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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Nov 20. 2015

너 생각이 나서

서로 좋은 기운을  주고받는 관계


아침 시간까지 빈둥거리다가 늦은 오후에야 일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때 마침 너무 좋아하는 Y 언니에게 걸려온 전화. 이제야 일을 하려고 앉았는데 어쩌지 하고 잠깐 고민했었다. 아주 잠깐.





하지만 고민도 잠깐,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반가움이 앞서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언니는 잘 지내냐며, J랑 같이 있는데 '너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단다. 누군가 내 생각을 해준다는 거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아주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디 있든 늘  마음속으로 서로에 대한 안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또는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Y언니와의 관계는 아주 어릴 적, 코흘리개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나이는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언니는 아주 씩씩했고 나보다 몇  살 쯤은 더 어른스러웠다. 집의 맏이라 언니가 없었던 나는 그런 언니가 좋아 어릴 때부터 참 많이 의지하고 지냈었다. 작은 거 하나라도 서로 나누는 걸 좋아했고, 혹 내가 잘못 한 일이 있으면 또 따끔하게 혼을 냈었던 그런 언니였다.


언니가 좋아해서 오랜 시간 힘들어 했던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분노했었고(지금은  그분, 언니의 자랑스런 남편이 되어 있다), 내게 처음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던 그 아이도 역시 그 언니가 소개해주었던 아이였다. 그렇게 서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던 언니가 결혼 후 이사를 가고 나 또한 이사를 떠나 와서 자연히 거리는 멀어졌지만, 늘 언니의 안부를 속으로 궁금해하고 있었다.






J 또한 서로 알고 지낸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친해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는 서로 비슷한 사람이란 걸 알고 난 후에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다.


사람은 말이지,
자기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는 법이야
같은 냄새가 나거든
-노지혜 <이 길 위에서 다시 널 만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 자리에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와 같은 사람은 딱 눈에 띄게 마련이다. 마치 중고등학생 때, '저 친구 내 친구구나!' 하며 서로 끼리끼리 모여 지내던 것 같이.





그러고 나서 참 자주 만났었다. 이야기도 자주 나누며 같이 웃고 같이 아파하던 참 예뻤던 시절. J는 나보다 나이는 한 살 어렸지만 서로 공감대가 비슷해서 꼭 친구인 것만 같았다. 사랑에 힘들었던 시간들을 지날 때, 우리가 서로 만났던 건 참 다행이었다.


그런 친구 같은 J가 먼저 결혼을 하고, 또 멀리 이사를 가는 바람에 우린 그렇게 멀리 떨어지게 됐다. 그런데 참 우연찮게도 Y언니와 J가 같은 마을에 살게 되어 같은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낯선 도시에서 외로웠을 텐데... 원래 Y언니와 J도 얼굴은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지라 낯선 곳에서 함께 지내면서 친해지게 되었나 보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런 저런 일상 얘기들, 얼마 전 비슷한 시기에 따로 다녀온 유럽 여행 이야기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Y 언니 - 얼른 놀러 와라.
나 - 자리 잡기 전까진 돈이 없어 안 돼.
Y 언니 - 계좌번호 불러. 차비 보내줄게.
J - 언니, 언니 오면 그럼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두 사람 다 얼른 놀러 오라며 성화인데, 그 만큼이나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공감돼서 그저 웃었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의 폭풍과도 같은 수다 후,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니 따뜻한 여운이  온몸을 감돌았다. 왠지 더 기운이 나고 일할 의욕도 생긴다.








노력 없는 관계란 지속될 수 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렇게 웃으며 전화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서로에게 그만큼 마음을 쓰고 있었다는 말일 지도 모르겠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을 지라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들만은 늘 간직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언제라도 이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테니.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게 좋은 기운이 되는 관계들이 있어 감사하며 지나는 하루다.


멀리 있어도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함께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서로에게 그만큼 마음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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