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아니었던, 그런데 그것도 아닌 이야기
*본 이야기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공포소설"입니다. 언급된 사건이나 장소 등은 허구임을 밝힙니다.
20년 전 일이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어머니는 가구와 가전을 모두 새것으로 바꾸고 들어가겠다며 입주 세달 전부터 주말마다 가구점과 가전제품가게를 돌아다니셨다. 냉장고, tv, 세탁기를 산 후 장롱과 침대,쇼파까지 모두 보았는데, 눈에 꼭 차는 식탁이 없었다. 집의 구조상 특정 사이즈에 맞춰야했고, 어머니는 하나를 사도 튼튼하고 오래 쓸 만한것으로 사려니 좋은것은 비싸고, 좀 저렴한 것은 사이즈가 안맞아서 가장 발품을 많이 팔았다. 시간은 어느덧 입주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전에 장롱을 산 가구점에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은 중고 가구도 저렴하게 파셨는데, 고급 원목식탁이 매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원목으로 만든 그 식탁은 유리까지 새것이었고, 의자까지 모두 들어왔는데 사이즈와 식탁의 모양새가 딱 어머니가 원하시는 스타일이라 전화를 드렸단다. 저녁에 가서 식탁을 보니 반질거리는 윤택과 흠집 하나 없는 외형에 사이즈도 딱 우리집에 맞춤이었다. 심지어 중고라면서 일반 원목식탁의 절반도 채 안되는 가격에 의자 네개까지 함께 가져가라고 했다. 어머니는 이게 무슨 횡재냐, 우리집이 터가 좋은가보다, 이런 좋은 일이 생기네라며 좋아하셨다. 사장님과 어머니가 계산과 배송일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가구점 사모님이 준 음료를 마시며 식탁을 구경했다. 사모님은 "학생이 봐도 이거 너무 멀쩡하고 예쁘지?"운을 떼셨다. 나는 "네"하면서 "사모님, 근데 이거 누가쓰던건지도 알아요?"라고 물었다. 사모님은 "음"하더니 사장님이 가져온거니 한번 물어보라고 하셨다. 이후 사장님께 다시 물으니 사장님은 "저기 고급 주택가 있죠? 거기에서 가져왔어요. 집주인이 외국에 이사를 가면서 가구랑 가전을 다 판다고 가져왔지. 급하게 비워야한대서 싸게 내놓아서 나도 싸게 파는거에요."라고 했다.
그렇게 식탁을 잘 쓰다가 3년 전쯤 새 식탁을 구입하면서 그 식탁을 처분하게 되었다. 때마침 내가 큰집에 이사를 가게 되면서 식탁이 필요했기에 원목식탁을 우리집에 가져오게 되었다. 20년 가까이 썼지만 약간의 흠과 나사 풀림만 있을뿐 사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원목이라 이사갈 집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릴것 같았다.
이삿날. 식탁도 함께 들여왔다. 그날 밤. 식탁의 나사를 새로 조이려고 식탁 밑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손을 보는데 상판 아래쪽에 좀 이상한 것을 봤다. 아주 얇은 천이 덮혀있었는데 한쪽 구석이 유달리 볼록했다. 살짝 만져보니 바스락 소리가 났다. 살짝 칼로 그어서 꺼내보니 곱게 접은 종이었다. 뭔가 싶어 종이를 펴보고 소름이 쫙 끼쳤다.
아주 낡은 부적이 있었다.
순간 가구점 사장님의 말이 생각났다. ...갑작스러운 이사... 부적은 함부로 떼는 것이 아니래서 다시 넣어뒀다. 그렇게 찝찝함을 가지고 잠이 들었다. 다행히 이후 별 일은 없었다.
그 식탁은 우리집 안방에서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내가 침대나 바닥(아이는 바닥에 잤다)에 누우면 발끝 너머로 식탁 아래가 보였다. 나는 웬만하면 보지 않으려고 늘 문을 닫고 잤다. 그해 여름. 안방에 에어컨이 없어서 문을 열고 자야했다. 종이 사건도 많이 지났고, 별 일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아이 육아에 온 정신이 팔렸을 때라 식탁생각은 안하고 산지 오래였다.
하루는 아이와 (당시 큰아이, 3살, 막 말이 터서 시끄러울 때였다) 본가에 가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아이가 나의 어머니와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할머니(나의 어머니), 할머니집 식탁 밑에는 아무것도 없네?"라고 했다. 누운자리가 새로 산 식탁 옆이었다. 어머니는 "식탁 밑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지~", "아니야, 우리 집 식탁 밑에는 있어" 아이가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나는 "00아, 우리집 식탁에 뭐가있어? 엄마가 청소 안해서 쓰레기랑 먼지있는거 말하는거야?"라고 웃었다.
