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단편)여우골 이야기

그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

by 리다

*본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저에게 해주신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앞에 공포 썸네일 있습니다.


얼마전 <이야기 속으로> 유튜브를 보다 익숙한 지명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썸네일이 공포스러워서... 사진 하단 링크를 누르면 관련 내용으로 넘어갑니다.

*출처: <이야기 속으로> 유튜브

https://youtu.be/m6_eE2r3opI


경주시 현곡면 귀골짜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에 지도에서 그 곳을 찾은 나는 깜짝놀랐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아버지께서 '할아버지가 여우아가씨를 본 곳'이라고 한 그 골짜기였다. 정확히 저 위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두분 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아버지는 고경, 어머니는 단포 출신이다. 할머니댁으로 가는길 중 가장 빠른 길은 경주시 현곡면으로 들어가서 산을 하나 넘어 가는 것인데, 길이 굉장히 구불구불하고 중간 무덤과 폐교와 폐가, 저수지, 길 끝엔 호국원까지 있어서 밤에 그곳을 지나면 참 으스스 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고, 오가는 차도 많지 않아서 해가 질 즈음이나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좀 멀어도 영천 시내를 지나 멀리 돌아갔다.


2009년 7월 중순에 있었던 일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제사가 있어 저녁 늦게 할머니댁에 갔다. 제사를 마치고나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시간은 밤 11시. 우리가족은 항상 제사를 마치면 뒷정리를 하고 할머니댁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새벽 동이 트면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내일 아침 일찍 회사 출근을 해야한다면서 꼭 지금 집에 가야한다고 집에 갈 채비를 하셨다. 어머니는 당황하시며 날도 궃은데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만류하셨지만, 아버지는 그날따라 아주 완강하셨다. 평소 어머니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던 분이라 나도 좀 놀랐다. 두 분의 언성이 높아졌고, 할머니는 "느그 아빠가 뭐에 씌있는갑다"면서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면서 "이거 쥐고 가라"시며 나에게 몰래 소금 한 줌을 비닐에 싸서 주머니에 넣어주셨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말을 덧붙이셨다. "아무래도 늬 아빠가 뭐에 씌인거같은데, 보니까 그냥 느그 집에 가야하겠다. 아이고 이래서 비오는날에는 제사 지내는게 아닌데 쯧쯧. 00이(내 이름) 니는 이거 주머니에 꼭 넣고 가고 느그 엄마한테 말하지 말고 집에가서 아무도 안보는데서 버리래이. 집에 가는 동안에는 그냥 자뿌는게 제일 좋은데, 보니까 잠은 못자겠다.

뭐가 보이거나 이상한거 들리면 대꾸하지 말고."

평소 우리 할머니는 귀신은 커녕 미신도 믿지 않는 분이셔서 좀 의아했다. 내가 토요 미스테리 극장이나 이야기속으로, 전설의 고향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그런게 다 어디있노"라고 호통을 치셨는데, 소금을 쥐어주며 뭔가 꺼림칙해하는 할머니의 태도가 좀 이상했지만, 할머니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큰일날것 같아 알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아이고 시끄럽게 하지말고 빨리 다들 가라"고 재촉하셨고, 우리는 차에 올랐다. 다행히 우리가 출발하자 굵은 빗줄기는 가느다란 부슬비로 바뀌었지만, 오히려 더 음산한 분위기가 되어 더 무서웠다. 어머니는 "비도 오니 돌아서 갑시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빨리 가야한다"면서 늘 가던 산길쪽으로 차를 돌리셨다. 남동생과 나는 몹시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창밖만 바라보시고, 아버지는 앞만 보고 운전을 하셨다. 그렇게 한참 운전을 하다 황수탕을 지났고, 산꼭대기에서 슬슬 내려오던 중 아버지께서 입을 떼셨다.


"너희 안자면 아빠가 재미난 이야기 해줄까?"


아버지는 평소에도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던터라 우리는 좋다고 했다. 아버지는 "흠흠"하더니 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너희 지금 지나는 여기가 옛날에는 '여우골'이라고 불리던 데거든. 아빠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우가 엄청 많았대. 아빠도 여우를 본 적은 없는데, 이거는 너희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야."


