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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Aug 07. 2019

늘 뒤통수 맞는 사람들의 특징

정밀성 VS 정확성



영화 <캐치미 이프유캔>의 한 장면이다. 온 지구인이 사랑했던 영화 <타이타닉>에서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아름다운 소년을 연기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번엔 카멜레온이 되기로 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무작정 가출한 디카프리오는 위조수표를 만들어 살 길을 모색해보지만 인생은 그리 만만한 것이었다면 개나 소나 백만장자가 되었겠지. 그러던 어느 날 미녀들에 둘러싸인 파일럿이 누구에게나 선망이 되는 대상이라는 걷을 깨닫고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한다. 물론 겉으로만.


학생 기자를 사칭해 항공사에 인터뷰를 하면서 파일럿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수집하고, 항공사에 전화해 제복까지 얻어낸다. 그리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항공기 피규어에서 떼어낸 항공사 마크를 위조수표에 붙여 항공사에서 발급한 전용 수표인 것 마냥 위조수표를 사용한다.


파일럿 제복을 입고, 파일럿처럼 행동하면서, 항공사의 마크가 붙어있는 위조수표를 사용하는 디카프리오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모든 항공 노선에 무임승차는 물론 회사 수표를 위조해 전국 은행에서 140만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17억)를 가로챈다.


물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FBI 요원에게 덜미를 잡힌다. 그런데 FBI 요원 말고는 왜 한 번도 디카프리오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정답은 정밀과 정확성의 차이에 있다.


정밀성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정교하게 표현하는지를 의미한다. 통근 거리를 설명할 때 '66.9킬로미터'는 '약 60킬로미터'보다 정밀하고, '약 60킬로미터'는 이른바 '더럽게 먼 길'보다 정밀하다.(중략) 그런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만약 주유소가 반대쪽에 있다면 이는 완전히 부정확한 대답이 된다. 정확성은 어떤 수치가 진실과 전반적으로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재는 척도이므로, 정밀하다고 해서 정확하다고 착각하면 위험하다. <벌거벗은 통계학> 80p


디카프리오는 정밀했다. 그리고 정밀함에 속아 정확함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디카프리오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잘생긴 얼굴과 현란한 말재간으로 정신을 쏙 빼놓기도 했지만.


냉전으로 온 세상이 경직되었던 1950년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정밀성은 확실하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은연중에 혹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부정확함을 감추기도 한다. 공산주의자 색출로 유명한 조지프 매카시는 미 국무부에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 있으며 자신에게 그들의 명단이 있다고 주장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 휠링 시에서 연설하던 도중, 매카시는 종이 한 장을 허공에 흔들며 당당하게 말했다. "여기 제 손에 205명의 명단이 있습니다. 공산당원이면서도 여전히 국무부에서 일하며 국가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고 국무장관에 보고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벌거벗은 통계학> 82p


물론, 종이에는 그 누구의 이름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5명이라는 구체적인 숫자와 종이를 흔들어 보이는 그의 정밀함은 수많은 대중을 선동하고도 남았다.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확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알아보는 혜안이 필요한 이유다.


1950년대와 지금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대중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정밀함과 정확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 역시 많다. 정치에서 그런 사례는 차고 넘치니 이번에는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스마트폰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 통신사의 사례다. 버라이즌은 네트워크 서비스 범위가 넓은 지역에 퍼져있는 반면, AT&T는 상대적으로 서비스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다. 버라이존은 당연히 넓은 서비스 가능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광고를 했다.



한눈에 봐도 절대적인 서비스 지역이 넓은 버라이즌



사진에서 보듯 버라이존은 압도적인 네트워크 망을 자랑했던 반면 AT&T는 어떻게 했을까?



AT&T covers 97 percent of all Americans



AT&T는 미국이라는 넓은 땅덩어리에서 지리적인 네트워크 망에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미국인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을 얼마나 커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다. 


버라이즌과 AT&T의 광고는 둘 다 정밀했다. 하지만 광고를 정확하게 들여다볼 줄 알았던 <벌거벗은 통계학>의 저자는 시골 변두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네트워크 망의 범위가 넓은 버라이존을 선택했다.