아이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니, 쪼글쪼글 할머니 있잖아!
그 순간. 어머니와 나는 얼어붙었다. 00이는 우리집 식탁 밑에 할머니가 있는데, 할머니가 늘 나와 00이를 보면서 웃고있다고 했다. 그날 밤 어머니와 나는 잠을 자는둥 마는둥 밤을 거의 샜다.
다음날, 아이에게 어젯밤 말에 대해 다시 물어봤다.
나: "00아, 우리집 식탁에 할머니가 언제부터 있었어?"
아이: "응 되게 오래되었어. 근데 맨날보이지는 않고 할머니는 한번씩 보여."
나: "그래? 할머니가 어떻게 생겼어?"
아이: "응 엄청 쪼글쪼글하고, 근데 항상 웃고있어. 00이 보면서 맨날 웃어줘"
나: "그렇구나... 할머니가 어떻게 하고 계셔?"
그런데 나의 물음에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이: "응? 할머니는 그냥 있는데?"
나: "아, 그러니까 할머니가 식탁밑에 누워계셔? 아니면 쪼그려서 있어?"
아이가 잉?하더니 말했다.
아, 할머니가 머리밖에 없어. 머리만 동글동글 굴러다녀.
... 식탁 밑에 머리만 있는 할머니... 그리고 그 종이... 정작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상상이 되었다. 불행중 다행인건 아이가 겁내지 않았다는것. 할머니 표정이 늘 웃고 계셨다는 것. 어떻게 해야하나 한참 고민하다 어머니께 식탁 밑 종이와 아이의 이야길 말씀드리니 얼마전 절에서 사왔다며 오방끈으로 엮은 장명루를 주셨다. 이거라도 식탁 밑에 걸어두라면서 할머니 표정이 나쁘지 않으셨으면 해코지는 하지 않을거지만, 00이가 자꾸 보인다니 걱정된다하셨다. 혹시나 귀신들이 00이를 예뻐하면 큰일이라면서, 가까운 시일내에 식탁을 처분하거나 다른 수를 써야겠다고 했다.
아이아빠에게 식탁을 바꾸자고 하니 멀쩡한것을 왜 버리냐고 했다. 아이아빠는 기독교신자라 아이의 이야기도 믿을것 같지 않았고, 사실 식탁을 다시 사자니 그것도 돈이라 부담되었다. 때마침 새집으로 이사갈 날도 1주일 정도 남아서 그냥 그 식탁을 뒀다가 나중에 사기로 했다. 귀신보다 돈이 더 무서웠다.
찜찜함을 안고 그 식탁도 가지고 새 집으로 이사를 왔다. 식탁을 닦고 상판 아래에 장명루를 붙이면서 나는 끊임없이 "할머니, 이제 좋은곳으로 가세요. 저희가 이 식탁 잘 쓸게요."
이후 아이가 식탁 아래서 할머니 머리를 봤다는 이야긴 하지 않았다. 식탁도 아직 잘 쓰고 있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튼튼하고 손때가 타서 우직함까지 느껴진다. 식탁 아래 바닥을 닦을때마다 혹시나 할머니가 보이면 어떻게하나 싶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이제 할머니께서 좋은 곳으로 가셨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어제는 전에 살던 집 근처에 볼일이 있어 다녀왔다. 약속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동네 산책을 하며 시간을 때우다 이전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 소장님을 만났다. 나에게 소장님이 "어휴, 사는 동안 별고 없었죠? 더 좋은 곳에 이사가서 너무 다행이야. 에휴 그 집에 살고 나간 사람들이 다들..."그러더니 아차 싶었는지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어차피 나는 여기 살지도 않고, 사는 동안 별고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 소장님은 어쩔수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 집에 이사간 사람들마다 자꾸 이상한게 보인다, 나온다, 그러더라고. 나는 내가 귀신이나 그런걸 안믿어서 괜히 세입자들이 트집잡는다 생각했지. 사실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있어?
근데 나간 사람들마다 자꾸 이상한게 보인다는거야. 사실 거기 원래 집주인 할머니가 오래 살았는데, 자식놈이라곤 완전 ㅆ놈의 자식이라 돈달라고 그러고, 집 팔라 그러고 잊을만하면 와서 난리피고 그랬어. 으이고, 그러다 결국 그놈이 칼들고 협박해서 경찰이 왔었어. 근데 그 다음날부터 조용하더라고. 그 윗집에 친한 언니가 살거든. 근데 그 할머니가 우유인가 선식인가 받아먹었는데 그게 몇십개씩 쌓여있어서 배달원이 신고를 했다지 뭐야. 그래서 집에 갔더니 에휴... 할머니가 목을......그 시신이 너무 부패되가지고 냄새도 심하고 난리였어. 그게 벌써 10년 전이거든.
