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아버지가 본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댁 근처엔 작은 산이 있었다. 아주 어릴때 우리 할머니댁은 푸세식 화장실에 구들장이 있던 옛날집이었는데, 추석전날 가면 큰아버지와 큰오빠, 아빠가 산에 가서 불쏘시개로 쓸 잔가지와 나뭇잎 등을 주으로 다녀오셨다. 사촌언니, 오빠, 동생과 재미있게 노느라 늘 '다녀오세요'하고 인사만 했었지 따라가본적은 없었다. 언젠가 내가 너무 궁금해서 "나도 갈래"라고 신발을 신는데 부엌에서 제기를 닦던 할머니가 뛰어나오시면서 "어린아이는 저 산에 가면 안된다"면서 나를 붙잡으셨다. 산이 험하고 깊어서 아이가 가면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 산엔 아이들 잡아먹는 문둥이가 산다이"라면서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그렇게까지 가지말라니 더 궁금하긴 했지만 혼자 갈 엄두는 못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그 동네에 영 갈일이 없었는데, 몇해전 여름 같은 지역 사는 이모네 가는 길에 그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날을 똑똑하게 기억하는 건, 비가 너무너무 많이 온 날 차를 타고 어딜 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동이로 퍼붓는가 싶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에 차 안 공기는 무척이나 꾸덕했고, 아버지는 빗길에 혹여 사고가 날까 싶어 갓길로 조심조심 운전을 하고, 어머니는 잔뜩 긴장한채 바깥 창문을 바라보셨다. 한참을 가다 아버지에게 익숙한 할머니집 가는 길로 접어들었고, 비도 좀 사그라들어서인지 아버지는 "어휴 이제 좀 살겠네" 긴 한숨을 쉬셨다.
그러다 어머니가 "어머, 저 집이 아직 있네?" 하고 창문 너머에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그 산은 앞서 말한 '할머니가 가지 말라'고 한 그곳이었다. 자세히보니 산 중턱에 집 한채가 있었다. "와아 진짜네..."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홀린듯이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때 저 멀리서 할머니집 근처에 사는 정식이 아저씨가 우리쪽으로 오는게 보였다. 큰아버지 친구인 정식이 아저씨는 우리가 반가우셨는지 폴짝 뛰어오시며 손을 흔드셨다.
그걸 본 아버지는 황급히 차에 올라 출발했다. 정식이 아저씨는 할머니댁에 올때마다 뵈어서 우리도 잘 알고 있었고, 아버지와도 막역한 사이셔서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터라,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가 아버지가 입을 열였다.
느그 ,저 집이 궁금하나?
우리는 심심하던 차에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열살때인가, 위에 첫째형 둘째형이랑(아버지는 4남 1녀 막내셨다)저 집에 간적이 있어. 둘째형 친구가 그 집에 귀신이 나온다고 보러가자더라고. 나는 무서워서 안간다했는데 형들이 겁쟁이라 놀리는거야. 그와중에 형들도 겁은 좀 났는지 동네에 형 친구들 두명이랑 더해서 다섯명이 그 집에 가기로 했지. 그중에 정식이 형도 있었어. "내가 먼저 가서 너네 기다릴테니까 어두워지면 와"라고 하더라고. 날이 지고 너희 할머니한테는 동네 냇가에 멱 감으로 간다하고나왔지.
그 집은 내가 어릴적부터 사람이 계속 안살았어. 너희 할머니 말로는 "나무꾼이 애들 엄마 없이 애들 둘 데리고 살았는데 나무꾼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범한테 해코지를 당해 죽었다더라고. 집이 외떨어져있어가지고 우리도 한참 뒤에 알았지. 춘식이 아재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그 나무꾼이 온몸이 뜯기가지고 있는걸 봐가지고. 난리났재. 그래가지고 아들은 우째사노 하면서 갔는데 아들이 없는기라. 세간살이는 그대로 있는데 아들 둘이 어디 갔는지 없어가지고 엄마가 얼라들 델꼬 갔다카고, 에고 그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서도... 그러고 우리도 마카(다)잊아뿔고 살았는데 한날은 거기 근처에 나무하러 간 옆집아재가 혼비백산해서 온거야. 뭔일입니꺼 카니까 아재가 지나가는데 그 집에서 아들이 웃는 소리가 나더란다. 바람소리 잘못들었네 싶나 싶어서 그 집 마당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문이 확 열리드만 "아재요, 우리 아부지 데리고 왔는교"카면서 그집 큰아들이 보이는데 다리가 없이 둥둥 떠있드란다. 놀래가지고 뛰어왔다대. 아이고...