그럼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어떨까? 올해 4월, 이동통신망의 시장에 '5G'라는 새로운 혁신이 등장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지는 모르지만 스트리밍 시장을 급속도로 성장시킬 수 있는 기반 기술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동통신사 시장에서 '만년 꼴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LG유플러스는 5G라는 기술적 전환 속에서 1등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5G가 상용화되기 전부터 ‘5G는 LGU+’라는 슬로건으로 새로운 입지를 다지고자 했던 LG유플러스. 만약 이 슬로건만 믿고 '그래, LG가 핸드폰은 구리지만 5G 통신망은 믿을만하겠지'라고 생각하며 LG유플러스를 개통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까운 친구 중에 안동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이번 갤럭시 S10 5G 모델이 말도 안 되게 저렴하게 나왔을 때 핸드폰을 바꿨다. 어느 통신사로 바꾸었을까? 친구가 평소에 유튜브에서 1080p이나 4k의 고화질 영상을 주로 감상하고, 넷플릭스를 즐겨보며, 영상 작업을 스마트폰으로 하면서 업로드와 다운로드가 빠른 것이 중요하다고 가정한다면 5G의 서비스 이용 가능성이 중요할 것이다. 만약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LG유플러스의 광고만 믿고 '역시 5G가 나한텐 중요하니까 LG유플러스로 가자!'이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래는 2019년 8월 7일 기준 SKT, KT, LGU의 5G 가능지역을 표시해둔 5G 커버리지 맵과 통신사별 5G 기지국 설치 통계이다



왼쪽부터 SKT, KT, LGU



기지국 숫자만 보면, LG유플러스가 나쁘지 않은 커버리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실제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통신망을 이용하게 될 친구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안동의 경상북도청 근처를 보자.



왼쪽부터 SKT - KT - LGU 순서(2019.08.07 기준)



유일하게 SKT만 해당 지역에서 이용이 가능하다. 그것도 제한적으로. 쉽게 말해서 갤럭시 10S 5G 모델을 친구가 구매하기로 결정을 내린 이후라면, 5G 가능 여부는 이 지역에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친구는 가장 경제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KT를 선택했다. 


올해 상반기 하현회 LG유플러스 대표는 “5G 기지국은 전국에 올해 상반기 5만 개, 하반기 8만 개를 구축해 선두 유지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며 “5G는 향후 10년 회사 운명 결정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미 상반기가 다 지난 시점에서 LG유플러스의 기지국은 5만 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2,270개가 지어졌으며 하반기에도 8만 개를 구축한다는 목표량을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올해 4월부터 팝업 매장을 통해서 5G 체험 부스를 만들고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가면서 사람들에게 '5G는 LG유플러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정밀해 보이고 5G는 정말 LG유플러스가 잘할 것 같은 인상을 심어줬는데, 이동통신사 가입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는 정밀함이 아니라 정확함에 초점을 둬야 한다.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정확성은 어떤 수치가 진실과 전반적으로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재는 척도다. 본인이 의도했던 것과 달리 뒤통수 맞지 않기 위해서는, 속지 않기 위해서는 정밀함과 정확함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정밀함과 정확함을 구별하는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바로, 통계다. 대한민국에는 나를 포함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아직까지 수포자 중에 통계와 친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거벗은 통계학>을 통해 통계를 공부하려는 이유는 정밀함과 정확함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통계를 공부하면서 당신은 수많은 통계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통계를 활용하여 당신의 인생에서 활용할 수 있기까지 하다. 마치 네트워크 망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97퍼센트의 미국인을 커버한다고 했던 AT&T처럼.


기억하라. 부분적으로 부풀려진 사실에 선동당하고 싶지 않다면,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속임수에 빠져 소중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통계와 친해져라. 제갈량처럼 당신의 옆에서 늘 지혜가 함께 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체인지그라운드 #씽큐베이션 #벌거벗은통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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