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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Nov 28. 2015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기

너무 익숙해서, 그 소중함을  잊고사는 것들에 대하여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식사 한 끼가 문득 생각나는 저녁이다. 막 지은 따끈따끈한 밥에 찌개 보글보글 끓여 갖가지 반찬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가족끼리 한 상에 둘러앉아 엄마가 해주는 밥을 함께 먹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살았던 때가 벌써 10여 년 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며 매일 보던 가족과 작별을 했다. 대학 근처의 하숙집에서의  첫날밤. 혼자인 게 무섭고 통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쉬이 잠들지 못했던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나의 첫 기억이다.

물론, 그 후로 집에 다시 내려가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그땐 동생들이 대학을 진학하며 떠났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함께 살지는 못했다.




떨어져 있어도 그럭저럭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온 우리 가족. 하지만 우리에게 삶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갔다.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울자 부모님은 또 다른 지역으로, 동생들은 각자의 직장과 학교로, 그리고 나는 고향에 남아 직장생활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원치 않게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

혼자 지내는 동안 나는 함께 곁에 있을 수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퇴근을 한 후 깜깜한 방에 혼자 들어오게 되는 밤이면, 작은 일상의 소음들이 그렇게나 그리울 수가 없었다. (TV 보는 소리,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들 같은)

나만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들, 털어놓고 싶은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으며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뎠다. 깜깜하고 출구 없는 터널과도 같았던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힘겹게 살아내는 그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작은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비록 대출을 받아 전세로 마련한 집이었지만, 그게 어디인가.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부모님은 부모님의 삶을 이어가시기 위해 계속해서 시골에서 지내시고,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동생들과 함께 살기 위해 그 집으로 이사를 갔다. 비록 가족 전부가 함께 살지는 못하지만 부모님은 그래도 감사하다며 웃으신다. 아마 앞으로도 각자의 인생길을 걸어가며 우린 또 헤어지겠지만 이렇게 같이 살 수 있는 지금이 참 감사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순간을 돌아본다.
그 순간이 지니는 의미를...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드라마 <연애시대> 중-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사무치도록 그리운 것일 수도 있다. 수고했다고 토닥이는 말들, 잘 지내냐며 물어오는 안부 인사, 친구와 함께하는 신나는 대화들, 그리고 엄마의 맛있는 한 끼 밥상 같은 것들.

예전에는 당연하게 누리고 살았던 일상들이었는데 떠나와보니 그게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는지 알 것 같다. 막상 그 소중함을 잊고 있다가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게 건강일 수도 있고,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지도 모른다. 공기처럼 햇살처럼, 늘 우리의 일상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밥 먹었냐는 작은 인사를
피곤하다는 말에 걱정하는 안부를
좋은 하루 보내라는 목소리를
보고 싶다는 그리움을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잘 자라는 고마운 마음을
내 생각이 났다며 건네는 작은 선물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자는 배려를
더 많이 사랑해 달라는 투정을
전화기가 뜨거울 때까지 통화하는
그 시간을
잡고 있는 손의 따뜻함을
내게 보여주는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사랑하는 지금 이 순간을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시작을
함께하는 모든 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사랑,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중-



늘 주위에 있어서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것들이 참 많다. 만약,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 중 하나가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해보는 하루를 보내보는 건 어떨지. 괜히 어색하고 민망할지라도 표현해보자. 애정 어린 마음 듬뿍 담아 표현하다 보면 이렇게 추운 겨울, 마음만은 가득 따스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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