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실화)심야 드라이브

아무래도 어젯밤엔 홀렸던것 같아요

by 리다

해가 부쩍 길어지면서 우리집엔 두 가지 부작용이 생겼다. 하나는 해가 뜰 무렵 아이들이 깨고, 해가 늦게 지니 여간해선 두 아이가 잠을 안잔다는 것이다. 보통 우린 저녁 7시 30분쯤 잘준비를 하고 8시에서 8시 30분쯤 아이들이 잤는데, 해가 길어져서 8시가 되어야 좀 어두워져서인지 "엄마 아직 밤 아니야"하면서 잠을 안잔다. TV를 보고, 종이접기에 책읽기도 하루이틀... 나 혼자 아이 둘을 보는 처지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예전에 살던 집엔 걸어서 5분거리에 강변산책로에 드넓은 운동장이 있고, 또 어른들이 가까이 사셔서 함께 동네산책을 다녔는데, 여긴 산책로도 한참 가야하고, 아이들도 단지 안에만 돌아다니니 지겹다고 새로운 곳을 가자고 졸랐다.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심야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왜 이걸 지금 생각했을까! 차를 타고 차로 10분에서 15분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오니 나도 편하고, 아이들도 색다른 밤의 풍경이 신기한지 너무 즐거워했다. 보통 우리의 코스는 7시 30분쯤 집을 나서서 차로 10분거리에 있는 공원에 가서 30분쯤 놀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야경 구경하기 좋은 동네 한바퀴를 돌고(급경사가 있는 곳이라 아이들이 놀이기구 타는것같다고 좋아한다)집으로 돌아온다. 첫째는 집에 다다르기 전에 잠이들고, 둘째도 연신 하품을 한다. 그렇게 집에 안고 업고 들어와서 대충 손발만 닦이고 눕히면 둘이 조잘대가 금세 잠이 든다.

어제도 늘 같은 코스로 한바퀴를 도는데, 갑자기 첫째가 "엄마, 나 안 가본 곳으로 가볼래!"라고 제안했다. 그 동네는 주 도로 외에 가장자리쪽은 조용한 주택가나 산책로라 가로등도 많지 않고 후미진 곳이 많았다. 내가 "어 그러면 불도 거의 없어서 좀 무서울건데 괜찮겠니?"라고 하니 "우리는 용감해!"라면서 꼭 어둡고 무서운 곳으로 가자고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보채는게 좀 희한하다 싶었다. 아이 둘을 키워본 바, "유독"아이들이 안하던 행동이나 말을 하면 "뭔 일"이 꼭 생긴다. 그래, 어젯밤도 그랬다. ​


늘 가던 도로로 쭉 가다가 외곽으로 빠져서 이곳저곳 둘러보며 셋이 두런두런 이야길 하던 중, 첫째가 "엄마 저기로 가볼래! 저기에 아저씨 내려가는곳'인라고 말했다. 보니까 사람들 서너명이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가 늘 가던 도로 왼쪽에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길 입구엔 동네에 유명한 키즈풀빌라 팻말이 있어서 갈만하겠다 싶었다.


쭉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가로등도 드문드문했고, 이내 차 라이트 말고는 불빛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괜찮냐'고 물었더니 말은 재미있다면서도 잔뜩 얼어있었다. 길도 외길이라 돌아갈수도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 네비게이션을 켰더니, 뜻밖에도 우리집으로 가는 길이 이어져 있었다. 네비게이션 시간으로도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여기가 지름길인가보다'싶어 길따라 쭉 갔다.


그런데 좀 이상한것이 있었다. 입구에 적힌 키즈풀빌라는 나오지 않고 칠흑같은 어둠만 점점 더 심해졌다. 가장 희한했던건 우리가 본 사람들. 외진길에 빠질곳도 없는데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개구리소리도 들리지 않고, 차 소리만 들리자 두아이는 '집에 가자'고 보챘다.


