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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 오송역에서

입찰 10개 올리기

by emily

마감이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다가온다.

연말이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섭다. 벌써 입찰을 10개 올려야 하는 상황.

세상에나. 숫자는 왜 이리 눈에 안 보이고...

속상한 일이다.

습득이 늦어지고 행동이 느려지고.

늙는다는 것은 사그라져 가는 과정이다.

조명이 서서히 꺼지다 갑자기 딱, 무언가 나가버리는 상태.

사그러들더라도 타들어가더라도 없어지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봇짐장수럼 큰 핸드백에 도시락 가방까지 든 내 모습이 참 안쓰럽다.

이것이 내가 바라던 사그러져 드는 모양새인가?




한 시간 반 정도 늦은 퇴근에 아이들은 꽤나 무서웠던 모양이다. 짜장연 배달해 준 아저씨가 갑자기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셨다며 짜장면 픽업하면서 무섭다며 전화가 온다.

살면서 가장 안전한 시대,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것 같으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하면 엽기적인 세상이니 전화통화 하면서 괜히 나도 으스스하다.

뭐 하자고 이러고 오송까지 왔다 갔다 하나 다시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다. 내 인생 일순위는 아이들인데 지금은 아이들이어야 하는데 지금 이 순간이 옳은지.

그래도 집에 오니 친구랑 싸웠다며 이런저런 과정을 이르는 아이를 보면서 아직은 내 우선순위가 작동했구나... 안심을 한다.

분하고 억울할 때 나를 찾아와 주니 아직은 애들과 내가 건강한 사이를 유지하는구나.


그래도 까만 밤 사그러드는 내 모습이 안타깝다.

어차피 언젠가는 사라질 휘발성 인생이라면 그래도 좀 없어지는 모양새가 흉하지 않도록.

이제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십년지대계임을 느끼는 쓸쓸한 밤이다.


#휘발성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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