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함과 애매함, 그 사이 어디쯤.
달큰 짭짜름한 잔치 국수 한 그릇이 분명히 먹고 싶은 날이었다. 12월의 칼바람은 잔뜩 동여맨 외투 사이로 얄궂게 들어와 살 구석구석을 괴롭혔고, 그럴수록 나는 국수 생각이 간절해졌다. 발걸음을 재촉해 눈 앞에 보이는 작은 포장마차 속으로 얼른 몸을 숨겼다. 들어서자마자 후끈한 공기와 구수한 국수 냄새가 몸과 마음을 녹이는 것 같았다. 퇴근길에 들린 집 앞의 작은 포장마차가 두고두고 내게 위로가 된 날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삼삼오오다. 느린 속도로 소주잔을 비워가는 중년 남성 두어 무리가 있었고 젊은 커플도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혼자 앉았다. 주문한 국수가 얼른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젊은 여자 혼자서 달랑 국수 한 그릇을 시켜놓고 있으려니 남사스럽기도 하고 청승맞게 느껴진 탓이었다. 빠르게 배만 채우고 나갈 심산이었다.
"국수 나왔습니다~"
포장마차의 주인이자 주방장으로 보이는 빨간 앞치마의 아주머니께서 방금 막 말아낸 국수를 들고 나왔다. 들뜬 마음으로 국수를 받으려는데, 그 찰나. 국수의 국물이 넘쳐 내 손등에 흘렀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워낙 뜨거운 국물이었기에 나는 하마터면 악!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를뻔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내가 큰소리로 놀래버리면 아주머니께서 더 크게 미안해하실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가 왠지 더 미안해질 것만 같아서 그랬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미안해하는 마음을 미안해하는 마음이라니. 웃기고 바보 같은 말이지만 그것은 진심이었다. 아주머니의 난처함을 헤아리는 짧은 동안에 뜨거운 국물은 손등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황급히 휴지를 들었다. 아주머니는 다급한 내 손길을 보시고서야 국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신 것 같았다.
"아이고 이걸 어떡해, 뜨거우면 말을 하지 그랬어! 아이고 몰랐네, 미안해요 미안해"
아주머니는 연신 휴지를 뽑아내며 분주히 내 손등에 떨어진 국물을 닦았다. 그리고 황급히 주방으로 들어가서 물에 젖은 행주를 가지고 나와 내 손등에 올렸다.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는 말만을 계속해서 반복했고, 나는 그런 아주머니에게 어설프게 웃어 보이며 괜찮다고 답할 뿐이었다. 기어코 미안해지고 만 것이다.
문을 열고 나서니 아까보다는 조금 견딜만한 바람이 불었다. 공기는 그저 차갑기만 할 뿐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손등엔 붉은 자국이 조금 남았고 아주머니는 그날 끝내 국수 값을 받지 않으셨다. 내가 먹은 것은 국수 한 그릇일 뿐인데 든든해진 것은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나에겐 유독 그런 날이 많았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미안해하는 그 불안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래서 자꾸만 내가 참아내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들과 대면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성격이 좋다고 하거나 답답하다고 했다. 그런 평가를 듣고 있노라면 내 인생에서 달큰 짭짜름한 국수 맛이 났다. 타인의 난처함을 먼저 헤아리는 일은 참으로 근사한 일이었기에 꽤나 달큰했고, 내 감정을 챙길 줄 모르는 이 답답한 성격은 짭짜름한 맛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종종 외로웠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혹시나 내가 너무 바보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회의감이 들 때, 그래서 마음이 피곤할 때, 쉽게 지칠 것만 같을 때. 그런 날이 오면 나는 포장마차에 간다. 그러면 인생에서는 달큰하고 짭짜름한 국수 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