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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별과 등대 Jun 25. 2020

여름

1. 여름. 더운 계절이 왔다.



 옷차림이 짧아지고 밤에 더위를 못 이겨 잠이 오지 않는 걸 보니  여름이 왔다. 밤새 앵앵거리며 무차별 공격을 하는 모기부터 나무에 붙어 고장 나지 않는 테이프를 돌리듯 맴맴 우는 매미도 찾아왔다.

내 허락도 없이 사계절 중 제일 싫어하는 계절이 왔다.     

 살짝만 움직여도 땀이 비처럼 쏟아져 옷을 비집고 나온다.

예쁘게 보이고 싶어 공들인 화장도 더위 앞에는 무용지물이다.

더위 온도가 높아질수록 불쾌지수도 덩달아 오른다. 지나가는 사람과 팔이라도 스치면 끈적끈적한 느낌에 숨이 막힌다.

 여름을 더욱 싫어지게 만드는 건 바퀴벌레들 때문이다.

유독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주 출몰하는 바퀴벌레들의 공격은 공포다. 오래된 집이 주는 반갑지 않은 선물이다. 그렇게 오래 얼굴을 트고 지냈으면 정이라도 들어야 하는데 우르르 몰려다니며 비명을 지르게 한다.

어쩌면 더위를 피해 휴가를 가는지도 모르는 그들의 처지에서 보면 사람에게 들킬까 조마조마하며 빠르게 움직이는지 모른다. 하여튼 진짜 싫다.     

 사람들은 물놀이하기에 여름만큼 신나는 즐거움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물을 유달리 무서워하는 나에게 바다나 계곡은 두려움의 장소이다. 언제부턴가 물에 들어가면 숨이 막히고 몸이 굳어지고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발이 바닥에 안 닿으면 겁에 질린 심장은 요동쳤다.

그런 이유로 물놀이는 관심에서 멀어졌고 발이나 살짝 적시는 여행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열대야로 지쳐 잠을 못 자니 뜬눈으로 밤을 보낸다. 억지로 잠이 들어도 선풍기나 에어컨 예약시간이 지나 바람이 꺼지면 강제 기상이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생활해야 불쾌지수가 생기지 않는다.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싸움이 일어나는 여름 풍경은 뜨거움이 준 또 다른 모습이다.      

제발 이번 여름은 너무 덥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제: 소름 돋도록 정확한 심리테스트)     

 

 아래 보기 중 ‘여름’ 하면 생각나는 것을 체크하세요.     

-이유 없이 짜증이 난다.

-낮에 밖을 걸으면 갈증이 난다.

-새하얀 살 색이 구릿빛이 되어간다.

-인중에 송골송골 땀이 난다.

-모깃소리에 자다 깨서 박수를 쳐 댄다.

-에어컨 만든 사람은 상 줘야 한다.

-남자 친구(여자 친구)의 손을 놓게 된다.

-손이 미끄러워 휴대전화를 떨어뜨린 적 있다.

-항상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부쩍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다.

-전화를 끊으면 휴대전화 액정에 무지갯빛 물이 묻어난다.

-너무 더워서 생긴 불면증은 회사에서도 이해해줘야 한다.

-화장 과정 13개 중 5개는 생략한다.

-차에 타면 불가마 사우나다.

-뚱뚱해서 더운 게 아니라 그냥 더운 거다.

-온도 UP=불쾌지수 UP

-부쩍 인상을 자주 쓰는 건 화나 서가 아니라 강한 햇빛 때문이다.

-옷 모양대로 탈까 봐 모양 다른 옷으로 번갈아 입는다.

-고기 구워 먹자고 놀러 가서 내가 통구이 된 적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바퀴벌레는 없어도 된다.

-안경을 벗어도 안경이 씌어있다.          

위 20가지 중 5개 이상 해당한다면 당신은 99.9% 정상입니다.





 작은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하늘 아래 동네는 아침부터 전쟁터다.

출근 준비를 하는 아버지의 발걸음은 유난히 바쁘고 등교 준비에 아이들의 어깨는 굿거리장단처럼 들썩였다. 아침밥을 짓던 엄마가 화난 목소리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오빠를 깨우면, 좁은 창자 속같이 굽은 계단을 따라 유일한 구멍가게인 김 씨 할아버지의 보청기 낀 귀에까지 또랑또랑 울렸다. 둘러앉은 동그란 밥상에 적당히 흰 밥과 섞인 보리밥 한 그릇과 시큼한 김치찌개로 시작하는 하루는 가난했지만 가족이 함께여서 좋았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감출 것이 없었고 내 집 네 집이 없기에 대문도 별 쓸모가 없었다. 그저 고단한 시름을 내려놓고 시린 마음을 나누는 술 한잔에 별이 빛났다.

앞집 옆집 저녁마다 반찬 그릇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집에 앉아 숟가락 하나 놓으면 식구가 되었다. 그러다 잠이 쏟아지면 머리를 눕는 곳이 내 집이었다.

여름이면 나무 그늘 밑 평상에 앉아 수박과 옥수수로 더위를 피하고 매캐한 모깃불에 기침을 콜록이며 깡통 차기를 했다. 결혼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마을 사람 모두 부모였고 형제였고 친인척이었다. 흥겨운 잔치는 동네 개들도 신명 나게 뛰어다니는 한바탕 마당놀이였다.

동네에 들어서는 계단에는 월급날이면 바람을 타고 통닭 냄새가 났다.

누런 종이봉투에 번져가는 온마리 통닭의 기름은 한 달을 열심히 일 한 아버지의 자존심이고 자식에 대한 사랑의 다른 말이었다.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아빠의 청춘’을 부르며 촘촘한 계단을 비틀비틀 걸어 오르던 뒷모습은 지친 가장의 어깨에 가로등 그림자를 그려 넣었다.     

 더위에 지친 여름이 걸터앉은 자리에는 밤이면 등목 하는 소리로 하루를 견디고 매미 소리 가득한 달동네는 쉬이 잠들지 못한 날을 낡은 선풍기에 의지해 뒤척였다. 달이 신비하게 빛나는 보름에는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고 골목마다 자리한 의자는 부채를 손에 든 터줏대감들로 연일 만석이었다. 바람도 쉬어가는 깔딱 고개는 붉은 저녁노을이 미치도록 고왔다. 지키고 싶은 아련한 그리움이 머문 자리에 성큼 다가온 계절은 잃어버린 젊은 시절을 기억나게 했다.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가족으로 무더운 시간을 함께 보냈던 인천의 여름.

가난했지만 참 행복했던 추억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아련함은 나이를 먹으며 더 깊어지고 이마에 생기는 주름만큼 삶은 골이 생겼다. 고단한 청춘은 여름과 함께 성장했다.     

 한바탕 더위를 몰고 여름이 온다.

눈을 감으니 깡통 차기를 하는 해맑은 아이의 함성이 귓가에 맴돈다.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한 시간은 잠자리 날개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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