할아버지께서 산 아래 현곡에 볼일을 보고 여우골을 넘어 집에 오고 계셨다. 해가 지기까진 시간이 좀 있어서 슬렁슬렁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산중턱을 넘어 여우골쯤 다다르자 해가 반쯤 산너머로 넘어갔다. 아이고 내가 너무 슬슬 왔네"싶어 급히 속도를 내어 가는데 저 앞에 희끄무리한 것이 흔들거렸다. 가만보니 예쁘장한 아가씨가 보따리를 들고 손을 흔들며 "저기요"하고 부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가씨에게 무슨일이냐 물었고, 아가씨는 "할아버지 어디가세요? 저 가는데까지만 태워주세요" 하고 생긋 웃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대답을 하려다가 뭔가 이상한것을 느꼈다. 이 시간에, 아가씨 혼자서 산에 있는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보통 "태워달라"고 하는거면 본인이 "어디어디까지 가는데 어디가시냐"라던가 "제가 어디 가는데 가는데까지만 태워주시면 좋겠다"고 말할텐데, 반대로 할아버지의 행선지만 묻는것에서 '쎄-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이거 혹시 여우 아닌가?'하면서 홀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셨다. 아가씨가 "할아버지 잠깐만요"라고 자전거쪽으로 손을 뻗었지만, 다행히 간발의 차로 잡히지 않았다. 뒤를 돌아봤다간 잡힐것 같아서 있는힘껏 페달을 밟고 앞만 보고 한참 가다가 뒤통수에서 '슉슉'소리가 나서 자전거손잡이 옆에 달린 거울(차로 치면 백미러 같은 기능을 하려고 달아놓으셨다)로 보고 억 하고 놀랐다.


아가씨가 자전거 뒤로 바짝 쫒아오고 있었다. 얼굴은 생글생글 웃고있었지만 어딘가 기괴한 웃음이었다. 무엇보다 '뛴다'보단 '미끄러지듯' 할아버지를 쫒는 형상에 '이거는 사람이 진짜 아니구나'정신이 퍼뜩 들어 더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한참을 가다 "할아버지이이이이이히히히 다잡아간다희희희" 아가씨의 소리가 귓가에 가까워졌고, 그 순간 자전거 바퀴에 뭔가 감기는 것 같았다. "이렇게 끝인가"싶었는데 정말 다행히 저 앞에 불켜진 집이 보였고, 할아버지는 젖먹던 힘을 짜내 그집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저 멀리 "아깝다, 하지만 괜찮아 히히히"하는 소리가 아득히 들렸고, 할아버지의 소리에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뛰쳐나왔다. 처음보는 사람이 대뜸 들어와서 사지를 벌벌 떨고 있으면 궁금해할법도 한데, 집주인은 흔히 겪은 일이라는듯 할아버지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물한잔을 주며 다친곳이 없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면서 방금 있었던 일을 말했는데, 집주인은 '에휴'하고 한숨을 쉬셨다.


"나도 우리 어른한테 들은 이야긴데, 저기 여우골에 아주 오래전부터 살던 여우가 그래 많답니다. 근데 그 중에 좀 못된 여우가 사람들 홀리가지고 해코지 하려고 아가씨로 변해서 마을에 나오거나 한다더라고요. 우리 어른 말로는 그런 여우가 한번 나와서 자기가 찝은 사람이 안홀리거나 못잡으면 앙심을 품고 더 큰 사람을 데리고 간다고 골치아프다고 하더군요. 아이고, 여우에게 안홀린건 천만다행인데 혹시나 우리 어른이 말한거처럼 더 큰 사고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네요."


여우가 사람을 홀린다, 사람으로 둔갑한다는 이 믿지 못할 이야기도 황당했지만, 집주인의 말에 장난기가 하나도 없었고,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방금 겪은 일이니 허투로 들을 수 없었다. 식은땀을 닦고 나서 집으로 갈 채비를 하니 집주인이 잠시 기다리라면서 뭔가를 들고 나왔다.

