지 않을 경제적 자유라면, 가족들하고 여행 가는 게 즐겁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돈벌이라면 이제 고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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