네비게이션으로 보면 5분도 걸리지 않았고, 대충 짐작에 우리집으로 빠지는 큰 도로가 나와야하는데 큰도로는 커녕 뜻밖에 작은 마을에 다다랐다. '여기에 길이 있다고?"싶었는데 네비게이션엔 나가는 길이 있다고 나왔고, 육안으로 봤을땐 차 한대 충분히 가고도 공간이 있었다. 별생각 없이 그리로 좀 들어가려했다.


그때 첫째가 "엄마 저거 뭐야? 기린 아니야?"라고 했다. 순간 고개를 들어 아이쪽을 보니, 굉장히 크고 웅장한 절이 있었다. 불빛도 번쩍이고 규모가 정말 컸다. 기린 모형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걸 본 모양이었다.


그 순간 누가 내 뒤통수를 번쩍 치는 기분이 들며 정신이 들었다. "엥?"하고 다시보니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 쪽엔 가로등 하나없는 칠흑같은 어둠만 있었다. 두 아이는 잔뜩 놀라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겁먹은 모습을 보이면 안되겠다 싶어 "얘들아 엄마가 기린 보여주려고 일부러 온거야. 길이 좁으니 우리 왔던 곳으로 돌아가자"고 했고, 첫째는 "엄마 그냥 우리 원래 다니던 길로 가자"면서 여기서 나가자고 재촉했다.

다행히 아주 좁았지만 차를 돌려 나올만한 공간이 되어 가까스로 차를 돌렸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온 길이 보였다. 갈 만 했다 싶었던 길이 뜻밖에 차 한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시골길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본 절을 지나쳤던 곳은 작은 도랑이 바로 옆에있고, 길보다 더욱 좁은 돌다리가 위태롭게 있었다. 무엇보다 놀랐던것은, 우리가 차를 돌려 나오자 그 담벼락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길 없음]

그러고 다시 뒤를 돌아보니 어두운 길에 불꺼진 집 몇 채가 있을 뿐이었다. 뭐에 단단히 홀렸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의아한건 <절>이었다. 저렇게 크고 빛나는 절이 왜 안보였지? 심지어 우리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보니 우리가 온 길의 중간을 지나도 그 절이 보일 정도였고, 내가 입구에서 본 키즈풀빌라와 함께 절의 간판이 있었다. 그런데 내 기억엔 없었다. 마치 누가 딱 그것만 가려놨던것처럼. ​


이윽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오늘 갔던 곳 이야길 나누는데, 아이들은 그냥 자고싶다고 했다. 평소엔 내가 조용하라고 해도 조잘대던 아이들인데... 아이들도 뭔가 느꼈나 싶어 그냥 뒀다. ​


아이들을 재우고 로드뷰로 그 곳을 다시 봤다. 기억을 더듬어 키즈풀빌라 기준으로 내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니 정말 절이 있었고, 로드뷰로 다시 보니 정말 길없음 표시와, 집들 몇 채가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네비가 안내한 그 길들은 너무 좁고, 집에서 더 멀리 돌아 가는 길이라 네비게이션이 그곳을 안내해줄리가 만무했다. (실제로 휴대폰 네비로 다시 검색하니 내가 온 길로 돌아서 가는게 훨씬 빨랐고, 네비도 그렇게 안내해줬다.)


얼마전 그 동네서 지냈던 친구를 만났다. 그날이 떠올라서 이야길 하니 <어머>하더니 하는 말.


ㅡ나도 옛날에 우리 엄마한테 들었는데, 절에 돌아가신분들 등 같은거 달거나 초 켜놓고 오면 망자들이 자기 이름 보러 간다더라고. 근데 이따금 그 망자들 중에 자기가 죽은지 몰라서 산 사람처럼 산 사람들 가는 길로 가서 홀리기도 한대. 그냥 어른들 옛날 이야기로 들었는데 니 이야기 들으니 무섭다야.ㅡ

앞으론 그 동네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새로운 심야 드라이브 코스를 찾아봐야겠다. 이번엔 절대, 홀리지 않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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