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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Jul 18. 2019

변화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우리 가족은 어쩌다 그렇게 되었나?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이미 마음이 뒤숭숭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라는 죽음에 관한 책을 읽고 영정사진을 찍고, 관에 들어가는 임종 체험을 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친구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부고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이 녀석은 서로 다른 대학을 다녔지만 서울에서 20살이라는 가장 찬란한 시간 속에서 함께 자취를 한 룸메이트였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녀석의 희노애락을 바로 옆에서 보았지만 그렇게 서러운 오열은 처음이었다. 


급하게 열차를 예매해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이미 저녁 10시가 넘었다.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지 못한 채 장례식에서 친구의 옆 자리를 지키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었다.


다른 친구 덕분에 집 앞까지 편하게 도착했다. 머슬 메모리가 정말 있기는 한 것인지, 머릿 속으로는 '비밀번호가 뭐였더라'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손가락은 이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들어가보니 가족들은 다 자고 있었다. 누나와 내가 쓰던 방들은 나무작대기들만 남은 '빈 둥지'처럼 덩그러니 있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먼지 쌓인 빈 둥지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우리 엄마는 버릴 줄 모르던 사람이다. '언젠간 쓸 때가 온다'며 쌓아두곤 했다. 엄마는 크게 아픈 시기를 지나고 나서 예전처럼 사업을 운영을 하지 못 하게 되었다. 손도 크고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데 급격하게 줄어든 수입에 따라 소비를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안 그래도 물건들이 집에 많은데 (내가 보기에) 필요하지 않은 것에 감당할 수 없는 지출이 지속되는 상황이어서 조치가 필요했다. 누나와 내가 둘 다 서울에 있으니 부산에 매 번 가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당시 미니멀리즘을 접하고 윤선현 정리 컨설턴트의 강연을 들었던 것이 떠올랐는지 엄마에게 책을 선물했었다. 


모든 세상이 잠든 듯 조용한 밤에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적어도 5년이 지난 그 책을 집어들었다. 약간의 먼지가 쌓여있었고, 3분의 2정도를 읽은 듯 했다. 엄마의 흔적을 따랐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울음이 터졌다.


책 귀퉁이가 접히고, 굵은 빨간 볼펜으로 물결 표시를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잘 버리지 못 하는 사람에 대한 묘사를 한 부분 옆에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적어두었다. 엄마가 원래 버리는 것을 잘 못하기는 했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받은 수술로 인해 예전처럼 몸과 생각과 마음을 통제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서도 답답해 했으니 당신은 오죽하셨을까. 뜻하지 않게 본인과 타인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면서 스스로 괴로운 시간들도 분명 있으셨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아들이 보낸 책을 잔소리로 듣지 않으시고 책을 펼치셨다. 그리고 밑줄을 그어 나가셨다. 


엄마는 책을 거울 삼아 자신의 삶을 직면해 나간 것 같았다. 어떤 문장에서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어떤 문장에서는 아빠를 발견했다. 그리고 당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셨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엄마는 요즘 달라졌다. 책 한 권으로 만들어진 변화는 아니겠지만, 변화의 씨앗이 되었을 수 있겠지.


떨어져 있어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필요없는 소비가 줄어들고 저축하시는 금액이 늘어나셨다. 마치 66챌린지를 통해 서로의 성장을 공유하고 독려하듯 우리 가족 카카오톡 방에서는 엄마가 하루에 걸은 걸음수를 공유한다. 나는 <스트레스의 힘>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엄마가 그렇게 걸으면 건강에 어떤 좋은 영향이 있는지 엄마의 행위가 불러올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들에 대해서 사진으로 캡쳐하여 지속적으로 보내드린다. 



자신이 하는 행위의 긍정적 효과는 인지함으로써 극대화시킬 수 있다



또 나는 내가 배우고 느낀 것, 읽고 쓴 서평, 운동 영상, 인터뷰 영상을 보내드린다. 그럼 엄마 아빠는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글을 잘 쓰냐'며 생전 안 하던 칭찬을 하신다. 나는 또 '누구 아들인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라며 엄마 아빠의 어깨를 세워준다. 특히 인터뷰 영상을 공유해드리면 주변 지인들에게 적극 영업을 하신다. 그래서 아버지 친구 분 중 한 분은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고. 부모의 자랑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종종 엄마가 노력하는 부분에서 중간 이정표를 만들어 드리고 리워드를 드리기도 했다. 한 평생 일만 해오다 큰 수술 이후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엄마의 노력과 성장을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고, 엄마 스스로 그런 환경설정을 하기는 힘들테니까. 나는 엄마가 노력하고 성장하는데 있어서 벗이다. 