그렇게 늬 할머니가 말하고 더 말을 안하더라고.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지.
여하튼 그러고 사람들이 안 드나들고 사람이 안살아서 집에 나무며 잡풀이 잔뜩 우거져서 흉가가 되었지. 그러고 우리가 그 집에 가게 된거야.
그날 저녁에 다들 산 아래서 모여 올라갔지. 우린 올라가면서 알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하면서 분위기를 몰았어. 다섯명이 우르르 몰려가기도 했고, 아직 해가 막 지지 않아서 겁도 안나더라고.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형 친구가 "아 나 눈깔사탕 가지고 왔는데 하나씩 먹자. 딱 다섯개 가져왔데이" 그렇게 사탕도 먹고 잘 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우리 옆집 아저씨가 내려오데. 다들 인사하니까 아저씨가 "느그 어디가노?"하길래 내가 "저기 집에 갑니다"했지.
아저씨가 깜짝 놀라면서 "아이고 느그 거기가면 큰일난데이!"하면서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우리는 아저씨가 그래 말하니 순간 겁은 났는데, 이왕 다 와가는거 구경만 하고 갈게요, 정식이형이 벌써 가있다고 그랬지. 그러니 아저씨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한숨을 쉬더라고.
그러면서 하는말이, "느그 거기서 뭘 봐도 절대 말을 걸거나 대답하면 안된다이"신신당부를 했어. 나는 아저씨 따라 집에 가고싶었지. 근데 형들이 겁쟁이라 놀리는게 너무 싫어서 잔뜩 쫄아서 형들 손을 꼭 잡고 갔지.
그렇게 집 앞에 섰는데, 그때 시간이 딱 해지고 직후라 좀 어슴푸레했거든. 집 안은 안보이고.
우리는 정식이 형을 불렀지. 근데 부엌쪽에서 우리또래정도 애가 나오더니 "누구야?"라고 하더라고. 우리형이 "어? 정식이 아니네?"그랬는데
그 애가 히죽 웃더니 "아, 걔 이름이 정식이야?"하고 팔짝팔짝 뛰면서 박수를 치는거야.
그 모습이 하도 희한하고 섬뜩해서 우리가 아무말도 안하고 얼어붙었거든.
"정식아 정식아 정식아아아아아
정식이는 나랑 놀건데? 너네도 나랑 놀래?"
애가 웃긴게, 그래 놀자고 폴짝 뛰어도 우리쪽으로 나오지는 않더라고. 그걸 보더니 내 뒤에 있던 형이 "얘들아 쟤랑 같이 놀고가자"고 부추기는거야. 이래 무서운데 참 대단한 형이다 싶었지. 그애도 "정식이 정식이도 여기 안에 있는데 같이 놀자 나도놀자~"그러고...
우리형들이랑 나는 입도 안떨어지고 어버버 하고 있었어.
그때 우리 뒤로 "느그 빨리 안나오나!"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봤는데 아까 산을 내려간 아저씨랑 너희 할아버지가 대문앞에 계시더라고. 우리는 어른들한테 끌려 나왔지. 아저씨가 우리들 등짝을 한대씩 때리면서 정신차려라 하고, 너희 할아버지는 우리한테 뭘 뿌리더라고. 그건 소금이었어.
"느그 저 집에서 뭘 봐도 말하지 말라캤재! 뭐봤노!"