"이거 소금인데, 주머니에 한 줌 넣고 가세요.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거나 어디 홀린거 같으면 소금 한 줌을 넣고 가면 괜찮다더라고요. 대신에 집에 갈때까지 소금이 여기 있다고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조심히 가세요."


할아버지는 이것도 꿈인가...싶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부지런히 길을 가는데 저 앞에 아까 그 아가씨가 또 있었다. 할아버지는 모른척하고 지나갔다. 아가씨는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씹어대듯 한마디 했다.


"괜찮아. 더 많이 데려가지뭐 히히히"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그날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에게 간밤의 이야길 하면서 주머니 속에 소금을 털어버리라고 하셨는데, 할머니가 주머니를 열어보니 소금이 없었단다. 그 집주인도 여우 아니냐고 할머니는 웃으셨지만, 할아버지가 정색하며 "절대 아니야"라고 하셔서 더 말씀을 안하셨단다.


이야기를 마치자 빗줄기는 거의 잦아들었고, 산아래에 다다랐다. 어머니는 계속 차창밖만 보셨고 우리는 둘다 '우왕 신기해'하고 아버지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버지 말로는 할아버지께서 그 여우 아가씨의 말이 너무 찝찝하다고, 언제한번 줄초상 나는거 아니냐고 하셨지만 설마 뭔일있겠냐고 하셨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쪽을 보시며 "이상한 이야기 그만하고 집에 갑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한 이야기는 놀라웠다.

아버지 이야길 듣고 있는데 창문에서 소리가 들리더란다.


"끼이익 스윽 끼이익"


마치 창문을 누가 쓰다듬는것 같은 소리에 소름이 돋아서 계속 창밖으로 눈이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밖을 봤다면서 '어휴 빗소리겠지'하고 말았다.


그런데 산 아래 다 내려오자 아버지가 "어? 우리 왜 안자고 집에가지?"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황당하다는듯 "그렇게 집에 가야된다고 우기더니 무슨소리야?"라고 하며 정신차리라고 하셨다.

우리는 웃으며 "아빠 장난치지마"라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고개를 흔들더니 "내가 집에 가자고 했다고?"하고 얼떨떨해하셨다. 아버지는 엄마가 그냥 집에가서 자고싶으니 빨리가자고 재촉했고, 시댁에서 자는게 불편하고 피곤할수있겠다 싶어서 차를 몰로 나왔다는 것이다. 나와 동생, 어머니는 혼자 꿈꿨냐면서 아까의 실랑이를 말했다. 아버지는 '엥?'하더니 '다들 진짜 여우한테 홀렸나보다'고 웃었다. 좀 섬뜩했지만 별 희한한 일이 다 있구나 싶어 모두 그렇게 넘어갔다.


아버지께서 여우골 이야기를 꺼내신건 그 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해 겨울. 할아버지가 여우에게 홀렸던 여우골 어귀에서 버스추락사고가 나서 18명 사망, 13명 부상이라는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다. tv에서 익숙한 지명이 나오네 싶어 봤던 우리가족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곳은 몇달전 비오던 그날, 아버지께서 여우골 이야길 했던 그 골짜기 인근이었고, 어머니께서 '끼이익'하는 소리를 들었던 곳이었다.

그 후 그곳을 할머니집에 오갈때 계속 지나갔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여우골 이야길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빠 여기 여우골이었다며?"라고 물이면 "그래? 아 들은거 같아"라고 본인이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것같이 대답하셨다.


아차, 그날 집에 와서 주머니를 뒤져 할머니가 주신 소금을 꺼내려는데 주머니 곳곳을 뒤져도 소금이 담긴 봉지는 커녕 (찻숟가락 한두스푼으로 작았음) 소금가루도 없었다. 이후 차안과 차에서 집에오는 길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 속으로>를 보고 나서야, 그 일대 주민들은 "여우골"이 아니라 "귀 골짜기"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우건 귀신이건, 그날 우리아버지는 그 어떤것에 홀렸던건 분명한것같다. <끝>


keyword
이전 04화(공포실화)나는 물귀신을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