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엄마가 장롱 틈을 메운 이유
오랜만에 본가에 놀러를 갔더니 못보던 침대가 있었다. 원래 있던 침대가 이 집에 이사올때 샀으니 햇수로 20년 가까이 되어서 매트리스는 물론이거니와 프레임도 닳고 낡아서 새로 샀다고 했다. 침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디자인이었는데, 평소 엄마의 스타일은 다리가 있는 가구(바닥과 가구 사이에 틈이 있는)를 선호하는데 이건 아래가 꽉꽉 막혀있었다. 워낙 깔끔쟁이 엄마라 수시로 청소를 해야하니 다리가 있는 가구를 선호하던지라 의아함에 물어봤다.
"이제 가구는 무조건 밑에 막힌거 살거야. 먼지야 한번씩 드러내고 닦으면 되지"
엥? 이게 무슨 소리람? 굳이 그렇게까지 할거 있냐니까 앞으론 밑에 틈있는 가구는 안사려고 한단다. 그제서야엄마집을 둘러보니 좀 이상한 점이 보였다,. 장롱 윗부분, 옆에도 종이상자로 꽉꽉 차있었다. 장롱의 색깔이 종이상자와 비슷해서 몰랐나보다. 책상을 제외하곤 협탁, 쇼파, tv선반 등등 비슷한 색깔의 천이나 종이상자로 아래가 꽉꽉 막혀있었다. 엄마에게 뭘 이렇게 잔뜩 막아놨냐니까 처음엔 '아 그냥...'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얼마전에 안방에서 자다가 꿈을 꿨는데, 내가 꿈 속에서 안방에 앉아있더라고. 그런데 저기 장롱 틈새에서 손이 쑥 나오는거야. 손이 꼭 고무호스처럼 쭉 빠져 나오더니 뭘 찾는것마냥 더듬대더라고. 나는 방에 나가려고 방문을 여는데 꿈쩍도 안해. 손은 계속 길어지지, 곧 나한테 닿을것 같아서 침대 밑에 숨었거든.
손을 피해가지고 침대 밑에 들어가서 한 숨 돌리는데 뭔가 쎄한거야. 그래서 옆을 봤더니...어휴....
나 말고도 열댓명의 사람들이 잔뜩 웅크리고 침대 밑에 구겨들어가 있는거야. 고양이가 웅크린 자세로. 다들 나를 웅크린채로 눈만 치켜뜨고 보더라고. 그런데 누가 나를 톡톡치더라고. 옆을 보니까 너희 외할머니랑 숙모가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하더니 손짓으로 자기들 뒤에 숨으라고 휘적거리더라고. 다른 사람들은 웅크린채로 나를 좀 보더니 달달달 떨고있고. 그게 어찌나 기괴하고 이상하던지... 여하튼 외할머니랑 숙모가 나를 앞세워서 있었어.
그 손이 침대를 만지더니 침대 밑으로 쑥 들어와가지고 그 안에 사람들을 잡아끌어내더니 장롱 틈에 집어넣더라고. 너무 무서웠지. 끌려가는 사람 중에 몇명은 내를 보면서 인사하는거처럼 막 손을 흔들기도 하고, 손가락질도 하고... 사람들이 손에 끌려나가면서 침대 밑에 공간이 생기니까 너희 외할머니가 나를 저 안쪽으로 더 들어가라고 밀어넣더라고. 결국 외할머니도 손에 이끌려 나가고, 숙모가 나갈차례가 되니까 갑자기 너희 숙모가 "형님 정신차리이소!"하고 내 뺨을 한대 때리더라고.
어이구 꿈인데도 진짜 매섭게 맞은거 같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꿈에서 깼지. 얼마나 무서웠던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
외할머니와 숙모는 10년 전에 차례로 돌아가셨다. 두 분 다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생전에 우리엄마가 병원을 가장 많이 드나들면서 간병을 해드렸다. 희한하게도 돌아가시기 전날 우리집에서 하루 자고 싶다고 하셔서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외박증을 받아 하루 주무신 후 다음날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우리엄마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으시면서 '꼭 내가 어떻게든 돕겠다'고 하셨단다.
괴이한 꿈을 꾼 후에도 엄마는 '참 별일이다'하고 넘어갔단다. 그런데 며칠 후. 모임에 회원 중 한명의 부고를 듣고는 소름이 끼쳤단다.
그 꿈에서, 손에 이끌려 가던 사람 중 한명이 그 회원이었던게 생각이 났고- 그 회원은 엄마가 외숙모 뒤로 숨게되면서 옆으로옆으로 밀리다 가장 침대 바깥으로 삐져나왔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손에 집혀서 장롱 틈 안에 들어갔던 사람이었단다. 실제로 이후에 들은 이야기는, 돌아가신 그이가 차사고가 났는데 평소엔 늘 조수석에 탔지만 그날은 어른을 모시고 가는 길이라 어른에게 조수석을 내어드리고 뒷자리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고 했다. 속도를 내던 덤프트럭이 뒤에서 이 차를 박았고, 뒷범퍼에 트렁크가 거의 찌그러질정도의 사고라 뒷자리에 앉은 그이는 즉사했는데, 다행히 앞자리에 있던 두 사람은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고 했다. 엄마는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소름끼쳐서 이야길 듣고 바로 집에 와서 장롱의 틈을 메우고 침대도 이번참에 바꿨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외할머니와 숙모 덕분에 살았지만, 그 때문에 애먼 사람이 간 것 같아서 참 마음이 복잡해서 한동안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어쩐지 요며칠 엄마가 연락도 없고 일정도 다 취소했다고 해서 몸이 안좋은가 싶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니... 참 찝찝했겠다 엄마, 라고 하니 엄마가 장롱을 보면서 하는 말.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 일을 겪고 나서 장롱 틈을 다 메웠는데- 아침이면 자꾸 틈에 끼워둔 종이가 빠져있더라고. 내가 아주 꽉꽉 끼워서 일부러 떼지 않는 한 떨어질일이 없는데 말야..."
그날, 나는 비상금을 털어 엄마집에 장롱을 사드렸다. 당부도 잊지 않았다. "틈 하나 보이지 않게 몰딩으로 꽉꽉 채워주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