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신다
*이번 이야기는 팩션입니다. 경험담에 살을 더한 이야기입니다. 창작된 글이니 2차가공 및 불법으로 퍼가는것을 금합니다*
나의 외할머니는 일명 '신기'있던 분이셨다.
난 그 이야길 돌아가신 후 10여년 후 우연히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외할머니는 좀 남다른 기운이 있으셨던 것 같다. (이하 '할머니'로 표기)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무척 작은 체구에 상당한 미인이셨는데, 늘 파리한 얼굴을 하고 계셨지만 눈은 매서우리만큼 빛나셨다.
늘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셨지만, 이따금 '이진향!'이라고 내 이름을 부르실 땐 굉장히 쩌렁쩌렁하셔서 놀랐었다. 저런 작은체구에서 어떻게 이렇게 큰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의아했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를 경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아플때, 또 한번은 내가 창고에 들어가서 놀고 있을 때.
할머니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고나면 신기하게 아픈것도 싹 가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팠다'기보다는 '좀 으슬한 냉기로 추웠다'가 더 맞지 싶다.
특히 할머니는 창고에 들어가는걸 굉장히 싫어하셨는데, 언젠가 여쭤보니 '어둡고 습한곳에 손때묻은 물건을 두면 으례 <그것들>이 있기 마련이다'고 하셨다. 그리고-할머니의 말에 따르면-<그것들>은 나와 할머니한테만 쫄래쫄래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함부러 들어갔다간 <그것들>에게 해코지를 당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워낙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그 후 창고는 가지 않았고, 엄마가 창고 안 물건을 가져오라할때는 질겁을 했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할머니와 싸웠다.)
할머니는 환갑 다음 해 돌아가셨다. 평소처럼 아파서 병원에 가 입원을 했는데, 다음날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삼촌과 이모들은 병원의 과실이다, 의료사고라고 주장했을만큼 너무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늘 앓던 분이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줄은 몰랐기때문에 슬픔이 차오르기도 전에 장례를 치루고, 49제가 지나갔다.
49제를 보내고 난 다음날이었다. 아침에 두런거리는 소리에 얼핏 잠에서 깼더니 이모와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며 이야길 하고 계셨다.
"아재 말대로 굿을 할걸 그랬나봐"
"다 지나간건데 뭘 어짜노"
내가 깬 기척을 하면 이 이야기가 끊길까봐 계속 자는 척 하며 들은 이야긴 참으로 놀라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달 전, 너무 몸이 아프다고 하셔서 병원에 갔단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특별히 안좋은곳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의원도 가봤지만 '몸이 허해서 그러신거 같다'며 보약 한 재 처방이 다였다. 그러다 동네 당집을 지나는데, 마당에서 비질을 하던 당집 주인(무당)이 할머니를 보고 뛰쳐나오더니 손을 덥석 잡더란다.
"아이고 장군님, 이래 허한 곳에 계서서 답답해 우째 지내셨능교?"
무당은 할머니에게 깍듯이 존대를 하며 '장군님'이라고 했다. 이렇게 큰 분은 모시고 있으면서 몸이 성치 않은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날 밤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이 이야길 했고, 미신을 믿지 않는 할아버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셨다. 몇 차례 무당이 찾아와서 할머니는 신을 받아들여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래로 내려갈거라는 좀 독한 말까지 했지만 할아버지는 요지부동이셨다. 오히려 무당에게 굿을 해서 돈을 타내려는 사기꾼이라고 모욕까지 하셨다. 하지만 무당은 돈은 받지 않을테니 장군님과 할머니를 위해 고집을 꺾으라고 하셨음에도 할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굿을 안해서 돌아가셨나? 우리는 그렇게라도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도 그 무당을 본 적이 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뵈러 갔다가 슈퍼에 심부름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굉장히 인자하게 생긴 분이 나를 보더니 '아이고, 느그 할매 장군님 안 받는거 아셨는갑다.....'하면서 내 손을 쓸어주셨다. 눈빛은 매서웠지만 나에게 하는 투가 무척 인자하고 진짜 안타까워 하셨던것이 느껴졌다.
그분은 나에게 "앞으로 절대 내같은 사람은 찾으러 다니지마. 옳은 무당이면 니한테 잘해줄건데 아닌 사람은 니 복 다 뺐아묵는데이. 장군님이랑 할머니가 알아서 잘 봐주실거니까 절대 가지말어" 덕담같은 충고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이후 점을 두 번 보러 갔는데, 두 곳에서 모두 날 버거워하면서 '앞으로 이런데 오지마'라고 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할머니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다.
처음 꿈에 나타나신건 내가 결혼하고 첫 집에서 잔날이었다. 그 집은 20년이 된 구축이었는데, 정남향에 앞에 막힌곳없는 곳이라 이른아침부터 해질녘까지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포근한 곳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안방은 사계절 내내 냉기가 돌았다. 보일러를 아무리 돌려도 아랫목만 따스할뿐 우풍이 심해 난방텐트에 전기매트까지 써야했다. 해가 들어오지 않는 작은방조차 보일러를 10분만 돌려도 방이 절절 끓었는데, 통창에 햇빛이 들어오는 안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샷시도 새것이라 별일이구나 싶었다가도 집 자체가 워낙 오래되어 벽에서 냉기가 들어올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결혼하고 첫날밤은 호텔에서 지내고 다음날은 남편이 야간근무를 하러 가서 그곳에서 첫날밤을 혼자 보내야했다. 전날 잠자리도 불편했고, 그날도 하루 종일 짐정리를 한다고 피곤했던지라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러다 꿈을 꿨는데, 어두컴컴한 안방 침대 중간에 할머니가 정좌를 하고 앉아 방문 앞에 있는 나를 바라보셨다. 할머니는 꼿꼿한 자세로 나를 뚫어져라 보셨고 집을 한바퀴 돌아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현관부터 거실, 부엌 작은방과 옷방을 둘러보는데 옷방에 장농을 열자 할머니가 거기 쪼그려 앉아 계시는것이다. 할머니 불편하신데 왜 거기 계시냐니까 '여기 내가 없으면 누가 앉아서 안된다카이'라고 고개를 저으셨다. 그러면서 '안방도 내가 없으니까 안되던데 큰일이데이'라고 걱정하셨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근 20년간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꿈에 왜 나타나셨지?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했다. 그렇게 의문도 하루이틀 지나고 일상에 묻혀졌다.