아저씨의 불호령에 잔뜩 얼어있다가 큰형이 "저 부엌에서 애가 나오길래...우리는 먼저간 정식이인줄 알고.... 정식이 어디갔냐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창백해져선 너희 할아버지한테 "애들 잠깐 보고 있스소" 뛰쳐 내려갔어. 한참뒤에 정식이아버지랑 같이 오시더니 정식이아버지랑 아저씨가 그 집에 들어가서 정식이를 찾더라고. 우리는 너무 무섭기도 했고, 뒤이어 마을 어른들이 몇명 더 와서 산을 내려왔지. 집에 오니까 너희 할머니는 "거기 가지 말랬쟤!"하고 혼이났지. 그날밤 우리는 다들 잠을 못이뤘어. 좀 잘라치면 팔짝뛰던 그 애가 생각나서 무서워 잠이 안오더라고.
다음날 아침. 너희 할아버지가 "큰일날뻔 했다"고 전날의 이야길 해주셨어. 옆집아저씨 아니었으면 줄초상 날뻔했다고.
옆집 아저씨가 너네 만나고 내려오는데 뭐가 좀 이상하더란다. 말로 설명은 못하겠는데 위화감이 느껴져서 영 찝찝하더래.
그래서 다시 너네를 보니까, 우리집 애들 세명, 그리고 같은 동네 애 한명, 그 뒤에 처음보는 남자애가 같이 올라가더란다. 암만 봐도 처음보는 애라 이상하다.... 싶어서 한참 보다가 아차 싶었단다.
앞에 네명은 팔이랑 몸이 앞뒤로 움직이는데(걸어가니까), 마지막 애는 몸이
아래위로 둥실둥실 움직였던거지. 꼭 물에 떠서 다니는것처럼.
그 처음보는 애가... 다리가 없고 둥둥 떠서 너네 뒤를 따라가고있던거야.
그길로 바로 마을로 내려와서 나랑 다른 사람들을 추려서 부랴부랴 올라갔지.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참... 우리먼저 내려오고 다른 사람들이 집을 샅샅이 뒤졌더니, 부엌에서 없어졌던 그집 애가 목을 메달고 죽어있고, 그 매달린 걸 보고 기절했던지 정식이가 그 밑에 쓰러져 있더라고. 아이고...
정식이는 숨은 붙어있는데 눈이 완전 돌아가있고....
진짜 큰일이었던게 그 목메단 애.... 얼마나 오래 있었던지 시신이 썩어문드리져가지고 목이랑 몸이 분리되기 직전이라 여차했다간 몸이 정식이를 덮쳐 큰일날뻔 했단다. 아이고......
느그 거기 앞으로는 절대 가지 마라. 아저씨 아니었으면 어쩔뻔했노. 알았나.
나랑 형들은 그 후로 며칠간 가위에 시달렸지. 눈만 감으면 너희 할아버지가 말한게 막 상상되면서... 그러고 며칠후에 정식이랑 같이간 다른 친구랑 다섯이서 만났는데, 정식이는 그 집에 들어갔더니 우리처럼 마당에서 애가 나와가지고 '나랑 놀자고 왔나'카더란다. 그래서 너는 누구냐고 묻고, 이따가 내친구들 온다고 캤더니 갸가 웃으면서 "니 말고 다른 애들 또 오나? 데리러 가야겠네 히히히"하고는 정신을 잃었다대.
그라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총 다섯명인데, 정식이형을 빼면은 우리가 넷이서 올라갔어야하는데, 눈깔사탕 다섯개를 다 나눠먹고, 그 전에도 출발하고 올라갔을때 다섯이었던거야..
우리가 산에 올랐을때부터 귀신한테 홀린거지뭐.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아버지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비가 그쳤다. 우리는 "에이"하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동생은 "이거 지난주 <이야기 속으로>에서 들은거 같다"하고 웃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우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너희가 믿고 안믿고는 중요하지 않다. 근데 아까 뭐 안이상하더나?"
우리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까, 정식이형이 오는데...
그 집에 애처럼 위아래로 둥실둥실 우리쪽으로 오더라.
그래서 내가 바로 도망친거다."
아버지는 이후 향우회에서, 정식이 아저씨가 몇년 전에 행방불명되었다는 이야길 들으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