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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농펑크 May 17. 2018

왜 하필 ‘농사’냐고?

도시청년 유기농 자급자족 프로젝트 유기농펑크

나는 대학에서 원예를 전공했다.

당시 수험생들처럼 점수에 맞춰 지원한 학교와 전공은 맞지만, 조금 이상한 이유로 원예과에 지원하게 되었다.

당시 원예과를 가라고 종용하고(나는 원래 문예창작과를 지망했다), 집에 전화까지 해 부모님을 설득한 담임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1학년때부터 3학년때까지 화분을 한번도 안 죽이고 방학때 집까지 가져가며 성실하게 키웠잖니. 넌 원예과가 어울려. 그리고 무엇보다 원예과는 이름이 예쁘잖아.


그렇게 나는 ‘이름이 예쁜’ 원예과에 입학했다. 


내가 생각한 원예학 © 게티이미지뱅크


원예가 인간이 식물을 인위적으로 키우는 행동을 모두 총칭한다는 것은 대학에 가서 알았다.

그리고 원예의 세계는 채소, 과수, 화훼는 물론 원예치료나 조경과 육종, 유전자공학까지 무궁무진하다는 것도 역시.

그러나 내가 식물을 잘 키우니 원예과가 어울린다는 담임의 말과는 달리, 대학에서 가르치는 ‘식물을 기르는 법’은 조금 이상했다. 


대학에서 배우는 원예학 © 게티이미지뱅크


약품 처리를 하면 씨앗이 발아가 된다든가, 식물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어떤 성분의 비료나 농약을 준다든가, 사계절 내내 온실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온도를 어떻게 맞추고 빛을 어떻게 조절해야 한다든가.

늘 식물을 키우며 살아온 나에게 학교에서 가르치는 식물 키우는 법은 온통 식물에게 밤과 낮, 사계절을 속이는 방법 뿐이었다. 


당시 교수들은 “너희들 선배 중 원예과 나오고 파종조차 못하는 애들이 많다”며 혀를 끌끌 찼지만, 대부분의 수업이 교재에 한문이 1/3은 차지한 70년대 일본 번역서로만 이루어졌다.

유기농업을 배워도 천적인 곤충은 알이나 번데기 형태로 어느 회사에서 판다는 것, 어떤 미생물이나 천연 비료를 사면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식물 다루는 법을 배우며 대학에서 배우는 수업과 나의 생태감수성이 충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꿈꾸는 농업 노동 © 영화사 수박


‘내가 만약 어느날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나는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농부의 주권과도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농부의 주권, 식량주권 같은 단어도 대학 밖에서 알게 되었다.

농부의 주권에는 경제력이나 씨앗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기계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작물을 잘 키워낼 수 있는 것도 농부의 주권이다. 산업농은 분명히 농부가 전문적으로 알고있는 생태적인 농업지식을 지우고 있었다. 

대학생활 4년은 내게 농산업에 대한 거부감만 심어줬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다짐했다. ‘절대 전공만은 살리지 않겠다’고.


그리고 농업과 전혀 무관한 직업으로 일하며 돈벌이를 했다.

직업생활을 하는동안 식물에 대한 글을 몇 차례 기고했다. SNS를 통해 내 글을 읽은 농부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야호! 드디어 나에게도 ‘아는 농부’가 생겼다. 

그들과의 만남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며, 찾아가며, 농산물을 주문해 먹으며 깜짝 놀랐다.

내게 음식이란 ‘소스의 맛’이었지만, 아무런 소스 없이도 충분히 맛있는 그들의 농산물에선 특유의 향과 맛이 있었다.

‘농부’를 다시 보게 된 계기였다. 그 뒤로 나는 농부를 ‘농사 전문가’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게 충격을 안겨준 농사의 전문가들은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달랐다.

여태껏 밥벌이를 하며 만난 전문가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존경심, 저 사람의 어떤 점을 닮고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나는 그들처럼 아주 멋진, 농사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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