자식놈이 칼들고 돈달라 설치고, 할머니도 평소 몸도 안좋고 혼자 사시니 나쁜생각을 하신거지... 근데 시신을 옮기려고 내리다가.... 아유 역겨워... 시신을 너무 늦게 발견해서 목을 맨 부분만 똑 떨어졌대. 뒤늦게 수습해서 처리는 했지만.... 그러고 그 자식놈이 와서 그 집에서 살다가 돈이 진짜 없었는지, 뭐에 데였는지 시세에 반값도 채 안받고 그 집 팔고 이사를 가버렸어.
이후에 집주인이 좀 살다가 그 집주인이 외국가게 되면서 우리집에 매물을 내놓고 간거야. 이후에 세입자가 네번인가 바뀌고 새댁이 다섯번째였는데, 이상하게 그 집에서 나오는 사람마다 "기간 다 안채워도 된다, 돈도 바로 안줘도 되니까 먼저 집을 비우겠다"고 하더라고. 근데 웃긴건 보통 그러면 집주인이 신경쓰여야는데 집주인이 '네'하고 말더라고. 희한하다 싶어서 새댁 전에 세입자 나가고 나서 집주인한테 물어봤지. 혹시 저 집에서 무슨일 있었냐고. 그랬더니 집주인이 그러더라고. 자기 아들이 그 집에 살면서 자꾸 할머니가 보인다고. 그 할머니가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집안 이곳저곳 살펴본다고 말이야. 그 집주인은 타지에서 와서 그 할머니 일을 모르거든. 나도 윗집 언니한테 들어서 알지 이동네에서도 이거 아는 사람 몇 없어. 어휴 내가 아주 소름이 돋더라고.
새댁이 처음이야. 기간 다 채우고 날짜 다 살고 간거. 새댁은...뭐 ...안봤지? 그리고 이 이야긴 그냥 듣고 흘려줘."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식탁에 있던 부적, 그리고 할머니 이야기, 방금 들은 이야기까지. 그랬더니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식탁 들고 가려는데 그때 사장이 그러더라고. 사람 손때 묻은 가구에는, 특히 나무로 된 거에는 저마다 귀신이 붙기 마련이라서 자기는 중고가구 보낼때는 깨끗하게 닦고 좋은 기운 담은 부적이나 절에서 산 용품 같은걸 보낸다더라고. 우리는 그런거 안믿는다 했더니, 그래도 안하는것보다 낫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그 말을 더하더라고."
사모님은 새 집에 가시니 괜찮긴 할건데요,
가구에 깃든 '것'과 살던 집이 안맡는 경우도 있어요.
특히 살던 집에 '무언가'(터주)와 그 가구에 '그것'이 안맞으면
사람한테 해코지를 해서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중고가구, 특히 나무로 된거는 출처를 모르는거 함부로 들이는거 아니라네요. 저희도 영 찝찝해서 가구 들여올때 꼭 어디서 가져온건지, 왜 중고로 내놨는지 꼭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그 할머니 머리 귀신은 식탁에 들여온것이 아니고 그 집에 원래 있던것이었는데- 식탁이 놓인 곳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곳이었고, 식탁에 붙은 부적 때문에 그곳에 "갇혀"서 그 안에서만 있던 것이었다-고 결론을 냈다. 식탁때문이 아니고 식탁덕분이었다.
어쩐지, 새 집에 이사 오고 나선 아이가 할머니를 봤다는 이야길 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집에 살면서 생전 눌리지 않던 가위도 눌리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늘 집이 습하고 집에 애정이 들지 않았던게 떠올랐다. 당시엔 육아때문에 심신이 지쳐 그러겠거니...했는데 그 집의 속 이야길 들으니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다.
집에와서 식탁에게 '널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식탁 아래 부적도 떼었다. 함부러 버리긴 뭐해서 일단 싱크대 선반위에 올려뒀다. 그날 저녁 아이와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아!"하고 방문을 닫고 들어왔다.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아이가 말했다.
아, 엄마. 예전에 본 할머니 식탁 밑에서 봤는데 여기 들어올것 같아서 문닫았어.
나는 바로 부적을 붙였다. 아주 꼭꼭 눌러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