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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Sep 13. 2023

열일곱. 마지막 날,

바티칸 / 한국귀국





"마지막 날까지 날씨가 이렇게 좋아도 되는건가"


유럽에서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모처럼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잘 수 있는 만큼 푸욱 잤다. 둘 다 일어난 시간은 아침 8시. "오늘은 바티칸만 가면 되니까 슬렁슬렁 움직이자"라고 말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배고파!"를 외쳤고, 눈도 제대로 못뜨는 동현이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2-3가지의 빵과 시리얼, 주스, 햄 등이 넉넉히 차려져 있었고, 디저트류도 눈길을 끌었다. 동현이는 역시나(?)한 접시 먹더니 배가 아프다며 먼저 숙소로 뛰어가버리고, 나는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조식을 즐겼다. 겸손하게(?) 두 접시만 먹었다. 냠냠냠.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


동현이는 일정이 너무 없는것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바티칸 시국"이 전부라고 하니, 거기 해봤자 얼마나 걸리겠냐고, 시간이 빌 테니까 우리 다른곳 다녀도 되겠다고 했다. 안될걸... 우리의 마지막날 일정은 이랬다.



아침 10시 30분 숙소에서 나옴(짐을 프론트에 맡겨둠)


아침 11시 바티칸 시국 도착. 기다림


오후 12시 바티칸 시국 입성. 천지창조, 최후의 만찬, 라오콘 상 구경.


오후  3시 바티칸 시국 나옴. 숙소로 돌아 감


오후  4시 식사 후 '테르미니역'에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타고 공항으로 감


오후  6시 공항 도착 예정.



여기서 잠깐. 바티칸 시국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평균 2시간의 긴 줄을 서야 한다. 그나마 30분~1시간 기다리는 때는 입장시간 9시 전후와 점심시간 전후인 11시부터 1시. 바티칸을 천천히 둘러 보실 분이라면 아침 8시 이전에 바티칸에 도착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것이 좋다. 나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 라오콘 상이 보고 싶어서 간 것이라... 점심시간 즈음에 가서 줄을 섰다. 이것 세 작품 보려고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자.. 동현이는  눈물을 흘렸다 ㅜ_ㅜ누나 밉다고......






"누나야, 바티칸이 뭐하는 곳인데?"


전 세계 사람들을 이곳에서 다 보는 것 같은 바티칸 입구. 긴 줄을 서면서 동현이가 투덜거린다. 나도 잘 모른다고 하니까 "그럼 우리는 여기서 뭐하는거냐"고 되묻는다. 미안하다 동생아... 누나는 최후의 만찬을 꼭 보고싶구나...


사실 동현이에게 말하지 못한 한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천주교'에 관심이 많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성당이 있는데, 이따금 속이 답답하고 정리가 필요할 때 그곳으로 가서 마리아상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으면 굉장히 마음이 편해진다. '그냥 편해지는 곳=성당'이기에, 그래서 바티칸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바티칸에 가서 여행의 마지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그리고 이남매의 앞날이 번창하도록 기도도 하고 싶었고.







"Are you Chinese? Japanese?"


줄을 서고 있는데, 거의 5분 간격으로 종이를 잔뜩 든 사람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자신들을 따라오면, 저렴한 가격에 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고, 티켓도 사주고, 안내도 해준다고 한다. 10팀 중 1,2팀이 이들을 따라가던데, 뭔가 사기같기도 하고... 티켓가격이 정가보다 너무 저렴했기 때문에 영 신뢰도 안가고... 안내를 받는다고 해도 한국어가 없어서 알아듣지도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우리 앞팀에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 '왜 이렇게 저렴하냐', '어떤 안내를 해주느냐', '아무 조건없이 바로 줄을 서지 않고 갈 수 있느냐' 등을 면밀히 묻고, '그럼 내가 대표로 가보겠다'고 그들을 따라나서다가 10여분 만에 쏼라쏼라 하면서 돌아오길래 "아 사기구나"싶어서, 그 다음부터는 "Korean, No English"라고 거절했다.




▶높고 높은 바티칸 성벽. 길고 긴 바티칸 줄. 놀랍게도... 우리가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 간거라고 한다...


▶▶점점 썩어들어가는 동현이의 표정.
 





▶딱 한시간 만에 보인 바티칸 입구. 저 문 왼쪽으로 입장한다. 하아... 길고 길다 정말-




"이게 무슨 나라야?"


동현이에게 "바티칸은 정식 나라야"라고 하니 이런 작은곳이 무슨 나라냐고 반문한다. 사실 나도 '이곳이 나라라니'의문이 들었다. 우선 너무 작고, 작고... 하하.  







"오, 라오콘 상이다!!!"


바티칸 시국에 들어오면서 계속 심드렁했던 동현이가 갑자기 환호성을 지른다. 숱한 미술책에서 봤던 "라오콘상". 직접 보니 정교하기도 한데다가 뭐라 말할 수 없는... 굳이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로 하자만 "포스가 남다르다"고나 할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여타 대영박물관이나 루부르 등지와는 다른 분위기와 사람들의 태도. 앞서 말한 두 곳에는 사람들이 연신 셔터를 움직이며 "인증샷"을 남기기 바빴다면, 바티칸 시국에서는 사람들이 작품 앞을 이리저리 돌면서 구경하기에 바빴다. 인증샷을 남기기 보다는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작품을 담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바티칸 시국"스러웠다.  




