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
*본 이야기는 팩션입니다. 이 글은 저의 순수 창작글로, 2차가공 및 불펌을 금합니다.*
고3때 열심히 공부한 덕에 원하던 대학에 붙었다. 기쁨도 잠시, 타지에 있던지라 기숙사를 신청했는데 성적이 안되어서 광탈하고 급히 자취방을 구해야했다.
내가 나온 대학은 지역에서 손꼽히는 곳이고 워낙에 학교가 커서 원룸이 많았고, 집을 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든다 싶으면 방값이 비쌌고, 옵션이며 가격이 좋다 싶으면 거리가 너무 멀었다. 한 열군데 둘러보다가 포기할 무렵, 학교 정문에서 도보 5분거리에 작은 골목이 보였다. 여기 어드매에 집이 있으면 여러모로 참 편하겠다 했는데 골목에서 1미터도 채 안되어 사거리가 나왔고, 거짓말처럼 거기 원룸이 한채 있었다.
3층짜리 허름한 0원룸이었다. 그때가 어스름 어둠이 내릴 때였는데, 3,4개의 창문 빼곤 빼곡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이렇게 가깝고 인기가 좋으면 비싸겠지 싶었지만 물어보는데 돈드나 싶어 현관에 있는 전화로 남은 방이 있는지와 가격을 물어봤는데 가격도 저렴했고 냉장고와 침대, 옷장, tv가 기본옵션이라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2층 중간방 하나 남았대서 바로 계약을 하고 다음날 짐을 들였다. 화장실과 부엌이 있고, 중문까지 있어서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까? 야간 수업을 듣고 집에 도착해 현관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는데 손잡이가 따끈했다. 그때가 초여름이어도 제법 스산했는데 손잡이가 따스하다니... 나도 모르게 손을 황급히 뗐다. 쎄한 기분에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밑과 옷장을 열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집도 내가 나가기전과 다를바 없었다. 거참 희한하네 싶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때만해도 누군가 집을 잘못 알고 들어가려다 말았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바로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아.
내 자취방은 학교에서 가깝고, 또 바닥에 세 명은 거뜬히 잘 정도의 크기라 이따금 막차를 놓친 선배나 동기들이 자고가기도 했다. 내가 없어도 절친한 이들에게 열쇠를 주어 공강시간에 잠깐 눈을 붙이거나 밥을 먹고 가는 아지트도 되었다. 외로운 타지생활에 덜 심심하기도 했고, 우리집에 드나드는 이들은 꼭 라면이나 물, 쌀 등의 생필품을 채워놓고 가서 불편함 없이 지냈다.
그날도 동기A가 공강이 세 시간이나 되는데 밥도 먹고 한숨 자고 가겠다고 해서 열쇠를 내어줬다. 나는 쭉 수업이 있고, 마지막 수업을 함께 들어서 그때 열쇠를 받으면 되겠다고 했다. 동기는 라면 한팩과 과자 등을 사서 자취방으로 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나도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 하나를 다 듣고 다음 수업에 가려는데 A한테 전화가 왔다. A는 나에게 지금 어디냐 물었고, 난 어느어느 강의실에 있다고 했더니 잠깐만 나오라는 것이다.
5분뒤 도착한 그의 모습은 너무 이상했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으며 날 보자마자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저기가서 이야기좀 하잔다.
대관절 뭔 일이냐고 물었더니 A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나에게 대뜸 '혹시 너 남자친구 있어?'라고 묻는 것이다.
이게 뭔 개소린가 싶어서 없다고 하니까, 그럼 혹시 남동생이나 오빠가 근처에 사냐고 물었다. 그것도 아니고, 나는 여기에 우리과 사람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다하니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A가 라면 한 그릇을 비우고 한숨 자려고 누웠는데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단다. 처음엔 침대 삐걱거리는 소린줄 알았는데 그 소리는 중문 밖에서 나는 것 같았고
누가 밖에 왔다갔다 하는 갑다 하고 다시 눈을 감았는데 '덜그럭''덜그럭'하더니 뭔가 잡아당기는 소리에 그 소리가 점점 커져서 이상하다 싶었다.
중문을 살짝 열고 현관을 봤는데 현관문이 막 움직이면서 손잡이가 좌우로 돌아가는것이 억지로 여는 폼 같아 A가 "누구세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덜컥이는게 멈추더니 "어어?'" 하는 소리가 났다. A는 그때까지도 누가 잘못 알고 들어오려했나 싶었단다. 보통 그러면 '아 죄송합니다'하고 말을건데 바깥에선 뜻밖에 말이 들리더란다.
어? 이 시간에 사람 소리가 왜 들리지?
A는 다시 누구냐고 물었다. 그쪽은 잠시 조용하더니 "하아"하고 긴 한숨 후에 조용해졌다고 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막 이야기하고 말았는데, 10분쯤 지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소름이 돋은것이다. 그래서 문구멍으로 밖을보니 아무도 없었고, 살짝 문을 여니 기척이 없이 조용했다. 그제서야 그는 나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이 집을 나오게 된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A는 일단 내가 있다는걸 아니까, 여자 혼자 산다고 생각은 못할 건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앞으로 집에 오갈때랑 혼자 있을때 조심해야겠다고 당부했다.
