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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별과 등대 Jun 22. 2020

5. 언제나 그랬듯이 봄


 잠들어 있던 추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따사로운 봄이 오듯

힘든 시련이 닥쳐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도 옷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 듯 아픔을 털어버리고 다가온 봄 햇살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지나 온 날들에 연연하지 않고 가슴 시린 기억에 머물지 않으며 다가 올 미래를 지금보다 벅찬 삶으로 도전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봄은 다시 오니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고생해야 즐거움이 있는 건가?)

-쥐구멍에도 볕 뜰 날 있다. (구멍의 크기는 얼마?)

흔히 보고 듣는 속담 속에는 옛 조상님의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경험에서 우러난 말벗 같은 조언은 때로는 가슴에 숨겨두었던 개인사와 맞물려 희한하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콘셉트는 ‘가난’ 주인공은 ‘나’인 이 이야기는 그저 사랑 하나로 세상과 맞서 이겨보겠노라 선전 포고했던 한 부잣집 막내딸의 도피로 시작된다. 살아가는 하루는 모자람 없이 풍족했지만 철저한 집 안의 따돌림과 외로움에 마음은 항상 허했던 육 남매의 철부지 막내가 있었다.  일상의 가난은 남의 얘기였지만 가슴의 가난은 지독히 많은 그녀에게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 남자는 사랑이었다. 남자는 유산으로 가난을 물려받아 학업과 꿈을 모두 접고 오로지 돈을 벌어야 했던 사글세 집에 막내아들이었다.

지친 걸음으로 길을 지나다 상큼한 향기를 품은 그녀의 모습에 반한 그는 순수한 심장 하나로 젊음을 던졌다. 둘은 서툴렀고 어렸고 처음이었다. 어떤 조건도 불을 향해 죽기를 각오하고 날아드는 불나방에게는 소용없었다.

 부모의 반대는 철옹성이었고 무릎이 닳도록 빌어도 열리지 않았다. 이미 타오른 사랑은 눈과 귀를 막았고 반대를 하면 할수록 뒷걸음질하더니 결국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정착지 없이 무작정 돛을 달고 떠난 항해는 등대를 찾지 못해 허둥거렸다. 여기저기를 찾다 돌아갈 곳이 없는 거지꼴이 되어서야 조그만 단칸방에 닻을 내릴 수 있었다. 얼마 후 나는 가난을 탯줄로 감싸 안고 태어났다.

가난 속에 버티며 살아 내기란 어른이나 아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살이 아니라 뼈가 아린 추위에 부둥켜안을 거라고는 핏기 없이 인형처럼 마른 동생과 땟국물이 가득한 이불뿐이었다. 벽을 타고 오르는 푸른곰팡이는 겨울이면 하얀 입김을 먹고 천정까지 자랐다.      

  아빠는 지독한 겨울을 끝내고 싶어 몸서리쳤다. 우리의 의견은 무시하고 혼자 햇볕 따스한 봄을 찾아 훌쩍 떠났다. 그해 겨울은 유독 더 춥고 배까지 고팠다. 동생의 영양실조는 마른버짐이 되었다.

어리고 순수했던 막내 공주는 억척 엄마로 다시 태어나 가장의 무게를 져야 했다. 장녀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빠가 되었고 철없는 동생은 선택권 없이 철이 들어야 했다. 그렇게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서로 채워가며 쥐구멍에 볕 들 날을 꿈 꿨다.

고생 끝에는 낙이 온다 했던가. (분명 우리는 고생을 했다.)

단칸방 쥐구멍에서 이사 가는 날이 왔다. 시린 겨울이 끝나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창문으로 따스한 볕이 쏟아졌다. 그렇게 하늘이 맑은 날이었다.      

  나는 가끔 질문한다.

-고생의 시간을 견딘 지금의 우리는 낙이 왔을까?

-단칸방 쥐구멍에서 남향 볕 잘 드는 방 세 칸짜리 집에 둥지를 틀고

 토끼 같은 아이와 사랑하는 남편과 살고 있다면 낙이라 해도 될까?

-봄을 찾아 먼저 떠난 아빠는 행복한 봄을 찾았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봄은 오고 떠나는 겨울을 웃으며 배웅한다.

잘 가라 겨울. 안녕

어서 와 봄.




 오랜만에 사무실에 들렀더니 관심에서 밀려난 선인장이 하늘로 향했던 머리를 땅으로 숙이고 축 처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살짝 들어 올렸는데 눈에 안 보였던 미세한 가시 하나가 손톱 밑에 박혔다. 온몸에 솜털이 곤두서고 신경세포가 깜짝 놀라 따끔했다. 얼얼한 손가락을 밝은 곳에서 자세히 보려고 햇살 가득한 창문 쪽으로 걸었다. 순간 찰나와 같은 깨달음이 화살처럼 머리에서 발끝을 훑고 갔다.

 손톱 밑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에도 소스라치면서 정작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시를 세상과 사람에게 세우는가!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다고 대화가 안 된다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뾰족해졌다.

세상이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일상이 피곤하다고 심지어 날씨마저 짜증 난다며 입안에 가시를 키웠다.

 무심코 뱉은 한마디가 성난 가시로 상대의 심장에 박히고 때로는 목을 찌르고 등에도 박혔으리라.

독이 잔뜩 오른 가시를 빼주지는 못하고 돌아서서 의기양양 승리의 미소로 오만에 빠져 살았던 건 아닌지 부끄러워졌다. 자기 합리화에 정당화된 하루를 타인에게 강요하며 손톱 밑 가시 같은 아픔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졌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를 가지는 일.

이제부터 물러서는 지혜를 배우고 내 안의 가시를 뽑는 봄을 희망한다.     

 흔들리는 가지마다 봄이 한창이다. 생명이 차오르는 자리마다 물기 머금은 꽃잎은 흐드러졌다. 긴 겨울을 홀로 이겨낸 선인장은 움츠렸던 하늘을 향해 커다란 기지개를 켠다. 나비부인의 날갯짓이 아지랑이 핀 들판에 음악이 되면 이름 모를 들꽃의 봄은 화려한 비상을 한다.

나에게도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온 날들이 등을 두드리면 사금파리 한 조각처럼 빛나는 시간 속에 심장을 움켜쥐었다 말하고 싶다.      

 언제나 그랬듯이 봄은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생환의 목표를 달성했다.

족집게로 가시를 빼고 선인장을 보았다.

올해는 예쁜 선인장 꽃을 보기를 소망하며 빼낸 가시를 화분에 살짝 얹어 주었다. 향긋한 바람이 살짝 머문다.

봄이 가득 찬 자리마다 태양은 살랑살랑 빛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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