그 집에 있으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좋은일보단 나쁜일이 많았다. 특히 내 신상이 많이 나빠졌다. 몸도 나빠지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집보단 사람의 문제였지만 '집'과 관련된 사람과 얽히고 설켜서 모든게 집 때문인거 같았다. 이 집이 뭔가 이상하다 느꼈던건 이전 집주인 이름으로 날아온 불미스러운 고지서를 보고나서 였다. 집을 팔 때도 석연치 못한 부분이 있어서 껄끄러웠는데, 불미스러운 고지서까지 보자 석연치 않아서 등기를 봤다. 이전 집주인, 세입자들이 채 3년도 못있고 바뀐것을 그때 알았다.
그즈음 애들아빠가 집을 팔자고 의견을 냈다. 망설임도 잠시 바로 집을 내놨다. 거의 1년이 다되어서야 집이 팔렸다. 가계약금을 받은 그날 밤. 할머니가 또 꿈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할머니가 안방 침대 끝에 걸쳐계셨고 창 밖으론 아주 하얀 빛이 가득했다. '할머니 우리 이제 여기 나가요'라고 했는데 할머니는 내쪽은 보지 않고 벽을 계속 보며 발끝을 까딱거리셨다. 어쩌다보니 그쪽을 봤는데 할머니가 딱 30번 까딱거리더니 멈추셨다. 그러고 꿈에서 깼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지만 가계약을 하고 잔금을 치를 때까지 딱 30일이 남아있었다. 할머니의 까딱거림과 석연치 않은 표정은 찜찜했지만 그래도 나쁜 표정이나 어두운 그늘은 없어서 괜찮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다음날부터 잔금날까지 하루에 하나씩 일이 터졌다. 길 가다가 갑자기 넘어져 발이 까지고, 밤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종이에 손이 베이거나 포크에 발이 찔리는건 애교였다. 멀쩡하던 보일러가 터져 아랫집에 누수가 생기고 잘 가던 차에 브레이크가 고장나 길 한가운데서 곤란했던 적도 있다. 정확히 하루에 하나씩 크고 작은 일이 터졌고, 잔금을 치룬 날 아침에도 이삿짐을 싸다 아끼던 그릇이 깨졌다. 웃긴건 내가 아끼는 그릇과 장난감, 컵은 진즉에 내가 따로 싸서 짐을 보냈는데 어디서 그것 하나가 남아있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다. 그릇이 깨진 일까지 세면 딱 30일마다 하루 한 건씩 일이 생긴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잔금을 치르고 나서 간단히 청소를 해주려고 했는데 그 집에 혼자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렇게 집 앞에서 서성이는데 이사나간걸 본 아랫집 어르신이 구경삼아 오셨다. 어르신께서 집정리하러 왔다니 거들어주겠다셔서 같이 집에 들어가 정리를 하다 그 간의 이야길 했다. 그랬더니 어르신께서 한참을 망설이시더니 이런 이야길 해주셨다.
"집이건 물건이건 뭐든 오래되어 사람 때가 묻으면 그게 귀물이 되는 거야. 집은 특히 사람이 드나들고 하루를 하는 곳이니 더하지.
아마 이 집은 새댁이 마음에 들었던건데, 니가 나가니까 배일이 꼴려가지고 가지말라고 그런 일을 낸거 같네.
이 집 터를 잘 봐. 앞에랑 옆에 큰 산이 있잖아.
산 기운이 센 편인데 그 기운보다 새댁이 세니까 집귀신은 활개를 칠 수 있어서 좋았겠지.
그래도 나가길 천만 잘한거야. 더 있었다간 새댁 몸이 완전 축났을거여."
그러면서 어르신은 이 집을 나설때 창문과 현관문을 반드시 다 닫고 나가라셨다. 그리고 집을 나서서 현관문을 닫기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현관문단속 하고 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다. 어르신이 자뭇 비장하게 말씀하셔서 허투로 들을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집을 나설때까지 함께해주셨다. 문을 닫고 그 길로 바로 앞만 보고 걸어갔다. 어르신이 '이제 집이 안보인다'고 하셨고, 그제야 긴장이풀려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사가는 곳에서 잘 살고, 여기는 웬만하면 앞으로 오지말어. 이 동네가 음기가 강한곳이라 살기 좋다 해도 새댁같은 사람은 서로 힘들어."
그 후 몇 번 그 동네를 지나쳤지만 그 집 근처는 가지 않았다. 건너건너 들은 바로는 새로운 집주인이 일이 생겨 집을 내놨다고 해다.
새 집에서는 잘 지냈다. 벌써 2년이 지났다. 좋은일 나쁜일 경계조차 모호한 일상이 지났다.
그런데,
어젯밤 할머니가 꿈에 나타났다.
할머니는 침대 중간에 서서 나를 내려보고 계셨다.
내일 나는 부동산에 집을 내러 갈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