그제서야 이게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문단속도 더 철저히 하고 창문도 열어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 날이 제법 좋았고, 다음주가 방학이라 본가에 갈 짐정리를 했다. 한달 정도 집을 비워야하니 구석구석 청소를 하다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간만에 활짝 열었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볕도 좋고 불어오는 바람도 선선해서 좀 더 열어뒀다. 씻고 나와 침대에 뻗어 낮잠을 청하려는데 어디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올 사람도 없었거니와 보통은 현관벨을 누르기 때문에 나는 틀어놓은 tv를 끄고 바깥에 귀를 기울였다.
똑/똑/똑
소리는 아까보다 커졌지만 간격은 일정했다. 뒤늦게 창문을 슬쩍 닫았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똑/똑/또오오오오오오오옥
마지막 똑!이 아니라 다다다다다다 하며 문을 쳤다.
똑/또오오오오오오옥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뒤에 노크는 점점 길어졌다. 나는 휴대전화로 급히 옆동에 사는 동기친구를 불렀다.
똑/히힛/똑/속닥속닥속닥
바깥에서 소근소근 속닥속닥 소리가 들렸다. 나는 중문을 열고 무슨 소린지 들었다.
"히잇, 안에 있는거 다 알아요~~~~~~~~~"
등골에서 소름이 돋았다. 친구에게 전화도 못걸고 문자로 계속 와달라고 했다. 혹시 모르니 몽둥이건 망치건 호신할 만한 것도 가져오라고 했다.
다행히 친구는 선배 둘과 집에서 공부중이었다면서 바로 가겠다고 했다. 밖에선 계속 속닥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에이씨'하더니 다다다다 하고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후 친구가 문을 두드렸고 나는 설 힘도 없어서 기다시피 현관에 가서 문을 열었다. 그와중에도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밖에 있는 사람이 내 친구인지 확인을 했다.
친구와 선배한명이 무슨일이냐고 했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둘은 놀라면서 일단 짐을 꾸려서 이곳에서 나가는게 좋겠다고 했다. 계약도 1년 다 되었으니 여기 그냥 떠나라고 오늘이라도 당장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야겠으니, 네가 하기 어려우면 내가 대신 전화를 걸어주겠다고 하면서.
두 사람은 고맙게서 짐 싸는것도 도와주고, 동기는 바로 집주인에게 다음학기 휴학해서 계약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원룸 맞은편에 살던 집주인이 바로 와서 관리비와 보증금을 정산해줬다. 집주인이 내 상태를 보더니 무슨 일이 생겼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때 다른선배가 오더니 집주인을 미쳐 못보고 '야 빨리 안가고 뭐하냐'고 화를냈다. "야, 너네 올라가고 난 혹시 몰라서 여기 앞에서 담배 한대 태우면서 한바퀴돌았는데 어떤 남자가 여기랑 저기 옆 원룸을 막 돌면서 창문을 막 보는거야. 뭐시 이상하다고 보니 남자가 이 여름에 목장갑을 끼고 문 열린 창문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수첩에 뭘 쓰더라고. 내가 가서 아저씨 나 경찰인데 뭐하는거냐, 이거 좀 봐야겠다니까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더라고. 근데 여기봐, 이거!!!!"
수첩엔 뭔가 빼곡하게 써있었다. 격자로 된 수첩엔 칸칸이 뭔가 적혀있었고, 까맣게 칠해진 곳도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내가사는 원룸과 옆 원룸 호수였다.
까맣게 색칠된 곳 중 하나는 내 친구(남자)가 사는 곳이 있었다. 가장 윗칸엔 '주인집'이라고도 적혀있었다.
거기엔 각각 칸마다 '여자/혼자/여긴된다', '여자둘/한명큼/보류', '여자랑남자/남자00시에 없음/주말가능' 이라고 되어있고, 수첩의 제일 앞면엔 '00교 00구역장 000'이란 네임택이 붙어있었다. 지역에서 유명한 사이비종교였다. 바로 버리려는 것을 선배가 증거가 필요할 수 있으니까 내가 들고 있겠다, 경찰이 필요하다고 하면 나에게 말해달라고 챙겼다.
집주인도 그걸 보더니 너무 놀라면서 '내가 바로 경찰에 전화해서 신고하겠으니 다른데 말하지만 말아달라'고 했다. 우리는 경찰에 신고를 바로하고 여기 원룸 사람들에게 말해서 호실을 바꾸고 공동현관 비번을 달아달라고 했다. 바로 열쇠수리공을 불렀고, 후처리는 내가 꼭 하겠다면서 집주인은 우리에게 고생했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10만원을 쥐어줬다. 다행히 학교 건너 큰길가에 있는 원룸에 자리가 있어서 보증금을 바로 주고 거기 계약을 했다. 짐은 다음날 옮기기로 하고 우선 오늘은 동기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동기는 친구와 투룸에서 지냈는데, 친구가 놀러가서 오늘 없으니 방을 쓰라고 내줬다. 선배 두명도 거실에서 오늘 같이 있을거니 염려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줬다.
충격적인 사건이 지나고 그날 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동기에게 물었다. "야, 근데 내방엔 뭐라 적혀있던데?"
동기는 잠시 머뭇거렸다. 선배가 지나간거 뭐 알려고 그러냐고 타박을 했다. 나는 궁금하기도 하고, 경각심을 가지려고 하니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선배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아까 수첩을 가져와 보여줬다.
여자/혼자인데 평일낮 남자있음/창문자주열고 경각심없는편/
체격이 좋은편이라 방문 시 몽둥이 지참할것.
나는 그날 바로 본가로 내려가는 막차를 탔다. 그렇게 내 자취생활은 막을 내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