▶엄청 유명한 "라오콘상" 사람들이 모두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은 사진촬영이 불가합니다"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은 한 공간에 있다. 이곳은 사진기 또는 핸드폰을 들기만 해도 곳곳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엄청난 제재를 받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사진촬영이 가능했던 곳인데, 지금은 불가하다고. 관람시간도 15분으로 제한되어 있다. 입구로 들어가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를 보기 위해서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있어서 사람들의 파도를 따라 저절로 출구로 나간다. 나는 처음에 사람들의 파도에 휩쓸려 간다고 바로 입구 옆에 있는 <천지창조>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5분 정도 돌아서.... 그 곳으로 다시 갔다. 하하하ㅜ


방 가장자리에는 각국의 관광객들이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안내를 듣고 있었다. 우리나라 '유로자전거투어'도 있었다. 여기서 신기했던 일. 유로자전거투어 사람들이 서있는데, 거기서 굉장히 낯익은 사람이 있는것이다. 대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경량언니를 만난것! 졸업 후 약 5년 간 못봤었는데, 이 머나먼 타국에서 만나다니! 둘 다 어찌나 놀랐던지, 인연이란 정말정말 신기하다. (언니, 조만간 뵈어요 연락드릴게요 ^^)/








"누나, 배고파"


아침도 먹는 둥 마는둥, 점심은 패스, 바티칸 시국을 나오니 오후 3시가 훌쩍! 우리는 숙소로 가서 짐을 찾고, 다시 역으로 가야헸기에 시간이 조금 촉박했다. 다행히 버스와 지하철이 바로바로 와서, 3시 40분에 테르미니역에 도착했다. 4시 40분 기차를 예약하고, 역 앞 파스타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탈리에서 먹는 마지막 파스타. 나는 남김없이 다 먹었고, 동현이는 때가 지나서 먹는거라 그런지 반 정도 밖에 못먹었다. "비행기에서 비빔밥 먹어야지"라면서.





"중국사람들 엄청 많네"


밤 9시 45분 비행기. 사실 7시 45분 전까지 도착해도 되었지만, 우리는 택스리펀을 해야 했기에 더욱 서둘렀다. 택스리펀을 받는데 "중국인 러쉬"로 최장 한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경우도 있다는 말에 넉넉잡아서 일찍 간 것이었다. 30여분을 기다렸고... 우리는 약간의 택스리펀을 받았다. 중국인들은 한 사람 당 한뭉치의 영수증을 들고 있어서;;; 무서운 사람들... 이와중에 동현이에게 한 중국인이 계속 뭐라뭐라 물어보길래 뭔가했더니, 동현이한테 '택스리펀 받는 법'을 안내해주고 있더라는;; 알고 있다고 무시하니 시끄럽게 뭐라 떠들고 동현이한테 계속 추근거리길래 결국 다른 줄을 섰다.





▶우리가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캐리어 두개가 전부였는데... 집으로 갈 때는 캐리어 두개에 봉투 하나, 가방 둘...





▶최후의 만찬. 피자 세조각. 우리는 숨도 안쉬고 먹었다. 피자는 역시 이태리 피자여!






"어르신이 참 많다!"


대한항공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두 팀씩 한국인이 오기 시작했다. 우리 나이 또래는 한 두 명 정도 뿐이고, 나의 아버지 연배 이상의 어르신들이 수두룩하다. 알고보니 한국의 교회, 성당에서 단체로 바티칸 투어 등을 온 것. 문제는... 이들이 모두 비행기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시키고, 고추장도 몇 개 씩 더 달라고 하면서 주머니며 가방에 챙기고 해버려서... 나와 동현이는 비빔밥과 고추장을 못먹었다 ㅜ하다못해 고추장이라도 먹었으면 좀 나았을 건데... 본인이 당장 먹을것도 아니면서 몇 개 씩 챙기면서 '너는 몇 개 들고가냐', '나는 몇 개 가져간다'고 떠드는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 거기다 복도며 화장실이며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누워있고, 화장실을 이용하려는데 비키지도 않고... 외국인도 많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표정이 다들 좋지 않아서 내가 민망했다...





▶집에가는 비행기표. 하나 아쉬워라-


"푹 자고 일어나면 도착해 있을것이야"


13시간의 비행. 불편한 좌석. 속은 느끼한데 속풀이 해줄 것은 없고. 동현이와 나는 번갈아가며 자고 깨고를 반복했다.



"너 한국 도착하면 뭐 먹고 싶냐?"


"무조건 국물있고, 완전 얼큰한거"


"우리 그럼 순대곱창전골 먹으러 갈까?"


"삼겹살에 매운 된장찌개도 먹고싶다"


"좋아좋아 그거 다 먹자"



우리는 그렇게 한국으로 향했다.




-이남매 유럽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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