책과 책을 통한 변화, 그리고 그 변화를 지켜보면서 따뜻한 지지와 격려와 칭찬이 지속적으로 오고 갔을 때 우리는 함께 성장했다. 엄마는 소비, 건강에 있어서도 예전과 훨씬 달라졌다. 가장 기분 좋은 변화는 엄마의 날카로움이 부드러움으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프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엄마는 몇 달 동안 입원을 하면서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오랜 기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셨다. '퇴원 = 완치'가 아니며 질병으로 인해 사업을 그만두게 되면서 기존에 유지되던 사회적 관계도 끊기고, 갑작스럽게 줄어든 씀씀이에 적응도 해야했다. 아들 딸 마저 서울에서 지내다 보니 회복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굉장히 예민했다. 상냥하고 따뜻했던 예전과 달리 쉽게 신경질을 부리고 예민했다. 그랬는데, 엄마가 요즘 다르다.


지금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 밝다. 가끔은 사람들에게 너무 친절하고, 기분 나쁜 일을 당해 따질 법한테도 웃으면서 '괜찮다'는 말로 넘어가기도 한다. 애덤그랜트의 <기브앤테이크>에 나오듯 가장 소득이 높은 그룹에도 기버가 가장 많지만, 가장 소득이 낮은 집단에도 기버들이 가장 많다. 그 글을 보는데 어찌나 엄마가 생각나던지. 때론 엄마가 너무 퍼주기만 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거절을 못하는 엄마를 위해 <나는 왜 거절을 못할까>를 선물하기도 했다



함께 책을 읽고, 서로 지지하고 인정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다보니 가족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라는 책과 임종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누나도 가족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며 인증샷을 보내왔다. 책으로 소통하던 집은 전혀 아닌데, 반가운 낯섬이 찾아들었다.



점점 책에 관한 나눔이 늘어가는 가족 카카오톡 방



어제는 누나한테 카톡이 왔다. 엄마에게 이 책을 선물하는게 어떻겠느냐고. 죽음에 관한 책이라길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선물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누나가 보내준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미리보기로 보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엄마처럼 뇌졸중을 겪었던 뇌과학자의 8년에 걸친 회복스토리였다. 엄마에게 이보다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는 책이 어디 있을까. 나는 답장도 하기 전에 메세지 카드를 작성해서 부산으로 책을 주문했다. 책이 왔는데 엄마만 받으면 아빠가 서운해 할테니, 누나와 나는 아빠에게 드릴 책을 물색했고 누나가 또 아빠에게 찰떡같은 책을 잘 선정했다. 이번에는 누나가 메세지 카드를 작성해 보냈다.





오늘 책이 부산에 도착했다. 잘 받으셨단다. 책에 꾹꾹 눌러담은 우리의 마음을 눈치채신 것일까. '꼭 읽어보마'라는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부모님께 닿은 책이 엄마와 아빠라는 세상의 한 존재를 때로는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때로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때로는 따라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은 책으로 조금은 더 끈끈해졌고, 조금 더 따뜻해졌다. 조금은 달라졌고, 조금 더 행복해졌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바뀔 수는 없다. 원치 않는 고통이 난데없이 나타나 삶을 질식시키려 할 것이고, 영원하지 않은 삶은 모든 것을 서서히 죽음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부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삶은 고통의 바다이다. 하지만 읽고 나누는 가족이 있다면 그 바다를 나서는 길이 두렵지만은 않다. 삶이 고통의 바다일지라도 '함께 읽고 나누는 가족'은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를 잡고 있는 것이다. 키를 잡고 있다고 한들, 휘몰아치는 풍파에 삶이 어디로 휩쓸려갈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키를 맞잡은 손은 더 끈끈해지고, 함께 만들어간 여정은 결정적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꿈꾸던 낙원에 도착할 수도 있겠지.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지만, 동료가 있다면 괴롭지만은 않다



늘,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잘 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지나고 돌아서서 후회하기 마련이다. 이 글은 스스로에게 그러지 말자고 쓰는 글이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가족들에게 따뜻한 인정과 감사의 말, 칭찬과 격려, 책을 통한 나눔과 성장을 멈추지 말자. 사르트르의 앙가주망(Engagement)라는 말처럼 내가 책을 읽고 나누었던 행위 자체는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에 남기는 발자국이 된다. 책을 통한 나의 앙가주망은 엄마, 누나의 앙가주망으로 이어졌다. 엄마는 내가 보낸 책을 기꺼이 펼쳐보았으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누나도 책을 가까이하면서 <종이약국>처럼 엄마 아빠에게 가장 적절한 책을 처방했다. 이러한 우리의 발걸음이 앞으로도 우리 삶을 더 반짝이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또한, 우리 가족이 경험한 변화의 스토리가 나비의 날개짓이 되어 누군가의 작은 발걸음에 보탬이 된다면 더 없이 좋겠지.






그렇다. 변화 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당신이 발걸음을 떼는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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